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하다 보면 '더 편하게'와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질 때가 있다. 사실 두 가지는 양립하기 어렵다. '더 잘하고' 싶으면 더 편하게 가 아닌 '더 열심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긴 번거로워 조금이라도 쉽게 목표를 이루고 싶어 지름길을 찾는다. 이 두 가지를 조화시키는 방법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그 분야의 전문가 도움을 받는 것이다. 이것이 운동센터에서 헬스 트레이너님과 1:1 운동을 시작한 계기였다.
갓 상경한 시골쥐처럼 수많은 운동기구 사이에서 길을 헤매다가 뭔가 나에게 맞는 운동을 찾고 싶은 마음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트레이너(Trainer)'라고 쓰여있는 티셔츠를 입고 운동하는 사람 옆에서 시범도 보여주고 계속 입으로 격려(?)도 해주는 훈훈한 모습을 본 후 궁금했다. 전문가와 함께 운동을 하면 내가 혼자 운동을 하면서 헤매는 수고도 줄테니 좀 더 편하면서 운동효과는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환율 시대에 미국에 거주하는 무급여 육아휴직자가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가장 강력한 동기, 바로 '무료 1:1 맞춤 운동'체험이 운동센터 앱에 알림으로 뜨자마자 신청을 했다.
트레이너 선생님은 친절했고, 알려주는 운동기구에 가서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니 편했다. 혼자 운동을 할 때는 이 운동기계가 이렇게 쓰는 게 맞는지, 이 정도 중량이면 적당한 건지, 손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발은 어떻게 둬야 하는지 등 궁금한 게 많았는데 트레이너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되니까 머릿속을 채운 많은 고민들이 한 번에 해결되었다. 이대로만 매일 하면 종이인형 같은 내 몸뚱이가 얄팍한 솜인형 정도까지는 될 수 있을 듯했다. 특히 매체에서만 볼 수 있던 탄탄한 근육들을 실물영접을 하며, 친절한 말투와 미소의 트레이너 선생님이 내가 운동을 끝낼 때 마다 하이파이브를 청하는게 백미였다. 참으로 즐겁고 운동 후 달콤한 보상이란 게 이런 것인가, 하며 한없이 승천하려는 광대를 추스리기 바빴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여기가 바로 미국이고 나는 영어가 그다지 반갑지는 않은 사람이다. 특히 수많은 생각에 비하여 턱없이 부족한 내 영어실력으로 인해 생각을 깎고 다듬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버퍼링도 있는 편이다. 트레이너와 만난 순간부터 잊었던 현실을 맞이했다. 어떤 목적으로 운동을 하고 싶은지, 그간 어떤 운동을 했었는지, 식단은 뭘 하고 있는지 등 구체적으로 매우 빠르게 영어로 말을 건네는데 거기에 대답하는 건 쉽지 않았다. 뇌가 삐그덕대는 몸을 컨트롤하기도 바쁜데, 그 와중에 생각을 깎고 다듬어서 영어로 출력하는 게 나의 두뇌엔 과부하로 인식되었다.
제일 절정이었던 것은 원래 영어인 단어이기에 자신 있게 말했는데 트레이너 선생님이 물음표 100개인 표정으로 대답할 때였다. 예를 들어, 그동안 어떤 운동을 해왔냐는 질문에, 그래도 자신감 있게 필라테스라고 대답을 했는데 그건 무슨 운동이지? 하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빤히 본다. 분명 필라테스가 영어가 맞는데, 뭐지? 하는 생각에 구체적으로 영어로 이 운동을 설명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더 활발한 뇌세포 움직임이 필요한 일이라 그만두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내가 한 '필. 라. 테. 스'란 뻣뻣한 발음대신 '펄라리스(?)'라고 말해야 의사소통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아는 영어 단어도 아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영어의 벽을 실감했고, 내 자신감은 또 쪼그라들었다.
원활하지 않은 대화에도 불구하고 몇 번 더 1:1 트레이닝을 신청했다. 마사지건과 폼롤러 등으로 근육을 풀어주고 운동을 하는 수업, 케틀벨을 주로 사용하는 수업 등 특화된 트레이닝까지 모두 한 번씩 다 들어보았다. 한 트레이너 선생님은 내가 고민하는 것을 눈치채고, 특별히 2번 더 무료수업을 진행해 주시는 열의까지 보여주셨다. 하지만 결국 1:1 트레이닝을 하지 않다. 그 이유는 난 운동도 혼자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영어의 장벽도 있고, 금전적인 부분도 컸다.(실제로 거절할 때는 이 핑계를 댔다. 하하하)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편안해하는가?'란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그동안 꽤 많은 운동을 시도해 보고 (금세) 때려치웠지만, 그중에서도 단시간에 미련 없이 그만둔 운동의 공통점은 타인과 하는 운동이었다. 비록 1:1 트레이너 선생님은 보조적인 역할이고 내가 혼자 하는 운동이긴 하지만, 누군가와 계속 대화를 나누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상황이 나에게는 긴장의 연속이었고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운동의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고, 강제성을 부여해서 지속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겠지만, 내 마음이 덜 편했다. 그래서 초반에 생각했던 '더 잘하게'는 달성할 수 있고, '내 몸이 더 편하게' 운동을 섭렵할 수는 있겠지만, '내 마. 음. 이. 더 편하게'는 어려웠다. 그렇게 '나'라는 사람에 대해 한 번 더 알게 된 순간이었다.
여전히 운동센터에서 친절하게 운동을 알려준 트레이너 선생님을 보면 기쁘게 인사를 하지만, 열심히 무료트레이닝을 해주셨는데 유료 트레이닝으로 이어지지 못한 미안함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리고 혹시나 한 번 더 권유할까 봐 멀리서 그분을 보면 일부러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한채 멀리 돌아서 간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다. 지레짐작으로 안 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생각을 일단 행동으로 옮겨보고 최종 선택을 하는 게 '그때 했더라면'이란 후회를 줄이는 방법임을 알았다. 또한 내가 어떤 것을 안 좋아하는지한번 더 알 수 있는 경험을 쌓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중요하지만,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아가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게 나에 대한 정보를 누적해 가는 것이 나 자신만의 색을 찾아서 나만의 행복을 만들어가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혼자 운동을 한다.
덧. 내가 약간 안면인식에 어려움을 겪는 데다가 사람 이름 외우는 것을 정말 못한다. 한참 1:1 무료트레이너를 할까 말까 하며 고민하던 중 '식단과 함께 하는 1:1 무료 트레이닝' 이런 소제목의 수업이 있길래 바로 선택했는데, 트레이너 선생님이 나에게 친절하게 무료 트레이닝을 두 번이나 해주셨던 그분이셨다. 등록할 때 선생님 이름을 봤을 때는 당연히(?) 낯설었고, 멀리서 얼굴에 수염이 있는 것을 보고 맞나, 아닌가 했는데 먼저 그 선생님이 날 알아보고 반갑게 주먹인사를 건네었을 때 난 망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날 수업은 정말 열심히는 들었지만,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트레이닝이 끝나고 유료 결제를 묻는 순서가 다가올 때쯤에는 오늘 만나서 너무 반갑고 고마웠으며, 바빠서 먼저 가겠다며 발연기를 시전하고 급하게 도망쳤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건, 운동 중간중간 나의 짧은 영어 몇 가지(고맙다, 멋지다, 대단하다 등)를 돌려가며 베테랑 방청객처럼 과한 리액션으로 내 마음을 전했다.
그 트레이너 선생님께 (내 마음의 짐을 덜어보고자) 한마디 쓴다. 트레이너 선생님(지금도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하하)! 잘 가르쳐 준 덕분에 혼자 운동 잘하고 있어요. 고마웠어요. 그리고 미안합니다. 다음엔 꼭 유료결제 할만한 사람을 만나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