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 남편 방에 없다, 그 방의 주인이. 평소 그의 생활리듬으로 추측하건대, 이 시간에 활동하실 인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젯밤 안 들어온 것인가. 우선 10분은 기다려본다. 담배 태우러 간 건 아니었나 보다, 내 애간장만 탄다.
"어디야"라고 톡을 보낸다. 숫자 1이 없어지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본다. 익숙한 그분이 소리샘으로 안내해준다고 한다. 어제 자기 전에 보내 놓은 카톡은 확인한 것으로 봐선, 어젯밤까지는 살아있던 게 분명하다. 5통의 전화에도 묵묵부답이다. 이때부터는 장르가 공포 호러 살인극으로 바뀐다.
나는 상상력의 대가이다. 전화 수신음만 들리는 휴대폰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얼마 전 보았던 '명상 살인'이란 책이 떠오른다. 소설처럼, 설마 이분이 괴한에게 납치되어 자동차 트렁크에 감금되었기에 전화를 못 받는 건 아닌가 상상했다. 그 순간 드는 생각.
'나, 8시 반에 나가야 하는데, 어떡하지?'
그렇다, 그분의 안위보다는 나의 선약이 우선이었음을 고백한다. 물론 약간의 걱정이 있었지만, 예측 불가능함을 안겨준 것에 대한 다량의 짜증이 솟구쳤다. 그간의 행동 패턴에서 찾아볼 수 없던 상황이기에 더 불안해졌다. 나의 외출이 불투명해지고 있었다.
암전된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되듯, 내 마음속의 어두운 트라우마가 상영되기 시작한다. 일일드라마의 어제 자 요약본처럼,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담아 나를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안내한다. 몸서리친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 시절의 나를 애써 지워본다.
사실 나는 부재중 전화가 3통 이상은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굳이 상대에게 그럴 필요가 있나 싶고, 자칫 성격 급한 미저리(?)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스텔라처럼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의 손가락을 움직여 신랑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벌써 5통째.
결국 1시간 후에 연락이 된 남편은, 나 홀로 차박을 즐기시고 돌아오는 중이라고 했다. 본인은 미리 나의 허락을 구했다고 했지만, 나는 기억이 없다. 내가 못 들었을 수도 있고, 남(의)편이 얼렁뚱땅 말했을 수도 있고 등 많은 가능성을 염두하고, 의사소통에 오류가 있던 것으로 결론 낸 후 사건을 일단락 짓는다. 다음에는 차박을 가더라도, 종전처럼 생존신고 한 줄 톡은 하라는 당부를 남기며.
아침 댓바람부터 치솟은 아드레날린을 단숨에 잠재울 방법은 딱 하나다. 나의 다친 영혼을 어루만져줄 그분들의 목소리를 소환한다, 특히 이 노래는 놀람과 짜증 후에 찾아온 허탈함이 뒤섞인 나를 진정시킨다.
...
괜찮아 우리가 아니어도, 슬픔이 날 지워도
먹구름은 또 끼고, 나 끝없는 꿈 속이어도
한없이 구겨지고, 날개는 찢기고
언젠가 내가 내가 아니게 된 달 지어도
괜찮아, 오직 나만이 나의 구원이잖아
못된 걸음걸이로 절대 죽지 않고 살아
How you doin Im fine, 내 하늘은 맑아
모든 아픔들이여 say goodbye, 잘 가
차가운 내 심장은 널 부르는 법을 잊었지만
외롭지 않은 걸 괜찮아 괜찮아
깜깜한 밤 어둠은 잠든 꿈을 흔들어 놓지만
두렵지 않은 걸 괜찮아 괜찮아
I'm feeling just fine fine fine 이젠 너의 손을 놓을게
I know I'm all mine mine mine
Cuz I'm just fine I'm feeling just fine fine fine
더 이상은 슬프지 않을래
I could see the sunshine shine shine.Cuz I'm just fine just fine
I'm just fine 내 아픔 다 이겨낼 수 있어 너 없이 나
I'm just fine 걱정 마 이젠 웃을 수 있고, 네 목소린 모두 알아주니까
I'm so fine you so fine
슬픔과 상처는 모두 다 이미 지나간 추억이 됐으니
웃으며 보내주자고 we so fine
i'm so fine you so fine
우리들 미래는 기쁨만 가득할 테니 걱정은 접어둔 채
이젠 즐겨 수고했어 we so fine
혼자서라도 외쳐보겠어, 되풀이될 이 악몽에 주문을 걸어
I'm feeling just fine fine fine
몇 번이라도 되뇌보겠어, 또다시 쓰러진대도
난 괜찮아
-BTS, I'm Fine-
그렇다, 나는 지금 괜찮다. (외출을 못할까 봐 맘 졸였던) 슬픔과 (연락이 안 받아서 졸지에 미저리가 되어버린 나 자신에게 준) 상처는 모두 이미 지나간 추억이 되었으니 웃으며 보내준다. 걱정은 접어둔 채 이젠 (육아와 살림에서 벗어나, 나도) 즐겨야겠다. 우리는 괜찮다.
동시에 다시 말해준다, 과거의 나에게도 괜찮다고. 비록 깜깜한 밤과 같던 시간, 나를 아프게 한 마음속 어둠은 아직도 내 안에 잠든 채 종종 이렇게 흔들어 놓지만, 이제는 나만이 나를 다독일 수 있다며 중얼거린다. 괜찮아, 지난 아픔이여 안녕.
대학교 4학년 때 기말고사 기간, 조금 늦게 회신한 문자를 끝으로 친한 친구와는 연락할 수 없게 되었다. 소리샘으로 연결되더니 하루 만에 없는 번호가 되었고, 이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변했다.
또 있다. 몇 년 전, 남편과 12시간정도 연락이 안 된 그 다음 날부터 한동안은 평범한 일상이 사치가 되었고 난생처음 겪는 생소한 장소들과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일들의 연속에 고통스러웠다.
예측불가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기억때문에 힘든날에 대해서 심리상담선생님과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다 지나간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할 수 있는게 없는 일이라는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그 기억속에 매여있는 나를 발견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심리상담선생님께 조언을 구했던 날이었다.
나 : 사실 특정시기만 되면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스물스물 올라와요. 고향에 갈 수 없었던 몇 년 전 추석연휴, 지금은 이 세상에 없어 볼 수 없는 친구생일과 제 생일이 함께 있는 7월, 남들에게는 좋은 곳에 놀러가는 연인처럼 보였겠지만 아무도 모르는 아픈기억이 묻은 크리스마스 이브 등등 다양해요. 몇년전 상담을 했을때, 상담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그 기억을 너무 지우려고만 하지말고 오히려 하루 날을 정해서 온전히 생각해보는건 어떻냐고요. 예를 들어, 친구의 생일날 촛불을 켜고 마음속으로 그 친구와의 기억을 추억한다든지 등등이요. 그렇지만 그게 또 쉽지 않아요. 아직도 아프고 슬프고 힘들거든요.
심리상담선생님 : 그래요. 아마 그때는 00님이 지금보다 더 마음의 기운이 떨어져서 아마 그당시에는 그게 옳았을지 몰라요. 예전에 상담선생님깨 그 이야기를 들은게 언제였죠?
나 : 대충 지금부터 한 5년전이었던거 같아요.
심리상담선생님 : 그래요. 그럼 5년동안 그렇게 힘든기억을 하루 날을 정해서 의식적으로 떠올려보는 날들을 가졌던거네요. 예를들면 지금은 세상을 떠난 친구에 대해 내가 막지못했다는 죄책감같은거요. 근데, 지금은 그만해도 될거같아요. 5년이면 충분히 했고, 이제는 온전히 놓아주세요. 과거의 일들은 흘려보내주세요. 한동안 온전히 기억하고 느끼는 것을 연습했다면, 이제는 지금 여기 현재를 사는거에요. 어때요? 이번에도 착실히 연습해보는거에요.
나 : 숙제인가요? 그럼 또 제가 자신있죠. 어쨌든 상담선생님이 해주셨던 이야기니까, 계속 그 방법을 유지해봤는데 그게 어느 순간부터는 더 힘들어졌거든요. 이제는 놓아주는 연습을 해볼께요. 그게 더 편한지 한번 볼께요. 하하하
심리상담선생님 :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고, 지금은 그만큼 성장한 00님에게 맞는 방법인거에요.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그 힘든 사건들을 외면하지 않고 제대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겼죠. 근데 이제는 너무 곱씹기보다는 현재 여기를 살아가는 거에요. 그게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고요. 00님은 또 잘 할 수 있을거에요.
그날들을 떠올리는 '연락두절'은 깊은 곳에 숨겨뒀던 마음의 상흔을 불러일으키는 시작 버튼이 되곤 한다. 그럴 때 이 노래를 들으며, 되풀이되는 악몽일지라도 난 괜찮을 거라고 주문을 외운다. 우리집에 같이 사는 남의 집 아들이 내 마음의 암흑 버튼을 눌러대면, 방탄소년단은 그런 나에게 괜찮다며 토닥토닥해준다. 그렇게 그들의 음악으로 아팠던 과거에서 괜찮은 내가 있는 현재로 이동한다. 지금은, 괜찮다. 그 기억들이 나를 압도한다 하더라도, 나에겐 현실로 돌아오는 마법의 주문과 같은 이 노래가 있기에. 요술램프 지니처럼, 내가 재생 버튼 한 번만 누르면 그들이 소환되어 나를 토닥여준다. 그렇게 괜찮음을 스스로 만들어간다.
여전히 악몽들을 기억하지만, 괜찮을거라고 주문을 외워보며. I'm fine.
덧.
이 노래의 킬링 포인트, 피식 웃게 되는 지점이 있는데, 슈가의 '수고 했어'이다.
내 어깨를 무심하게 툭 치듯, 흘리면서 재빠르게 지나가는 '수고 했어'란 말에 하루의 고단함이 씻겨 내려가는 듯하다. 무릇 위로란 그런 것 같다. 진심은 담되,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쓱 다가오는 것. 그렇게 그들은 내 안에 위로를 심어준다.
<나의 최애는 당연하JIN님이지만, 슈가의 입동굴 앞에선 언제나 '무장해제'된다. 이래서 외모는 중요하다. 나는 분명 외모보고 결혼했는데, 왜 지금은 '분노장전'만 되는지.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