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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이 May 07. 2020

독일 시댁과 한국 친정의 밥상머리 대화 비교

나는 대화에 있어 무뚝뚝한 반면 우리 남편은 덩치에 안 맞게 참 수다스럽다. 아무리 사소한 주제도 남자로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꺼이 늘어놓는다. 한 번은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오더니 공원에서 다람쥐가 자기를 째려본 얘기를 늘어놓았다. 그래서 뭐? 그랬더니 그 다람쥐가 어쩌면 정신질환을 앓는 다람쥐가 아니냔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초식동물이 감히 사람을 째려볼 수 있냐는 거다. 그것도 아무 잘못도 없는 자기한테. 


내가 숨겨둔 도토리를 가져 가길 했어, 지 자식을 해코지 하길 했어... 


그러면서 인터넷으로 사람을 공격하는 다람쥐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걸 듣고 저런 사소한 경험은 나라면 그냥 보고 혼자 생각할 텐데 저 사람은 그걸 꼭 가족들에게 말해야 하는 성격인가 보다 싶었다. 희한한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 남편뿐만 아니라 시댁 식구들이 다 저렇다.


 한 번은 시댁에서 저녁 모임을 가졌는데, 내가 객관적으로 식사자리를 주욱 바라보니 시부모님, 시동생, 우리 남편 모두 1초라도 빈틈이 생길세라 격렬하게 얘기하면서 때때로 언성을 높이기까지 했다. 이들이 격렬하게 대화하는 주제는 사실 정치, 경제, 브렉시트, FTA가 아니다. 너무 사소해서 알고 들으면 웃음이 피식 나는, 우리 아버지가 들으시면 남아일언은 중천금이라 했거늘 나잇살이나 잡수신 양반이 무슨 그런! 하고 혀를 차실 주제들.


민물고기와 바닷물고기 구별법(물고기 얘기 나오자마자 우리 시아버지 물고기 사전 들고 나오심),  슈퍼마켓 알디에서 파는 물건은 백화점 물건과 다를 바 없다(우리 시어머니 주장), 아니다 알디 물건은 다 싸구려다(우리 남편 주장), 동네를 배회하는 얼룩 고양이 이야기, 암젤(참새처럼 생긴 새)은 철새인가 텃새인가(이때 우리 시아버지 새 백과사전 들고 나오심, 그리고 당신이 물 종지를 정원에 뒀는데 암젤이 와서 몸을 씻고 갔다고 좋아하심)등. 이런 소소한 얘기를 하다 때때로 언성이 높아져서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경우도 실제로 있었다. 


반면 우리 집안사람들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모두들 조용하다. 딸 둘, 아들 둘, 그리고 부모님. 이렇게 여섯 이서 식사를 하고 대화를 한다면 단연코 우리는 조용히 앉아서 아버지의 연설에 귀 기울여 야한다. 주제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라에 쓸모 있는 사람, 더 나아가 인류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형제끼리 서로 돕고 내가 죽더라도 형제애를 발휘하여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 또는 맨손과 배짱 하나로 기업체를 일궈낸 한 재벌 이야기, 그것보다는 덜 훌륭하지만 과외 한 번 안 받고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통역사 시험을 목전에 둔 울산 사촌... 다들 훌륭하고 똑똑한 사람들이므로 우리는 그냥 듣고 앉아 있든가 특별히 수긍이 간다면 간간히 리액션을 해드린다. 


이렇듯 우리 집안의 대화는 우리 아버지의 연설과 자식들의 떨떠름한 리액션,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엄마의 '인자 마 고마하고 밥드소!'로 마무리된다. 이러니 언성이 높아질 일도, 싸울 일도, 자리를 박차고 나올 일도 없다.


우리 남편은 일주일에도 두어 번씩 자발적으로 전화를 해서 시어머니 시아버지와 한 시간씩 수다를 떤다. 수다의 뒤끝이 싸움으로 끝나 인연을 끊을 것처럼 씩씩대다가도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뭔가 재미있는 볼 것이 있으면 사진을 찍어 자기 부모님께 보내서 같이 웃는다. 가족들끼리 whats app 그룹 채팅룸을 만들어 자주 사진을 주고받는다. 덕분에 나는 지난 주말에 우리 시부모님이 어딜 가셨는지 알고, 시동생의 여자 친구의 수술이 두 달 미뤄진 사실도 알고 있다. 한 번은 whats app 그룹 채팅룸에 59란 숫자가 쓰여져 있어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수다를 떨면서 무슨 채팅할 껀수가 남아 저렇게 59번씩이나 사진을 보내고 채팅을 한담... 이해할 수 없는 패밀리다. 그걸 다 볼 만큼 내 인내심이 많지 않아 59개의 채팅은 보지 않고 지워진다.


나는 우리 친정집에는 전화를 해서 친정 엄마와는 수다를 떠는 편이지만 아버지와 살갑게 통화를 하는 편은 아니다. 통화를 하더라도 할 말이 별로 없다. 수다스러운 우리 남편이 한국말을 좀 배웠다면 친정에 전화해서 이러쿵 저렇쿵 얘기를 늘어놓을 텐데 그럴 상황도 안되고. 자식들이 하나같이 무뚝뚝해 아버지와는 안부인사를 넘어선 수다를 별로 떨지 않는다. 이래서 우리 아버지는 좀 외로우시다. 


여기서 나는 스몰토크의 위력을 느낀다. 대화의 주제가 크고 훌륭해야 할 필요가 없다. 가족끼리 사소한 대화를 자주, 정답게 나누어야 한다는 것. 대화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함께 주고받아야 한다는 것.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는 어렸을 때부터 차곡차곡 쌓아가야 하며 늘 쌍방 교감이어야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나의 경우를 봐도 어려서 대화가 없거나 일방통행, 상명하달식인 대화에 익숙한 자녀들은 커서도 부모와의 대화를 어색해한다.


우리 아버지야 뭐... 1939년생, 상명하달이 당연한 세대, 남아일언은 중천금이라 배운 세대. 그래서 살아온 환경이 그렇게 말하도록 만들었달까... 전쟁통에 11남매 중 밑에서 세 번째로 태어나 할아버지와 정다운 대화 한 번 나눈 기억도 없을 테고. 청장년 시절을 새마을운동과 함께 했으니  자식들과의 대화에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연설만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변명을 하자면 내가 우리 아버지께 전화를 자주 안 하는 이유는 어쩌면 내가 훌륭한 사람이 못되어서가 아닐까?  아버지가 인류에 이바지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평생 귀에 못이 박히게 말씀을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훌륭한 사람이 못돼서. 면목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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