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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이 Jan 18. 2021

독일에서 하는 소소한 자원봉사

공공책장을 관리하는 일을 합니다, 남편이요.

나는 남의 삶에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나 혼자만 잘먹고 잘살자 하는 주의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남한테 도움을 받는 것에도, 도움을 주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 타고난 그릇이 작아 내 인생 하나 책임지고 살아가는 것도 벅차다. 그렇다 보니 데모에 참가한 적도, 자원봉사를 해본 적도 없다. 내 향이 이런지라 각종 행동단체에 적을 두고 각종 정부가 하는 일을 비판하거나 데모를 해서 자기 의사를 피력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 싶다.


그 대단한 사람이 내 주변에 하나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나의 남편 방만구 씨이다. 그는 정치적인 사람이다. 데모를 하느라고 베를린에 간 적이 몇 번인가 되고, 무엇때문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람슈타인 미공군기지에도 버스를 대절하여 데모를 한다고 간 적이 있었다. 예전에는 중국정부에서 티벳인들을 죽였다며 중국정부를 규탄하는 시가행진을 가자고 재촉하는 바람에 나는 영문도 모르고 끌려나가 눈비를 맞으며 시민들에게 전단지를 돌린 적이 있었다. 노동자 임금에 관한 슈퍼마켓 스캔들이 터지면 혼자 보이콧을 한다며 그 슈퍼마켓에는 가지 않는다. 한마디로 그는 나와 다르게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다.


프랑크푸르트로 이사온 후 방만구 씨는 동네마다 구비된 공공책장을 관리하는 자원봉사를 한다. 이사초기 한 번은 우리 동네에 구비된 공공책장에 갔다가 '이거, 아무도 안읽을 책들이 잔뜩 들어있네... 아무래도 내가 관리를 좀 해야겠어.' 이러더니 시에 연락하여 소식을 주고 받더니 우리동네 책장 관리인이 된 것이었다.


독일의 도시에는 시민들이 자기에게 불필요한 책은 기부하고 필요한 책은 갖다읽는 공공책장이 동네마다 있다. 이 공공책장은 시에서 관리하지 않고 자원봉사자들이 관리한다. 여러가지 모습을 띠지만 대부분 아래처럼 생겼다.


나의 손을 타고 가지런히 정렬된 책장. 책장 틈새로 방만구 씨의 얼굴이 보인다. 까꿍!
이번주에 가봤더니 책장주위로 책들이 팽개쳐있고 그 위로 술병들이 깨진채로 굴러다녔다. 나는 시민의 안전을 위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맨손으로 깨진 병조각을 모아서 버렸다.

이 책장 유리는 왠만한 충격에도 깨지지 않을만큼 아주 견고하고 외장은 강철로 만들어졌다. 눈비가 와도 내부에 물이 스며들거나 습기가 차지않아 야외공간에 최적화된 모습을 하고있다. 이 공공책장은 위키페디아에 의하면 쾰른 건축가 Hans-Jürgen Greve씨가 만들었다고 하며 그가 만들어 판매된 내후성 강철 캐비넷 중 390개가 독일에 있다고 한다. 책장 옆에 글씨가 새겨진 흰색 판에는 누가 이 책장을 관리하는지, 관리자의 성명과 그의 이메일 연락처가 있다. 방만구 씨의 이름과 이메일 주소도 저 흰색 판에 씌어져 있는데, 그가 이 책장 관리자로 자원봉사를 한 6년동안 그의 이메일로 책장관련하여 메일이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공공책장은 오래된 전화박스를 재활용하여 만들어지기도 한다. 1인 1핸드폰 보급이 늘면서 전화박스가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전화박스는 흉물이다. 예전에 호기심에 전화박스에 들어갔다가 바닥에 똥 한 무더기가 있어 기함을 하고 나온 후로 나는 빈 전화박스에는 왠만하면 들어가지 않는다. 그 안의 쿰쿰한 냄새도 싫다. 그런데 저렇게 책장으로 활용하면 한 번 들어가서 구경하고 싶어진다. 무슨 책들이 어떤 얘기를 담고 저기에 꽃혀있는지 보고싶어진다.

사진출처https://de.wikipedia.org/wiki/%C3%96ffentlicher_B%C3%BCcherschrank


사진출처https://www.wikiwand.com/de/Liste_%C3%B6ffentlicher_B%C3%BCcherschr%C3%A4nke_in_Hessen



방만구 씨는 공공책장 관리하는 일을 월급을 받고 하는 일인양 아주 사명감을 가지고 한다. 퇴근 길에 자주 들러 읽을 가치가 없어 자리만 차지하는 책이나 각종 쓰레기 등을 가져다 버린다. 사람들은 좋은 책들은 자기가 보관하고 그다지 소장가치가 없는 책들만 공공책장에 기부하다보니 책장을 들여다 보면 무료배부 책이나 몇십 년이나 묵어 색깔이 바래진 책이나 잡지, 너무 오래되어 더이상 정보의 가치가 없는 여행책자들이 가득하다. 당신이라면 20년 묵은 TV 가이드나 론리 플래닛을 읽겠는가? 이런 책들은 자리만 차지하니 정기적으로 정리를 해줘야 한다. 방만구 씨는 아래의 물건을 넣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신랄하게 욕을 해준다.


이미 사용한 천 마스크, 비디오 테이프, 장난감, 곰인형.


여러분, 제발 책 이외에 다른 건 책장에 넣지 말아주세요!




바늘 가는데 실 간다고 어제도 나는 방만구 씨와 함께 배낭을 메고 공공책장을 정리하러 길을 나섰다. 가보니 책장에 책들이 너무 많아 엉망으로 낑겨져 있었다. 누군가가 돌아가셔서 집정리를 했거나 이사를 간 모양이다. 우리는 책장정리를 깔끔하게 하고 배낭 두개, 쇼핑백 하나, 캐리어 하나 가득 버릴 책들을 우리집까지 운반하여 박스 컨테이너에 버렸다. 아마도 버린 책과 잡지가 통틀어 백 권 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는지 어제는 횡재를 좀 했다. 책 속에서 30유로를 주웠기 때문이다. 방만구 씨가 오래된 사진책을 버릴려고 꺼냈는데 그 속에서 10유로짜리와 20유로짜리 지폐 한 장씩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책속에 생일축하카드가 들어있는 것은 본 적이 있어도 돈이 들어있는 건 처음이다. 방만구 씨는 땅에 떨어진 30유로를 주워들고 내게 선심을 쓰듯,



"추운데 고생했으니 10유로는 너 줄께."


이랬다. 나는 똑같이 일했으니 15유로씩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랬더니 방만구 씨는 옛날에 내가 내기에 져서 100유로 빚이 있다며 난데없이 돈 얘기를 꺼냈다.


"석달 전엔가 내가 가부좌로 앉으면 100유로 준다고 했지? 내가 뚱뚱해서 가부좌로 못앉는다고 비웃었는데 결국 가부좌로 앉았잖아. 왜 100유로 안줘?"

가부좌의 바람직한 자세.


"그랬지. 그런데 가부좌로 정확하게 앉았어? 아니잖아. 두 엉덩이가 바닥에 닿아야 되는데 당신은 어정쩡하게 한쪽 엉덩이만 바닥에 닿았으니깐 내가 100유로 안준거지."


"한쪽 엉덩이가 바닥에 닿았으니 그럼 50유로라도 줘."


"알았어. 50유로 주긴 주는데, 얼마전 당신 청구서 내가 지불한 거 생각나? 그런걸 자꾸 미루니까 내가 자기 청구서를 송금하지. 75유로 내놔."


이렇게 옥신각신 줄돈 받을 돈을 따져보니 결국 30유로를 내가 다 가져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나는 주운 돈 30유로를 다 받아서 흐뭇하게 주머니에 넣었는데... 방만구 씨가 자기가 현금 가진 것이 없어서 내일 점심 사먹을 돈이 없으니 30유로만 빌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주운 돈 30유로를 몽땅 방만구 씨에게 빌려주었다. 우리의 관계가 늘 이렇다. 큰 돈이건 작은 돈이건 이 돈쓰는 기계한테 모든 돈이 다 흘러들어간다. 평생 살아가면서 30유로를 되돌려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방만구 씨가 데모를 하느라 밖으로 나돌고 사람들에게 목청을 높여가며 정치인과 투자은행들을 비판해대긴 하지만 그의 앞가림이고 뒷치다꺼리들은 다 내 몫이라고 보면 된다. 데모를 하러 간다고 하면 내가 미리미리 저렴한 표를 끊어준다. 요모조모 따져서 가성비 좋은 호텔을 예약해준다. 내가 해주지 않으면 저 돈쓰는 기계는 대충 아무 호텔이나 예약하고 출발일이 임박해서 기차표를 사게 되므로 가계지출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공공책장 자원봉사도 그렇다. 방만구 씨는 손이 뭉툭해서 그런지 좀처럼 책들을 키를 맞춰 예쁘게 정리하지 못한다. 내가 가야 책들의 키를 맞춰서 딱딱 신속 정확하고 예쁘게 정리가 된다. 내가 정리를 촤라락 해놔야 사람들이 한 눈에 알아본다.


'어머, 이렇게 가지런한 걸 보니 여기 자원봉사 하시는 분이 다녀가셨군. 누군지 모르겠지만 매번 이렇게 수고를 해주셔서 너무 감사한 걸...'


저예요 저! 방만구가 한 거 아니고 제가 다 했으니 저한테 감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PS.

공공책장과 비슷한 개념으로 함부르크에는 공공 버스책장이 있다.

함부르크의 버스에는 아래의 그림과 같이 버스를 타고 가면서 읽을 수 있도록 버스안 이동 도서관이 운영중이다. 아래의 함부르크 버스조합 VHH가 제공하는 유투브 방송을 보면 버스에서 승객들이 어떻게 책을 읽고 반납할 수 있는지 자세한 방법을 알 수 있다. 2010년부터 함부르크 버스조합 VHH는 150개의 버스에 간이도서관을 설치하였고 총 90.000개의 책을 승객들이 읽을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그 많은 책들은 함부르크 소재 Stilbruch라는 중고 물품 사업자가 버스조합과 파트너 계약을 맺고 제공해주고 있다. 승객들은 승차후 책을 읽다가 계속 읽고 싶으면 책을 집으로 가져가는 것이 허락된다. 반납은 다음 승차시 아무 버스에서나 가능하다.

버스 도서관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유투브 방송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j_4nKVql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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