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선재의 가을

by 김재선

하늘이 유난히 푸르다

이제 가을로 접어들었다

어릴 적 느꼈던 가을하늘을 요즘에 와서야 다시 찾은 것 같다

어릴 적 우물가 옆에 놓여있는 평상에 누워 뭉게구름이 양도되고 자동차도 되는 걸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곤 했다

엊그제 하선재에서 한해에 서너 번 깎는 잔디의 마지막 잔디를 깎다가 땀이 나서 95미터 암반속에서 뽑아 올리는 차가운 지하수를 마시고 힘이 부쳐 수돗가 옆에 짜놓은 평상에 누웠다

해발 400미터 산속에서 보는 하늘은 어릴 적 바라보던 하늘처럼 푸르고 아름다웠다

거긴에 여전히 많은 양 떼들이 있었고 기차도 있었다

오십여 년이란 세월이 흐르고서 이렇게 산중에 와서야 어릴 적 하늘을 다시 찾은 것이다

커다란 단풍나무와 고로쇠 나무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에 선 하얀 뭉게구름이 마치 칠판에 그려지는 그림처럼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 낸다

그걸 바라보고 있노라니 상상의 나래로 빠져든다

어릴 적 여덟 살 동심으로 돌아가 빨랫줄에 않은 잠자리를 손가락으로 살알짝 잡았다

강하게 퍼득이는 날갯짓에서 또 하나의 생명을 느낀다

손가락사이로 잠자리 날개를 끼워본다

잠자리는 무얼 잘못했는지 수도 없이 발을 모아 빈다

결국 그 애처로움과 수도 없이 구하는 용서에 다시 하늘로 날려 보낸다

잠자리는 용서함을 받은 것에 고마운 걸까? 머리 위를 한 바퀴 돈다음 모과나무사이로 날아갔다

모과나무엔 언제 달렸는지 주먹만 한 모과 여러 개가 달려 햇볕에 팔뚝근육처럼 키워져 가고 있다

난 모과나무에게 물 한번 제대로 준 적이 없는데

언제부터 저렇게 실한 열매가 달렸는지 모르겠다

혹 모과나무 아래를 지나다 저 떨어지는 열매에 머리를 맞기나 하면 어쩌지?

난 다시 어른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보니 높은 나뭇가지 위엔 전지 하느라 잘라놓은 가지가 얹혀 말라버려서 노랗게 변해 있었다

하선재를 지으면서 옮겨 심은 나무를 몆 그루 말라죽이거나 병들어 죽인적이 있어 이나무들이 또 죽는 것 아닌가 덜컥 겁이 났다

보기가 싫어 나무에서 떼어놔야 하는데 너무 높아서 아주 긴 대나무나 낚싯대가 아니고선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아니면 높은 사다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높은 사다리도 없을뿐더러 오르는 것조차도 내겐 만만치 않은 일이다 잘 균형 잡고 오를 수 있을지 겁이 난다

낮은 사다리 놓고도 전구하나 갈 때도 떨어질까 덜덜 겁을 내면서 갈아 끼웠던 나다

이젠 넘어져서 뼈라도 부러지면 붙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리는 나이가 돼서 더 그런다

낚시 좋아하는 허동수에게 못쓰는 낚싯대 있음 하나 달라고 할까? 아니다 장날에 가보니 여러 가지 중고 물품 파는 만물상이 있던데 거기서 본 것 같으니 거기부터 가봐야겠다


"여보" 하늘 쳐다보면 혼자 뭘 중얼거리고 있어요

아내는 국수를 비벼내 오면서 내 모습을 바라보았던 모양이다

"응 하늘을 봤어 구름도 , 모과 달린 것 좀봐"

아내와 평상에 앉아서 국수를 먹는다

새콤하고 달달한 국수를 입가에 붉게 묻혀가면 서로를 쳐다보면 웃는다

하선재의 가을도 붉게 물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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