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무것도 못하는 시간
아빠가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아빠의 요구는 날마다 많아지고, 엄마도 늙어 아빠를 돌보기에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이 상태라면 아빠가 입원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빠가 맘을 먹은 듯 먼저 입원을 하겠다고 나섰다.
아빠는 이전에도 요양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허리를 다쳐서 수술을 하고, 운신을 하지 못하여 입원하여 한동안 재활을 했었다. 그때도 아빠는 시시때때로 퇴원하고 싶어 했다. 집에서는 밤이고 낮이고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하며 지냈는데 병원은 그럴 수 없으니 답답했을 것이다. 결국 아빠가 혼자서 화장실에 갈 수 있게 되었을 때 퇴원을 해서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아빠는 서둘러 요양병원에 가자고 재촉을 했다. 아빠는 짧은 말이었지만 편하게 있다가 죽고 싶다고 했다. 날마다 진통제나 수면제를 찾는 아빠를 생각할 때 입원은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입원한다면 다시 건강해져서 퇴원할 수 있을 거 같지 않았다. 그 사이 아빠는 더 많이 늙고, 쇠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서둘고 싶지는 않았다. 더구나 요양병원에 입원하겠다는 아빠의 말은 진심일 수도, 아닐 수도 있었다.
“아빠, 자식들 모여 밥 먹고 가요.”
“아니다, 그냥 가자.”
“왜, 천천히 가지.”
아빠는 서둘러 가자고 재촉을 했고, 그것이 슬프면서도 마음 밑바닥에 아빠 맘이 바뀌면 어쩌나 했다.
늘 그렇다. 이 마음과 다른 저 마음이 충돌한다.
그렇게 아빠를 입원시키고, 우리는 잠시 휴가를 얻은 듯이 쉬자 했다.
우리가 아는 아빠는 병원에 계속 계실 분이 아니었다.
엄마의 몸과 정신을 갉아먹으려는 듯 요구사항이 많았던 분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틀 만에 나가고 싶다는 전화가 왔다.
의사는 적응 기간이 필요하니 가족도, 환자도 참으라고 했다.
우리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통해 엄마도 아빠도 사는 방법을 찾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아빠의 상태는 빠르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편하게 있다 죽고 싶다던 아빠는 그냥 죽고 싶었던 것처럼 몸이 나빠졌다.
우리는 아빠를 병원에 모시고 간 것이 아빠의 건강을 더욱 해친 것이 아닌지 자책하기 시작했다.
아빠의 신호는 간단한 것이 아니었는데 우리는 알아채지 못했다.
우리는 그즈음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았는지 모른다.
아빠를 돌보는 엄마, 가까이 살며 엄마 아빠를 돌보던 언니까지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그걸 전해 듣는 우리도 비슷했다.
나름 열심히 보살핀다고 생각하는데 왜 아빠는 저러시는 걸까 답답하고 속이 상하곤 했다.
아빠는 늙고 정신도 노쇠했는데 나는 예전 아빠만 생각하고 그렇게 아빠를 대했는지 모른다.
입원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아빠의 몸은 손을 쓰지 못하게 나빠졌다. 의사의 말대로라면 삼키는 법을 잊었고, 천식환자인 아빠가 호흡을 돕는 약을 스스로 들이마시지 못한다고 했다.
"삼키는 법을 잊다니요?"
"음식을 삼키는 건 아주 복잡한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 겁니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나 몇 년에 걸쳐 젖을 먹이고 이유식을 먹이고 나서야 밥을 먹게 되는 거예요. 치매나 몸이 노쇠해지면 삼키는 법을 잊는 경우가 많아요."
의사와의 상담은 길게 이어졌지만 별다른 희망을 찾을 수 없었다.
아빠는 줄곧 호흡기를 달고 계셔야 했다. 다시 집으로 모시고 싶었지만 집에 가면 호흡이 더 힘들어질 거고, 환자가 고통스러울 것이며, 그걸 보는 가족도 견디기 힘들 거라고 했다.
우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만 태웠다.
그즈음 나는 어두운 밤마다 아픈 생각들로 몸부림쳤다.
악몽이 아닌 악몽 같은 무서운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그건 내가 한 행동과 말, 내가 한 선택과 결정으로
아빠가 돌아가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끔찍하게 두려웠다.
아빠의 요양병원행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엄마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 없고,
그렇다고 자식들이 모든 생활을 작파하고 아빠 옆에 붙어서 돌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아서
그래서 아빠가 저리 힘들고, 돌아가시는 건 아닐까
매일 밤이 무서웠다.
남편은 자기 부모님의 일일 때 어떤 선택을 할까?
다른 이들도 이런 선택을 할까?
이런 시간이 멀지 않았다는 걸 알았는데
정말 제대로 알고 있었던 건지 싶게 내 마음은 허둥지둥 이었다.
하나님, 아빠를 도와주세요.
이를 어쩌지요?
뭘 어떻게 하는 게 맞나요?
하나님, 답을 주세요.
아빠는, 우리는 뭘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금 우리는
아직인가요?
이미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