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을 겪는 자들, 모두 모여라

아름답고도 슬피 우는 나를 마주한다

by 나다움

"제가 우리 회사 랭킹 1위입니다."


직장에서 심박 변이도 측정으로 신체 스트레스 검사를 하고 난 후였다. 수치로 나오는 스트레스 정도를 서로 얘기하다가,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 부심(?)을 발휘하며 자랑한다. 내가 최고치라 호들갑을 떤다. 무겁지 않게 장난스레 말하지만 사실 난 번아웃이다, 그것도 꽤 오래된.

< 몸은 "더이상은 무리야"라 하는데, 마음은 "아직은 견딜만해"라 말한다. 심신분열의 현장, 이를보는 나는 환장. 하하 >

이제는 이 상태가 익숙하긴 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지 않으면 내 시간이 전혀 없기에, 아무도 깨지 않는 시간에 자동으로 눈을 뜬다. 그마저도 내가 자리에 없는 것을 눈치챈 둘째 아들이 깨서 울기 시작하면 혼자만의 시간도 끝이다. 우는 아이를 겨우 달래다 보면 통근버스를 놓치기 직전이다. 가끔은 신호등도 무시하고 전력질주로 겨우 차에 오른다. 한참 멀미를 하다가 잠들만할 때쯤 회사에 도착하고, 일과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다시 통근버스에 몸을 싣기까지, 나의 예상을 뛰어넘는 스펙터클한 일 폭탄과 각자 이해관계에 얽힌 사람들 사이에서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른다. 퇴근버스에서 다시 멀미로 겪으면, 휘적이던 손발은 강제로 쉰다. 그렇게 잠시 충전하고 본격적인 2차 출근 육아를 맞이한다. 영혼까지 끌어올려 아이들과 놀아주다 보면 그날의 체력 소진으로 자연스레 10시면 잠이 든다. 잠들면서 내일 새벽도 일찍 깨기를 바란다, 나만의 시간을 위해서.


대부분의 성인은 나와 비슷한 일상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번아웃에 허덕이는 이유는 그런 나를 애써 외면했기 때문이다. 그저 다 이렇게 사는 거라고, 너만 힘든 거 아니라고, 지금 걷지 않으면 다음에 뛰어야 한다고, 나를 그렇게 다그치며 한계로 몰아갔다. 정작 나의 마음은 들여다보지 않았다. 타인의 기대가 마치 나의 생각인양 심어놓고, 자동 주행모드를 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BTS'진'의 'Abyss'란 곡을 듣게 되었다. (시작은 그의 잘생긴 얼굴로 안구정화를 하기 위해 유튜브를 틀었다가) 진 특유의 감정을 건드리는 호소력 짙은 (외모와)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한참 듣다가 가사를 찾아보니, 어딘가 나와 맞닿아있음을 직감했다.(이런 식으로 진과 나 홀로 내적 친분을 쌓는다, 하하.)



숨을 참고서 나의 바다로 들어간다 간다

아름답고도 슬피 우는 나를 마주한다

저 어둠 속의 날


찾아가 말하고 싶어

오늘은 널 더 알고 싶다고


아직도 나는 내게 머물러있다

목소린 나오질 않고 맴돌고만 있다

저 까만 곳

잠기고 싶어 가보고 싶어

I'll be there

오늘도 또 너의 주위를 맴돈다


BTS(진), <Abyss>


실제로 진은 크게 번아웃을 겪고 자기 자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는 내 슬픈 감정을 팬분들과 공유하고 싶지 않다. 좋은 것만 보여드리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음악이라면 얘기는 다르다. 평소 나의 행동으로는 공유하고 싶지 않지만 음악으로서는 보여드려도 괜찮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어렴풋이나마 그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나 역시 직장인으로서, 엄마로서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려 노력한다. 나의 개인적인 슬픔은 저 바닥에 숨겨둔 채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무던히 애쓴다.

하지만 그가 '음악'으로서는 타인에게 그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었듯, 나 역시 '글'로서 나를 드러낸다. 그의 감정을 그렇게 노래에 써 내려갔듯이, 나의 마음을 이렇게 여기 브런치에 담아 간다.

'저 까만 곳'까지 나를 더 알기 위해서, 글을 통해 나의 바다로 들어간다.(이런 식으로 진과 공통점을 발견한다->나 혼자 친하다-> 이건 운명이라고 말한다, 하하)



문득 상담 선생님과의 대화가 생각난다. 이 곡을 들으니, 그때는 뿌옇게 잘 안보이던 부분이 걷히며 선명해지는 기분이다.


"슬픔에 빠지다 보면 더 슬퍼질 것 같죠?

힘들다고 쉬면 그대로 계속 주저앉을 것 같나요?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 봐야 해요.

지금은 그러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니까 더 힘이 드는 거예요.

슬프면 슬픈 대로, 그 감정을 따라 끝까지 가보세요.

나의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자연스레 인정해주세요.

바닥을 쳐야 다시 튀어 오를 수 있어요.

나 자신을 좀 더 믿어도 돼요."


여전히 스트레스 지수는 전문의 상담을 권장받을 정도이고, 아직도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다. 나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나의 마음은 잠시 제쳐두고 달리다 보니 그렇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예 멈출 수는 없기에, 이렇게 글을 통해 나의 심연을 드러내면서 잠깐 휴식을 취한다.

진은 이 노래를 우울하다 말했지만,

나는 이 노래로 공감한다 하고싶다.


진정한 나를 마주하는 지혜와

자신의 방식으로 드러내는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를 보며, 나 역시 힘을 얻는다.



그렇게 나의 진 사랑은 계속된다.

이렇게 나는 찐 사랑을 경험한다.

Love myself.


<회사에 진이 있다면, 월화수목금금금해도 기쁘게 출근할텐데. 오늘도 사무실 복사기 앞을 지나며 행복한 망상에 혼자 피식 웃는다. 복사기가 부럽다, 하루만 저 복사기가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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