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만구 씨가 갑자기 내게로 와서 나미비아로 이민을 가는게 어떻겠냐는 뚱단지같은 소리를 했다. 그 소리를 듣고 처음으로 드는 생각은, 나미비아가 도대체 어디에 붙어있는 나라냐? 아프리카 어드멘가 있겠지. 나미브 사막이 있는 곳. 얼마나 햇빛이 내리쬘까. 안그래도 전 지구적으로 물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는데 하필이면 사막으로 이민을 가자고 하는 건 뭐람. 어우, 생각만 해도 갈증난다.
나미비아의 위치, 남아프리카 적도 이남에 위치하여 북반부와 계절이 다름. 나미브 사막이 위치하며 보시다시피 초록이 거의 없고 메마름. 구글맵 갈무리.
나미비아... 그러고 보니 내가 나미비아 사람 하나를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 기억도 까마득한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때였나. 육상 단거리 예선전에 한 나미비아 선수가 출발선에 서 있었는데... 어찌나 인물이 출중하던지. 나는 그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나미비아 사람들이 잘생겼구나 싶었다. 아쉽게도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지만 내 뇌리에 그는 나미비아에는 잘생긴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기고 퇴장했다. 그 외엔 나미비아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나미비아로 이민을? 갑자기?"
"나미비아 남부에 독일인 마을이 있대. 1990년대까지 독일어와 영어를 공용언어로 써서 독일어가 대중화되어있어. 독일인들도 많고 독일학교도 있고, 심지어 독일신문이랑 독일대학교도 있대."
"그래서 뭐? 독일인과 독일학교, 독일신문과 독일대학교는 나미비아보다 독일에 더 많아."
나미비아의 독일인들 집성촌 Swakopmund. 해안가에 위치해 많은 독일인 관광객들이 찾아온다고 함. 사진은 www.mehr-namibia.com 에서 퍼옴.
20대나 30대의 나였으면 이유불문하고 일단 어디론가 떠나서 살자는 제안에 귀가 솔깃해서 위키페디아를 찾아보고 이민갈 가능성을 타진해 보았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미지의 땅에 대한 갈증으로 목말라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사람을 바꿔놓는지 나이 오십이 넘자 그런 생각은 없어지고 어떻게든 이 땅에서 잘 눌러앉아 살아야 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 나이 오십에 자식까지 딸린데다 이제 꽤 괜찮은 직업제안까지 받고 출근을 앞둔 마당에 이민이라니... 그것도 이역만리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아프리카 사막 한가운데 있는 나라에. 내가 베트남이나 태국, 일본, 중국으로 이민을 가자고 하면 그나마 좀 타진을 해볼 요량이 있다.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사는 나라, 먹는 음식도 비슷하고, 몸냄새도 비슷하고, 역사도 공유하고 있고. 그런데 아프리카는 영 내키지 않는다.
이민의 이유인 즉슨 러시아의 서유럽 공격가능성 때문이었다.
사실 우리중 그 누구도 2월 중순까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독일언론에서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 정도의 호들갑은 코로나때도 신종플루때도 떨었던 호들갑이었다. 심지어 나의 학원 동기이자 우크라이나인인 마샤 조차도 당시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푸틴이 그냥 하는 협박이라고 코웃음을 쳤었다. 나는 2월중순 우크라이나의 평안한 일상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기사에서 한 우크라이나 현지 호주인은 우크라이나의 키에프는 호주의 시드니보다 더 안전하니 걱정말라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열흘뒤 전쟁이 터졌다. 처음에 하루 몇십 명씩 독일로 몰려오던 우크라이나 전쟁난민들은 이제 하루 천 명이상 몰려들어오고 있다. 정부에서는 이들을 독일 각지로 실어 나르느라 바쁘다.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 단 3주전까지는 우리중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니 나토가 러시아를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나토의 공격은 없을 거라는 보도가 이어지긴 하지만 군대가 우크라이나 국경 폴란드로 속속 집결하는 모양새이다보니 독일인들은 불안하다. 독일정부는 현재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의사는 내비치지 않고 있지만, 독일에선 우크라이나를 도와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그러니 누구도 알수없다. 이 유럽이 또다시 불바다가 될지. 맞다. 전 역사에 있어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하루가 멀다하고 전쟁이 터지던 곳이 유럽이다. 2차대전후 유럽의 평화는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니 이때쯤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만일에 대비하는 것에 철저한 방만구 씨는 그간 이 사태에 대비하여 이민갈 궁리를 했던지 재미로 하는 소리인지 모를 소리를 했다.
"가서 뭐먹고 살건데? 분명히 외국인 월세는 만만찮고 월급은 독일 최저시급하고는 비교도 않되게 적을텐데."
"가지고 간 돈 다 떨어지면 청소라도 하고 살아야지. 유튜브 비디오 보니까 거기 사막의 석양이 끝내줘. 사막 한가운데 도로도 정비가 잘돼있어서 드라이브도 끝내줘. 저녁때 테라스에 앉아서 고기라도 구워먹으면서 평안한 일상을 보내는 거지."
"평안한 일상? 거기서 한 달만 평안하게 살아봐. 독일에 돌아오고 싶어서 환장할테니까. 독일이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나라야. 여기서 살겠다고 목숨걸고 난민들 몰려드는 거 안보여?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나라에 사는 것 만으로도 복받았다고 생각하고 여기서 살아. 이민갈 생각은 접어. 한국이라면 혹시 모를까."
"한국? 한국도 안전하지 않아. 러시아랑 지척이잖아. 북한도 있고."
"아프리카로 이민가는게 뭐 애들 장난인줄 알아? 그것도 평생 보도 듣도 못한 나라엘."
갑자기 방만구 씨는 전화기를 찾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누구와 통화하는지 모르겠지만 옆방에서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소리가 한참이나 들려왔다. 누구와 통화했는지 물어봤더니 한스 삼촌과 통화를 했단다. 숙모인 기젤라는 어렸을 때 브라질에서 살다가 독일로 온 독일인이다. 기젤라 숙모가 독일인 정착촌에서 살았으니 생판 낯선 곳에서 맨땅에 헤딩을 하느니 그 동네 가서 살면 되겠다고 혼자서 결론을 내린다. 그러면서 조만간 정찰을 하러 브라질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고 되뇌인다.
어쨌든 이렇게 우리집에 오랜만에 이민 바람이 불었다.
솔직히 나는 오랜만에 가슴에 바람이 좀 들어가서 기분이 좋았다. 어디론가 떠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나는 진짜 이민가는 사람처럼 몇 시간동안이나 컴퓨터에 코를 박고 나미비아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1인당 국민소득, 인구수, 최저임금, 교육수준, 부동산 가격, 한인사회... 한국교민이 애들까지 합쳐 30명 밖에 안되네. 그래서 한국식당, 한국식품점, 영사관, 대사관도 없네. 여권 신청하러 남아공까지 가야하는 건 좀 불편하지. 그럼 대통령 선거때도 남아공까지 가야되는 거 아냐? 뭐 이런... 외국까지 가서 찍었는데 후보가 사퇴해버리면 남아공까지 간 보람도 없고...
구글지도를 크게 확장하여 동네 구경도 하였다. 인구밀도가 낮기로 세계 2위인 나라답게(우리나라 면적의 6배, 인구수 250만 명) 도시가 가물에 콩나듯 사막위에 뚝뚝 떨어져 있었었다. 수도인 빈드훅은 사는데 어려움없이 모든 시설들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었다. 고속도로 옆에 있는 종합병원, 도시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르는 지하철, 쇼핑센터, 은행, 동물원, 호텔과 게스트하우스, 교회. 근데 절은 없겠지? 부처님의 제자들이 아프리카까지 건너가긴 좀 역부족이었나봐.
나미비아는 생각보다 유럽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의 나라였다. 내가 저 아프리카사막의 나라에서 산다면 무엇을 하고 살까 생각해 보았다. 관광안내? 한인민박? 나미비아의 우리집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보았다. 이럴줄 알았으면 뭔가 국제적으로도 먹히는 직업이나 기술을 배워놓는 건데 그랬다. 한국어를 좀 가르쳐보는 건 어떨까... 안타깝게도 한국인이 나미비아를 모르는 것만큼 나미비아인들도 한국인을 모른다. 그러므로 한국관련 사업은 무리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인터넷 서핑을 하다보니 벌써 몇 시간이 훌쩍 지났다. 재미있다.
내일은 브라질 이민에 대해서 좀 알아봐야지. 흑, 신난다!
그런데...
제정신으로 돌아오니 갑자기 무서워진다. 가볍게 글을 쓰긴 했지만 전쟁에 대한 독일인들의 공포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크라이나가 먼 것 처럼 느껴져도 독일에서 폴란드만 지나면 우크라이나다. 독일의 이웃 폴란드 인들이 느끼는 전쟁의 공포는 독일인보다 훨씬 높다. 이러니 지금 이 전쟁이 독일인들에게 남의 나라 일일 수 만은 없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알 수 있듯 오늘의 이 평화로움이 일주일 후에도 지속될 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그걸 몰라서 더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