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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에녹 Jul 27. 2023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기

적은 나이에서 적지 않은 나이가 되어가면서 생각들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그중 하나는 여행에 대한 생각. 이전에는 내가 경험한 공간은 내가 사는 공간뿐이었다. 성인이 되면서 서울이란 곳도 나가보고 해외도 나가봤다. 세계관이 점점 확장된다고 해야 하나. 아, 나는 말하자면 인천 촌놈이다. 인천이 촌이라는 게 아니라. 내가 사는 인천도 잘 몰랐던 촌놈.


나의 첫 해외는 아프리카였다. 18박 19일의 일정으로 간 마다가스카르. 해외 봉사활동으로 아프리카를 선택했다. 왜인지 마다가스카르라는 이름을 보았을 때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 두근거림에 이끌리어 열심히 알바해서 자금을 마련했고 내돈내산 해외 봉사를 시작했다.


모든 게 낯설고 처음인 마다가스카르. 해외 봉사활동이기에 그 나라 인사말을 배웠다. 그리고 나는 어디에서 왔고 왜 왔는지 정도는 얘기하고 싶었다. 간단한 자기소개 정도는 옆에서 콕 찌르면 나올 정도로 혼자 주절주절하며 입으로 익혔다. 숫자는 물론 사랑한다는 말과 한국에서는 발음해 본 적도 없는 마다가스카르 노래도 열심히 암기했다.


한국에서 비행기를 세 번 타고 자동차로 이틀 걸려 아프리카 오지 마을에 도착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만났다. 열심히 환영해 주는 아이들에게 신나는 마음으로 시작한 자기소개. 그런데 내가 말을 하면 할수록 아이들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지어졌다. 그렇다. 이 아이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물음표가 생긴 아이들은 연신 나를 쳐다보다가 자기들끼리 얘기를 나눴다. 그들도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고 싶었나 보다. 내가 한국에서 열심히 암기한 말들은 대체 어느 나라 말이었을까. 충격을 머금은 나는 한동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해가 질 때면 혼자 바오밥 나무 아래서 멍하니 하늘 보던 게 아직도 생각난다. 나중에 물어보니 단어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한다. 다만 억양이 다소 자연스럽지 못해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한 거 같다는 말을 듣게 됐다.


그 뒤로 터키, 캄보디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이스라엘 등 여러 나라들을 다녔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것들.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에 나는 많이 매료됐다. 그렇게 여행 다니기를 좋아하는 나는 지금 일본에 있다. 일본에 있으면서 첫 해외 여행이 자꾸만 생각났다. 그때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


이전과는 다르게 나는 새로움을 좇지 않았다. 여행에 오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나를 만족시킬 만한 것들을 찾기보다는 한 곳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분위기를 느끼려 한다. 가령 산책을 하며 한 동네를 깊이 들여다보는 일. 유명 관광지를 가기보다는 카페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적당히 귀 기울이는 일. 여러 음식점을 다니는 것보다 한 집에서 다양한 메뉴를 즐겨 먹는 일. 내 여행은 이렇게 흐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언어에 대한 부담을 완전히 내려놓게 되었다. 첫 여행에서 언어만으로 소통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배워서 그런지 해외에 나가면 더 용감해진다. 짧은 기간 안에 일본어를 배울 수는 없으니 다른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섰다. 나는 겁 없이 할 수 있는 손짓과 발짓을 다 구사했다. 그런데도 소통이 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언어를 공부하지 않고 왔으니 생존 언어를 구사해야 했다. 그 방법으로 선택한 “나는 모릅니다” 전략. 이 전략은 나라는 사람에게 조금의 기대조차 없애버리는 효과를 발휘한다.


기존에 내가 어떻게든 상대를 이해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상대가 나를 어떻게든 이해시켜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 방법은 생존전략이다.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해 나만 생각하는. 어찌 보면 무지한 내가 유식한 그들을 의존해야 하는 건 당연지사.


“니혼고 노노”

“일본어를 모릅니다”의 일본식 표현.


편의점에 가도, 역무실에 가도, 식당에 가도 나의 첫 말은 니혼고 노노로 시작됐다. 한 번은 일본의 큰 공원에 가야 하는데 어플이 길을 잘못 알려줘서 난처한 순간이 있었다. 버스정류장 맞은편 환전소처럼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중년의 여성이 나를 맞으셨다. 친절히 일본어로 말씀하시는 틈 사이로 나는 한 마디를 욱여넣었다.


“니혼고 노노!”


그리고 핸드폰을 가리키며 내 목적지를 가리켰다. 그 순간 마법이 일어났다. 서둘러 밖으로 나가시더니 내게 따라오라며 손짓하셨다. 길거리에 우연히 지나가는 보안관에게 가게를 지키라고 말씀하신다. 일면식도 없어 보이는 보안관은 얼떨결에 가게를 지키기 시작했다. 사장님의 카리스마 있는 리드에 나는 원하는 목적지에 제대로 찾아갈 수 있었다.이 계기로 앞으로 많은 부분에 나의 무지를 티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지 않나. 애매하게 아는 지식을 티 내는 사람보다 솔직하게 모름을 말하는 사람. 의외로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을 무시하려는 경향보다는 도와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큰 것 같다.


그러니 어떨 때는 모르는 것은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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