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참전 의료지원단 (독일)
지난 5월 8일 독일 베를린에 있는 독일적십자사 본부 마당에서는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과 볼크마르 쇤 독일적십자사 부총재를 비롯한 양국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뜻깊은 제막식이 열렸다. 5. 8 세계적십자의 날(World Red Cross Day)에 맞춰 열린 6.25 전쟁 의료지원국인 독일 의료진의 전쟁 파견 70주년을 기념한 조형물 제막식이었다.
독일 참전기념 조형물은 독일 의료지원단의 희생·헌신을 기릴 뿐만 아니라 한·독 우호관계 증진을 위해 한국 정부 예산(2억 1000만 원)으로 건립됐다. 청동으로 건립된 조형물은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미술가 강동환씨가 만들었다. 마을의 수호신인 한국의 장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는데, 독일 적십자사의 의료지원 활동을 '전쟁과 치유'라는 주제로 제작했다고 한다. 천하대장군 모습은 전쟁의 참상에 깜짝 놀란 적십자 관계자를, 지하 여장군은 치유하는 간호사를 표현했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왜 독일적십자사 마당에 조형물을 설치하였을까? 궁금해 기사와 사료를 찾아보니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었다. 6.25 의료지원국들은 한국전쟁 시 유엔의 결의와 적십자정신에 의거해 의료지원단을 파견하였다. 유엔군과 한국군의 전상자 치료 및 난민구호에 앞장섰는데, 독일도 부산에 '독일적십자병원'을 열어 의료지원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6.25 의료지원단 파견국 : 스웨덴, 인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독일)
지금은 독일적십자병원이라고 부르지만, 당시 이름은 서독적십자병원이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물자와 의사, 간호사를 지원하여 세워진 병원으로 수많은 한국전쟁 피난민의 목숨을 구하였다. 그 당시 부산은 전쟁으로 인하여 굶주린 피난민들로 북적이고, 의료시설이 제대로 없어 전염병환자가 많았다. 가난한 피난민들을 치료해 준 곳이 바로 독일적십자병원이었다. 1954년 1월 선발대가 도착, 부산에 있는 부산여고를 인수하여 서독적십자병원을 5월 17일 개원하였는데, 250개 병상에 내과, 외과, 치과, 방사선과, 산부인과, 약국을 운영하였다.
병원장 후버박사와 의사, 간호사 80명, 한국인 의료진 21명이 근무하였으며, 1958년 12월 31일 철수할 때까지 117명의 독일 의료진이 150명의 한국 의료진과 함께 외래환자 227,250명, 입원환자 21,562명, 대수술 9,306명, 소수술 6,551명, 출산 6,025명 등 270,694명을 진료하였다.
서독적십자병원의 철수 또는 폐원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57년 11월 18일 한국 문교장관이 외무장관에게 서독적십자병원이 사용하고 있는 부산여고의 교사를 반환해 달라고 요청하면서부터이다. 1958년 5월 28일, 바이츠(Heinrich Weitz) 서독적십자 총재는 한국에서의 구호사업을 중지한다고 발표했으며 이에 따라 1959년 3월 14일 폐원(임무 종료)했다. 병원 측은 부산의대 및 전남의대에 의료 기재를 기증했다.
서독적십자병원은 폐원하였으나 간호학교를 졸업한 한국 간호사들이 1959년 처음으로 정식 간호인력으로 독일로 가서, 1960년대 중반 정부가 주도하는 공식적인 파독 간호인력의 독일 취업을 위한 긍정적인 가교 역할을 했다고 한다.
독일적십자병원 기념비는 당시 산부인과 의사였던 최하진 박사와 환자였던 화가 이한식 선생이 보은의 마음으로 1997년 10월 24일 옛 부산여고 부지에 세워졌다. 하지만 이후 나무에 가려 기념비가 눈에 띄지 않아 부산시와 서구청은 화단과 수목을 정비하고 기념비를 2010년 부산 서구 동대신동 도시철도역 화단으로 이전하였다.
부산시는 "대가 없는 의료봉사와 박애의 정신을 되새기고, 시민의 인도주의적 봉사 의식을 높이기 위해 기념비를 시민이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옮기게 됐다."라고 밝히면서, "당시 부산은 헐벗고 굶주린 피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지만, 의료시설이 없어 병들고 가난한 피난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하수도시설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전염병 환자가 넘쳐 났었다."라며 "당시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무료 의술을 베푼 곳이 독일 적십자 병원이었다."라고 전했다.
다시 돌아와 독일 6.25 참전 기념 70주년 조형물 기념식에서 폴크마르 쇤 독일 적십자사 부총재는 "한국에서의 활동은 독일적십자사 160년 역사상 가장 길고 어려운 임무였다."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첫 파견 임무를 통해 전 세계 어디서든 중립을 지키면서 필요한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라고 말했다.
인간의 생명을 구하고 고통을 줄여주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국제적십자운동. 오늘날의 우리 사회의 번영은 어려웠던 시기에 국제사회의 원조와 국제적십자의 인도주의적 지원이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이 글을 정리하면서 다시금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역만리 대한민국에서 펼친 그들의 숭고한 노력과 헌신에 우리 사회가 감사를 표하는 건 당연한 도리인 듯하다.
참고, 인용자료
1. 부산광역시 서구신문, <독일적십자병원터 기념비 눈에 띄네>
2. 주독일 대한민국 대사관, <독일적십자사, 부산 독일적십자병원 관련 특별호 발간>
3. 국방일보, <1954년 5월 17일 6.25 전쟁 참전 독일적십자병원 첫 환자 진료>
4. 기타 기념식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