나는 지금 꽤나 높은 하늘에 있다. 창밖으로는 파란 하늘과 뜨문뜨문 구름이 보이고 해가 져가는 시간이어서 그런지 저 멀리 달도 보인다. 이 시간대에 비행기를 타본 적이 있었나. 내 인생 가장 가까운 달을 마주하고 있다. 구름, 날개, 달. 이 3가지를 내 카메라로 한 앵글에 담아본다.
일본으로 가는 여정이어서 그리 길지 않은 비행. 기내식은 줄 리 만무하고 승무원들은 카트를 끄시면서 간식을 판매한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상공 수천 미터에서 먹는 콜라는 어떨까 싶어 하나 구매한다. 꿀꺽꿀꺽. 캬아. 지상0m에서 먹는 콜라와 별다르지 않다. 기분을 내고 싶다면 한 번쯤 마셔보시라. 대신 결제는 신용카드로.
옆자리에 앉으신 일본 여성분은 본국으로 귀국하시는 것 같다. 한국에서의 여행이 많이 고단하셨는지 옆에서 꾸벅꾸벅 잠을 청하신다. 다만 한 번씩 고개가 내 어깨로 떨어진다. 어깨를 스리슬쩍 하고 조심히 빼본다. 깨실 줄 알았는데 깨시기는커녕 고개가 꺾이신 채로 잘 주무신다. 다행이다. 매너 없는 한국인인 걸 들키지 않았으니.
내 뒤쪽 사선으로는 어떤 흑인 여성분이 앉으셨다. 왜 그런 분 있지 않은가. 눈만 마주쳐도 살가운 미소를 보내시는 분. 안전벨트를 매려고 잠시 고개를 돌렸는데 그 흑인분과 눈이 마주쳤다. 나를 보고 웃으신다. 하얀 이를 내보이며. 머쓱하며 나도 슬쩍 웃어본다. 한 번은 내심 좋았다. 카트를 끌고 다니는 승무원분에게 초코칩 쿠키를 요청하려고 고개를 돌렸다. 흰자 너머로 그분의 하얀 치아가 느껴졌지만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한 번 더 마주치면 내게 말을 걸 것만 같았기에.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비행기 상공에서 노을이 지고 있는 걸 보고 있다. 일본과 노을. 일본 애니메이션 중 절정에 다다르면 꼭 노을이 나오지 않은가.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보는 분홍빛 노을은 남다르게 느껴진다. 산 중턱에 모여있는 구름들. 그들을 뻘겋게 물들여 가는 붉은 태양. 그들을 행복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창가 자리에 앉은 나. 이제 여행이 시작되는구나 싶은 마음도 잠시 머리 위로 기장님께서 말씀하신다.
“잠시 뒤면 도쿄 나리타 공항에 도착합니다.”
여행이 직업인 사람이 꽤나 부러웠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환경에 나를 노출시키는 일. 그러면서 돈도 버는 일.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그런 고충이라면 한 번쯤 몸소 경험해 보고 싶다. 돌이켜보니 내가 하는 일도 어느 정도 이와 닮아있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일. 사양 좋은 노트북이라면 어디서든 가능한 편집. 또한 미래에 작가를 꿈꾸고 있기에 작가가 된다면 이렇게 상공 수천 미터에서도 원고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욕심을 내보자면 영상과 작가 두 직업을 희망해 보고 싶다. 주말에는 웨딩을 찍고 평일에는 글을 쓰는 일. 누구는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는 따가운 말들이 벌써 내게 꽂히는 것만 같다. 그런데 그 말들이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 가슴이 설렌다. 정말 꿈만 같은 일이겠지.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오늘도 써내려 가야 한다.
오늘 아침. 일본 간다고 엄마와 점심을 먹으면서 얘기를 나눴다. 글을 쓰는 일에 대해서. 글 쓰는 수업은 어떤지를 물어 보시길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한 나를 보며 대견하다는 말을 건네셨다. 요즘 사람들이 글을 읽으려고도 하지 않는데 글을 쓰는 아들이 참 멋있다고. 그 말에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이렇게 대답했다. 누군가는 써야 하니까. 말하고 나서 놀랐다. 내가 무슨 베스트 셀러 작가인 것처럼 얘기한 것 같았기에.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냥 내 평소 생각인 듯 덤덤한 척했다.
나의 민망한 한 마디에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꾸준히 써야겠다는 다짐이 생겨버렸다. 일본에서의 기록도 한국에서의 기록도 내 생각과 방식으로 꾸준히 기록해야겠다는 다짐. 그 다짐들이 모여서 하나의 책이 되는 일. 그 책들이 모여 나를 작가로 만드는 일. 어느 날 돌아봤을 때 지금 꿈꾸고만 있는 영상과 작가의 일을 둘 다 병행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하는 괜한 행복한 기대를 해 본다.
그런 기대와 함께 쿵 하니 나는 일본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