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선 May 30. 2020

무쇠 가마솥

건강한 밥 짓기

몇 해전  무더운 여름날  점심식사를 하려고 회사 근처  시장 주변에  있는 식당 가는 길에  나이 많고  힘없어  보이는 노인이 리어카에  잡다한 물건들을 싣고 지쳐 보이는  모습으로 그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자주 가는 식당 앞이라  기다려  식사를 다하고 나올 때까지 지켜봤지만 한 개의 물건도 못 팔고

그늘진 곳에    담배만 피워대고 있었다.

보아하니  아직 점심식사도  못 한 것처럼 보여

안 됐다는 생각에 뭐라도 팔아주고 싶어  물건들을 쭈욱 훑어보는데 작은  무쇠 가마솥이  보이지 않던가  가마솥이 시골집에 있긴 하지만 너무 커서 무슨 큰일 있을 때만  사용하던 터라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못하지만  저 정도 사이즈면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걸 사기로 했다.

하지만 아내는 그 솥도 무겁고  물도 맞추기 어렵고 길도 내지 않아서 사용하기 어렵다고 한쪽 구석에  박아   놓아  녹만 쓴 채 자리만 차지하고 편한 전기밥솥만 썼다. 아내가   밤과 대추, 버섯. 은행 등을  넣은  영양 돌솥밥이  먹고 싶다길래  지난가을 아내 생일을 맞아   영양밥을 해보려고 오래간만에 녹슨 가마솥을 꺼내 철 수세미로 녹을 모두 벗겨내고  예전  할머니가 하시듯이 솥을 불에 달구고  들기름으로  몇 번이고  칠하고 말리고 힘들게 길을 낸 후에  영양밥을 기로 했다.

손에 익지 않고 밥물을 잘 대중치 못해 처음엔 좀 태우기도 하고 뜸도 잘 못 들여 고두밥이 되곤 해서

아내에게  핀잔도 듣기도 했지만

몇 개월이 지난 지금은  가마솥에 한 밥이  고슬고슬하고  밥맛이 좋아졌다. 게다가 구수하게 알맞게 탄 누지와  숭늉 이것도  훌륭한 후식이 된다.

그동안 솥도 길이 나고 사람도 길이 난 거다.

이제 아내는 으레 밥 준비는 내가 가마솥으로  하는 건 줄 안다.  후식으로 숭늉까지 내놔야  제대로 밥을 먹은 것 같다고 한다.

산에 오르다 둥굴레 뿌리를 캐 잘 씻어 썰어 넣고  작년에 따놓은 아로니아, 새로 막 나온 버섯을 잘라 넣고 밥을 지으면 구수하고 맛도 좋다.

봄 달래를 캐서 양념간장에 쳐서 비벼 먹어도 좋고, 요즘 이것저것 나오는 봄나물 텃밭에 상추 몇 개  뜯어다가  참기름이나 들기름 넣고 고추장에 비벼 먹어도 좋다.

게다가  구수한 누지와 숭늉은  환상의 조합이다.

어린 손자 석도  우리 시골밥상은 건강한 밥상이라며 좋아한다. 가끔 누룽지를 긁어내 약의 설탕을 쳐서 주면 좋아서 난리다.

내가 어렸을 적엔 과자도  지금처럼 많지도 않아 군것질이라고 누룽지, 부침개 정도가 다였는데

지금은 누지가 별식이 되었으니  세상이 변하긴 많이도 변했다.

예전에는  가마솥 밥을  밥그릇에 푸고 밥뚜껑을 덮어 아랫목 이불속에 넣어 두었다가  먹곤 했지만  요은 전기밥솥에 옮겨 담아 보관할 수 있으니 참 편리해졌다.

가마솥으로 밥 하는 것은 전기밥솥으로 밥 하는 것보다  귀찮고 손도 많이 가서  불편하지만 전기밥솥으로 밥 하는 것보다  얻는 것이 너무나 많아 좋다, 게다가  아내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라도 난 오늘도 무쇠솥으로 밥을 다.

그렇게 아내와 난 무쇠솥처럼 서로 길들여가면서 또 하루를  살아간다.


작가의 이전글 아프다는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