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마나. 여기서 엄마는 나의 생물학적 엄마가 아닌 후천적 엄마, 시어머니 되시겠다. 그리고 이 말씀을 하시는 분은 시아버지이시다. 그럼 시아버지도 같이 보시는 건가.
주방 창에 서서 두 분이서, 매일 아침 통근버스를 향해 전력 질주하는 나를, 내가 뛰어가는 시간에 맞춰 창가에 서서 보고 있다고요?"저요? 왜요? 굳이?"란 말이 입천장까지 대롱대롱 매달렸지만 뒤로 꿀꺽 삼킨다.
<저요? 왜요? 굳이?>
할 말은 있으나 하지 않는 나와 반대로, 사이좋게 아버님 어머님은 번갈아가며 한마디 더 하신다.
"5분만 더 일찍 일어나서 천천히 걸어가라. 아침은 먹고 뛰나?"
"아무리 늦어도 신호등은 지켜야지"
나는 자유방임주의형으로 자랐다. 그게 좋든 실든 나에게 익숙하다. 가끔은 관심 가득한 부모님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독립적이고 혼자만의 시간이 많이 필요한 나에게는, 굳이 양자택일이라면 지금의 방목형 부모님이 승.
그래서일까. 익숙지 않은 시부모님의 애정 어린(?)과도한 관심은 나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럽다. 이제는 살이 쪄서 44 사이즈가 안 들어가는데도 굳이 몸을 욱여넣어서 입은 것처럼 불편하다. 속이 답답할 땐 뭐? 위장 급체엔 활명수라면, 마음 급체에는 BTS노래가 답이다.
산들바람, 스쳐가는 사람, 스며드는 사람
나는 어떤 사람? 나는 좋은 사람? 아님 나쁜 사람?
평가는 가지각색 , 그냥 나도 사람
다들 살아가겠지
다들 사랑하겠지
다들 바래가겠지
잊혀가겠지, 사람들은 변하지 나도 변했듯이
세상살이 영원한 건 없어, 다 지나가는 해프닝
Why so serious?
I'm so serious
뭐 어때? 스쳐 지나가면, 뭐 어때?
뭐 어때? 상처받으면, 뭐 어때?
때론 또 아플지도, 가끔은 속상해 눈물 흘릴지도
뭐 어때? 그렇게 살면, 뭐 어때?
물이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 저기 끝은 뭐가 있을지도
특별한 삶 평범한 삶 그 나름대로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뜻대로만 되지 않지, 불편은 다들 감수하지
극적인 상황들의 반복은 삶을 지치게도 해
사람들이 그런 거지
없으면 있고 싶기도 있으면 없고 싶기도
누가 사람이 지혜의 동물이라 했나
내가 보기에는 후회의 동물이 분명한데
사람들은 변하지 너도 변했듯이
세상살이 영원한 건 없어, 다 지나가는 해프닝
너의 평범함은 되려 나의 특별함,
너의 특별함은 되려 나의 평범함
뭐 어때? 그렇게 살면, 뭐 어때?
-슈가(BTS), 사람-
'세상살이 영원한 것은 없고', 매일 아침마다 나를 관찰하고 계시는 시부모님의 모습도 '지나가는 해프닝'이다. 오늘도 출근하는 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대성통곡하는 아드님을 겨우 달래고, 지각을 면하기 위해 생존 달리기를 하는 나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시부모님을 의식하며 어색함에 애꿎은 가방끈만 꽉 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사인 볼트급 전력질주 덕에 빠르게 그 시야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 그때 주문처럼 외운다 '뭐 어때? (쳐다보시면) 뭐 어때, (신경 쓰이면), 뭐 어때 '라고.
출근길 달리기를 하다 보면, BGM처럼 시부모님들의 질문이 귓가에 맴돈다. 그 자리에서 즉문즉답은 피했으나, 다음과 같이 나 홀로 토크쇼를 진행하며 오늘도 열심히 뛴다.
5분 더 일찍 일어나 봤자, 새벽 4시 25분입니다. 늦잠을 자서 뛰는 게 아니라고요.
식사할 시간이 있어도, 아침 먹고 바로 뛰면 더 힘듭니다.
저도 준법정신이 투철하지만, 신호등을 다 지켜서 출근하다간 회사에서 내 자리를 못 지킬 수 있어요.
부모님한테는 환갑의 자식도 물가에 내놓은 애 같다고 하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건 하지 않음 어떨까 싶다. 속사정을 잘 모를 때라면 더더욱.
그걸 아실까. 시부모님의 사랑스러운 아들이 조금만 아침에 정신 차리고 애들을 봐주면, 내가 아침마다 목숨 걸고 무단 횡단하며 100미터 달리기를 안 해도 된다는 것을. 꼭 집을 나가야 하는 시간에 눈을 떠서 잠투정으로 엄마를 찾는 탓에 달래주고 안아주고 진정시키고 나면, 나는 뛸 수밖에 없다는 것. 더 자야 할 내 아들은 깨고, 깨어나야 마땅한 어머님 아들이 숙면을 취하시는 패턴이 있다는 것.
문제의 근원을 따지기 시작하면 언제나 그 끝에 익숙한 결론에 다다르기에 그저 말없이 달리는 내 다리에게 미안할 뿐이다.
물론, 그분들의 선택을 최대한 존중한다. 아침마다 뜀박질해서 돈 벌러 가는 며느리가 측은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따뜻한 의도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 자체가 불편한 나는 거기에 최대한 반응하지 않는 게 나의 선택이다. 쉽게 지나쳐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럴 땐 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뭐 어때,뭐 어때... 뜻대로만 되지 않지, 불편은 다들 감수하지.'
돌아보면,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소회는 정반대다. 외할머니는 내가 대학생 때 학교 가는 모습을 3층 베란다에서 바라보시곤 했다. 외할머니가 그렇게 나를 보고 계시다는 사실은 우연히 내가 뒤돌아 집 쪽을 바라봤을 때야 알았다. 굳이 나에게 말하지 않으셨던 거다. 말보단 작은 미소로 날 그저 응원해주셨다. 내게 익숙한 건 이런 거다. 그렇기에 지금 이 상황이 익숙지 않고, 문제의 본질은 간과한 멘트도 상당히 부담스럽지만, 또 그 따뜻한 마음만 받는다. 잔소리는 걸러내고.
누구에게나 그런면이 있겠지만, 특히 난 타인에게 쉽게 영향을 받는다. 쉽게 물드는 하얀 도화지 같은 상태라고나 할까. 좋은말로 하면 수용적이고, 나쁜말로 하면 주관이 없다. 그래서 현재의 나에, 타인이 요구하는 나,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 등을 더하면 정말 비현실적이고 달성하기 어려운 자아상이 완성된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상담선생님과 이야기한적도 있었다.
심리상담선생님 : 00님 한정으로, 제가 숙제 하나 내드려도 될까요?
나 : 숙제라면 또 제가 자신있습니다! 어떤거죠?
심리상담선생님 : 00님은 어떤 갈등이 생기면, 가장 먼저 자기에게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나 : 대부분 그렇죠. 실제로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게 편할때도 있어요. 뭔가 내가 주도권을 내가 가진것 같아서 내가 해결할수 있을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어요.
심리상담선생님 : 진짜 그게 편해서 그럴까요? 편하다기보다는 익숙한건 있겠죠. 편해보이진 않아요. 자꾸 자기를 질책하고 자기 탓을 하을 하잖아요. 이러면 어때요?다시한번 말하지만, 이건 00님께만 드리는 맞춤형 숙제입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내탓을 하기보다 남탓, 환경탓부터 해보는겁니다. 아셨죠? 내탓은 맨 마지막에 조금만 해보는거에요.
나 : 그래도 될까요?
심리상담선생님 : 그래서 00님 한정이라고 말씀드린거에요. 제가 이렇게 얘기해도 분명히 00님은 모든 일을 자기탓으로 돌리니까요. 예를 들면 회사가기 싫은 날이에요. 그럴때, 내가 운동을 해서 더 건강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게 아니라, 오늘은 비가 오니까 회사가기가 싫다, 일이 너무 많이 밀려있어서 가기 싫다 등등 외부에서 이유를 찾는거에요. 이유가 없어도 좋아요. 그냥 회사가기 싫다!! 내 탓만 하지 말아보아요. 치우쳐진 습관을 돌아보아요.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느껴보아요. 모든 것을 내가 다 통제할 수 없어요. 내 뜻대로 되지도 않고요.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보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봐요.
그래도 마음의 체증이 쉬 사라지지 않는다. '좋은 게좋은 거지. 너의 평범함은 되려 나의 특별함, 나의 특별함은 되려 너의 평범함'이란 가사를 곱씹는다. 좋은 (의도인) 게 (내 정신건강을 위해) 좋은 거라 해석한다. 내일모레 마흔인 며느리의 출근길을 지켜보는 시부모님에겐 평범한 시선이, 나에겐 특별함을 넘어 특이함을 그냥 인정한다.지나가는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엔 신경이 쓰인다고 그대로 수용한다. 내 탓은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