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멍 바당

어머니의 눈물이 모여서 이룬 바다

by 김재선

겨울바람이 제법 찬 12월 한 해가 다 지나갈 즈음에 조천에 사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서귀포에서 횟집을 하는 남동생이 전화를 했다.

서둘러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갔다.

흰 수의를 입은 어머니는 편안한 모습으로 누워 계셨다.

어머니가 흰옷을 입은 것을 처음 본 것은 내가 어릴 적 아버지가 배 타고 나가신 지 한 달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차, 마을 입구 할머니당으로 불리기도 한 서낭당에서 굿을 할 때 흰옷을 입고 셀 수 없이 손을 비벼대던 어머니를 본 것이 처음이 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젊었지만 슬프게 울고 있었는데 지금 흰옷을 입은 어머니는 주름진 얼굴이지만 너무나도 편안해 보였다.

아버지가 바다에서 실종된 후 어머니는 비가 와도 물질을 나갔다. 그렇게 해야만 어린 삼 남매를 키울 수 있었다.

내가 어느 정도 컸을 때 심한 물질 후유증으로 어머니가 밤마다 아파서 약을 먹는 것을 봤다.

파도가 심해서 다른 해녀들은 물질을 안 나가도 어머니는 나갔다.

그런 날 밤이면 어머니는 앓는 소리를 내곤 했다.

내가 대학을 가고 서울에 자리를 잡고 결혼을 한 후에도 어머니의 물질은 계속 이어졌다

막내 여동생이 미국으로 시집을 간 후에도 어머니는 동생이 하는 횟집 장사를 돕는다고 물질을 하셨다.

그동안 어머니에게 여러 번 중신이 들어왔지만 어머닌 어린 삼 남매 때문에 한사코 거절했다.

어머니의 어머니이신 외할머니도 해녀 이셨다.

외할버지는 어머니를 낳은 지 몇 년 안돼 육지로 돈 벌어 오겠다고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외할아버지는 4,3 사건 때 빨갱이 부역자로 몰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매일 술만 마셨다.

외할머니를 때리고 집안을 부술 때면 어린 어머니는 부엌에 들어가 숨어 울었다.

그 후 외할아버지가 소식이 끊긴 채 어머니는 외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에게 맞은 후유증으로 아파 누웠을 때부터 어린 어머니가 외할머니 대신 물질을 시작했다.

그때 어머니가 국민학교를 막 졸업한 후였다.

그리고 어머니가 한림으로 시집간 후 조천 댁으로 불리면서도 물질을 계속했다.

우리 삼 남매가 태어나고 아버지가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은 후에는

남편이 그리울 때도 어머니는 물질을 하면서 잊으려 애썼다. 어머니는 삼 남매에 모든 애정을 쏟으며 살았다.


화장이 끝나고 어머니의 뼛가루를 조천 앞바다에 뿌렸다.

하얀 뼛가루가 파도를 타고 멀리멀리 더 큰 바다로 나아갔다.

갈매기의 끼룩거리는 소리가 더욱 구슬프다.

이제 어머니는 바다와 하나가 되었다.

할머니의 눈물 어머니의 눈물이 서린 바다

이제 모든 슬픔과 근심에서 어머니는 자유로와 지셨다.

어머니가 잠드신 바다 할머니가 잠드신 바다를 어멍 바다라고 부른다.

어멍 바당은 많은 해녀들의 애환이 깃든 바다이고 우리를 키운 바다이고

어머니를 지켜준 바다이다.

그래서 어멍 바당은 어머니이고 나의 고향이다.

이전 01화여행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