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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이 Jan 02. 2021

여보, 오늘 나 프랑스에 잠시 다녀올께

섣달 그믐인데 불꽃놀이를 좀 해야할 것 아냐. 그냥 넘어가면 섭섭하지.

올해 독일정부에서는 실베스터 즉 12월 31일의 불꽃놀이를 부분적으로 금지했다. 내가 20년동안 독일에 살면서 이런 실베스터는 처음이다. 불꽃놀이 용품과 화약을 판매하는 것은 전면적으로 금지했고, 불꽃놀이 자체는 복잡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내 몇몇 구역을 설정하여 부분적으로만 금지했다. 그러니 허락된 구역에서 한다면 불꽃놀이를 해도 되긴 된다. 근데 불꽃이 있어야 놀이를 하지...


이런 발표를 한 이유는 모임을 금지함으로써 코로나 확산을 막고, 앞으로 생길 코로나 환자를 위한 병상확보를 하기위한 것으로 보인다. 해마다 실베스터가 되면 불꽃놀이로 인해 병원으로 실려오는 부상자가 속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발표를 너무늦게 내놓는 바람에 슈퍼마켓에서 불상사가 났다.


실베스터는 독일 슈퍼마켓들이 매상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사람들은 해마다 이 시즌이 되면 엄청난 양의 불꽃놀이 용품들을 구매하기 때문이다. 늦게가면 없어서 못산다. 독일의 유명 슈퍼마켓 체인인 알디(다른 슈퍼마켓도 마찬가지이겠지만)에서는 정부의 폭죽 판매금지 발표가 나기 이전 엄청난 수의 12월 마지막 주 카달로그를 찍어 놓았다. 물론 표지모델은 불꽃놀이 상품. 때문에 이 카달로그들을 수정하거나 버릴 수가 없어 예정대로 카달로그를 배포하였다. 배포된 카달로그를 받아든 사람들은 아마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어랴, 불꽃놀이 용품 안판다더니 알디에서 파네?





독일인에겐 한국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불꽃놀이에 대한 애착이 있다. 샴페인의 코르크 마게를 '뻥'하고 터트리고 불꽃놀이를 '뻥'하고 터트리고 나서야 새해를 맞이할 수 있다는 전통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실베스터의 불꽃놀이란 오로지 '소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나는 불꽃놀이를 사랑하지 않는다. 귀가 아프고 전쟁통에 들어온 것처럼 정신이 없다. 평생 화약놀이나 불꽃놀이 같은 건 안하고 살았던 내가 독일에 와서 처음으로 맞이한 실베스터는 내 기억에 지옥이었다.


방만구 씨와 시내에 불꽃놀이를 하다며 차려입고 나갔다가 혼비백산해서 돌아왔기 때문이다. 간밤에 잠도 안자고 어디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 나왔는지, 또 그중 많은 이들은 이미 술을 마셔 꽤 취한 상태였고 손에는 폭죽이 들려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늘을 향해 불꽃 로케트를 쏘아올리지만 종종 불꽃 로케트를 꽂은 병이 넘어져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발사되기도 했다. 젊은 애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콩알탄을 던지기도 하는데 한 번은 그것이 내 발 반경 2미터 정도에서 터지는 바람에 기절하는 줄 알았다. 사실 이 폭탄은 콩알탄보다100배는 더 시끄러워 근처에서 터지면 고막이 나갈 것 같다. 그러니 콩알탄 아니고 수류탄에  더 가깝다. 이것은 너무 위험해서 독일정부에서 판매와 사용을 금지했지만 사람들은 매해 이것을 어디서 구해오는지(대부분 폴란드에서 사오는 사람이 많다고함) 실베스터마다 거리에선 이 콩알탄들이 빵빵 터진다.


불꽃놀이는 분명 큰 즐거움을 선사하는 반면 매해 손가락을 잃는 사람, 손목이 날아가는 사람, 게다가 목숨까지 잃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희생요구한다. 그것뿐인가. 불꽃놀이가 끝나고 나면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주변이 한동안 뿌옇게 변한다. 불꽃놀이때문에 발생하는 미세먼지와 쓰레기가 엄청나다. 게다가 인간들과 함께 살고있는 반려동물과 들판의 토끼들, 강가의 뉴트리아들, 나무위의 다람쥐들은 소음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 것인가... 걔네들한테 한 해가 끝났는지 시작됐는지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냔 말이다.




방만구 씨는 실베스터가 다가오자 프랑스에 갈거라고 벼르고 있었다. 프랑스에 가서 폭죽과 샴페인을 사올거라고. 그는 구글맵을 보고 어떤 경로로 프랑스에 들어갈 것인지 궁리하고 있었다. 게다가 나더러 같이 가자고 재촉을 했다.


" 이 시국에 외국나가면 자가격리아냐? 거기까지 거리가 얼만데  폭죽사려고 프랑스엘 가. 기운이 남아도나봐."


"폭죽만 살거 아니야. 실베스터인데 프랑스산 샴페인을 마셔야지. 샴페인이랑 치즈랑 바게뜨랑도 사올거야."


"자가격리는?"


"내가 알아보니까 독일 국민은 6시부터 20시 사이에 프랑스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살 수 있대. 그건 불법도 아니라서 자가격리 안해도 돼. 20시 이전에만 프랑스를 나오면 아무 문제없어."


불꽃놀이 용품을 사려고 어지간히도 알아본 모양이었다. 방만구 씨가 보여준 구글맵을 보니 과연 자브뤼켄 공동묘지 근처, 독일국경에서 단 200미터정도 떨어진 곳에 프랑스 슈퍼마켓이 있긴 했다. 안봐도 그 슈퍼마켓에 독일인들이 북적거릴 거라는 건 짐작할 수 있다. 국경지대의 사람들은 다른나라 슈퍼마켓을 즐겨 이용한다. 사실 독일과 프랑스 국경을 넘어보면 알겠지만 말이 국경이지 나라 간판만 바뀐거나 다름없다. 길도 똑같이 이어지고 집들도 비슷하고 사람들도 비슷하게 생겼다. 국경지대의 사람들은 예사로 국경을 넘어 쇼핑하고 심지어 국경넘어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그러니 코로나 때문에 국경을 닫는다면 주민들이 얼마나 불편할 것인가.


나는 그래도 설마 설마 했다. 방만구 씨가 눈까지 내리는 섣달그믐에 그까짓 불꽃놀이 용품을 사러 프랑스엘 가겠냐고.


그런데 12월 31일.


아직 어둑신한 새벽 6시. 방만구 씨가 일어나서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는 것이 어슴프레하게 보였다.  방만구 씨는 새벽 댓바람에 흩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프랑스로 향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프랑스 국경까지 200킬로미터, 왕복 400미터의 여정이다. 9시정도가 돼서 아침을 먹으려는데 왓쯔앱 메시지가 왔다. 아래의 사진과 함께.


프랑스 국경을 넘자마자 폭죽파는 포장마차가 있지 않겠어? 여기서 얼른 구입했지. 나 잘했지?



어디든 영리한 장삿꾼들은 넘쳐난다. 독일에서 폭죽판매가 금지된 것을 어떻게 알고 프랑스 장삿꾼이 독일 프랑스 국경지방에 이렇게 폭죽 좌판을 연 것이다. 방만구 씨는 여기 세워진 차들의 대부분이 독일 차량이더라며 흥분된 목소리로 중계방송을 했다. 폭죽 사는데 돈을 얼마나 썼는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방만구 씨는 눈치없게도, 20만원이나 썼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한숨을 내쉬자 그는 흥분된 목소리로,


"내 앞에 독일인은 50만  어치 폭죽을 샀어. 자기 조카가 6살인데 암에 걸렸대. 걔가 불꽃놀이를 보고싶어해서 그렇게 많이 샀대나봐."


그로부터 두어 시간 후 방만구 씨는 보무도 당당하게 집으로 입성했다. 흡사 전쟁에 승리한 장군처럼 흡족한 표정으로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혹시나 그 사이에 또 코로나 정책이 또 바뀌었을가봐 자동차를 국경에 세워두고 걸어가려고 했다는 썰, 그런데 독일 번호판을 단 자기 앞엣 차가, 그리고 그 앞엣 차가 아무 문제없이 국경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자기도 따라서 들어갔다는 썰. 그 차들을 따라 가다보니 불꽃놀이 용품을 파는 포장마차에 도착했다는 썰, 돌아오는 길에 눈길에 트럭이 미끄러진 사고현장을 목격하고선 천천히 운전했다는 썰...


그는 프랑스에서 사온 물건들을 전리품이나 되는양 꺼내보였다. 실베스터에는 역시나 싼 독일의 젝트보다는 고급스런 프랑스의 샴페인을 마셔야 제맛이지 하며 비싼 샴페인을 3병이나 샀다. 그 외에도 바게트 두 개, 염소치즈, 발라먹는 마늘치즈, 후식으로 먹는 조그맣고 예쁜 케잌들, 각종 스낵과 20만원 어치의 폭죽들을 보여주었다.


이 돈쓰는 기계같은 이라구!




오후에는 밀라노에서 살고있는 빈이 남편 캐빈이랑 같이 놀러왔다. 빈은 이케아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전에 '해외를 떠돌아 다니는 이케아 직원'이라는 글에서 쓴 적이 있듯이 그녀는  해외에서 사는 것을 좋아해 늘 해외근무를 지원한다. 5년 전에는 러시아에서 살았었고, 그 후에는 스위스에서, 그 후에는 한국 이케아가 1호점을 열때 한국에 지원했다가 고배를 마신 후 현재 밀라노에서 살고있다. 크리스마스에 가족들을 만나려고 독일에 왔다가 1월 3일이면 다시 밀라노로 돌아가야한다. 가서는 2주 자가격리를 해야하고.


해마다 실베스터에는 우리 동네사람인 빌게네 가족, 빈네 가족, 그리고 우리 가족이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불꽃놀이를 하며 놀았는데, 코로나때문에 두 가족이상 만나는 것이 금지되었으므로 빌게네를 제외한 우리 두 가족만 단촐하게 만났다. 우리는 만나서 만두를 만들어 먹고 보드게임을 하며 자정이 되기를 기다렸다.



못생겨도 맛은 좋아, 우리집 고기만두!



자정이 가까워오자 우리들은 방만구 씨가 프랑스에서 사온 폭죽들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폭죽판매가 금지돼서 그런지 확실히 올해는 조용하다. 내가 체감하기로 불꽃놀이가 예년의 5분의 1정도로 줄어든 것 같다. 예년같았으면 크리스마스가 끝나기가 무섭게 수시로 어딘가에서 화약이 터지고 실베스터가 되면 하루종일 아침부터 화약터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는데 올해는 조용하다. 둘러보니 동네사람들도 샴페인만 들고 밖으로 나왔다. 방만구 씨가 불꽃놀이 용품을 꺼내는 것을 보자 동네사람들 무리가 우리옆으로 우르르 다가왔다. 방만구 씨는 자기가 구입한 물건들을 사람들한테 나눠줘서 우리는 함께 불꽃 로케트를 발사했다.





참 희안한 건...

세상에는 방만구 씨처럼 유별난 사람들이 즐비하다는 것이었다. 올해 실베스터 자정은 설마 조용하겠지 했던 내 추측을 비웃듯 자정이 되자 동네 곳곳에서 불꽃 로케트들이 발사되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방만구씨처럼 외국으로 나가서 사왔든, 해외배송으로 구입했든 폭죽을 구입한 것이 아닌가...  게다가 독일정부에서 금지한 콩알탄까지도 곳곳에서 터졌다. 심지어 우리 옆동네 어느 집에선 방만구 씨가 구입한 것의 열 배는 넘을 만한 분량의 로케트가 발사되었다. 불꽃들이 크고 아름다운 것으로 봐서 아마도 돈백만 원 상당의 비용을 들여 폭죽을 구매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것을 보면 독일인들의 불꽃놀이에 대한 애착은 정말 놀랍기 그지없다.



나, 방만구, 빈, 케빈, 미나가 방만구가 비싼돈 들여 프랑스까지 가서 구입한 샴페인을 마시고 있다. 아, 미나는 아니구나. 쟤는 맨입으로 그냥 서있다.



글을 맺으며, 여러분 우리 모두 해피 뉴이어!




PS. 뉴이어가 시작되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들어보니 올해도 역시나 불꽃놀이의 여파로 꽤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거나 사망을 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끔찍한 뉴스는 Saarland 지방에서 한 남자가 콩알탄에 불을 붙여 던졌는데, 그것이 터지지 않자 의아한 마음에 콩알탄으로 다가가 살펴보던중 터져서 얼굴이 날아갔단다. 그 정도의 부상을 입었으니 사망한 것은 당연한 일.


슈피겔지에 따르면 독일의 환경보호단체인 DUH에서는 앞으로 독일 사람들이 독성 공기를 마시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지 않도록 불꽃놀이를 전면 금지하고 시중에 폭죽들이 판매되지 않도록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글쎄, 정부에서 불꽃놀이를 금지한다고 국민들이 곱게 따를지는 의문이다.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게 응하지 않기로는 프랑스 사람들이나 독일사람들이나 도찐개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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