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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N 전기수 Jun 03. 2020

월경을 보는 시각의 변화

김형환 교수의 강의를 듣고-2-

최근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싸움을 ‘제2의 냉전’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냉전은 과거 미국과 소련 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을 일컫는 말이었다. 1989년 11월 9일,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장벽이 무너진 이듬해 10월 3일, 분단국 독일이 통일되었다. 


1991년 옐친 대통령의 러시아 공화국을 비롯한 여러 공화국은 소비에트 연방을 탈퇴하고 따로 독립 국가 연합(CIS)을 결성하였다. 마침내 소련은 해체되었고 1922년 탄생한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소련은 7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승리를 예견했지만, 실제 역사는 공산주의의 패배로 끝났다. 과연 무엇이 자본주의를 승자로, 공산주의를 패자로 만들었을까. 그 이유를 피터 드러커는 『프로페셔널의 조건』에서 ‘생산성 혁명’ 때문이라고 말한다. 프레드릭 테일러에서 시작된 ‘작업의 과학화’는 생산성의 증가를 가져왔다. 여기서 비롯된 ‘생산성 혁명’은 마르크스의 예견을 빗나가게 만들었다.


모든 결과가 ‘양(陽)의 결과’만 가져온 것은 아니다. ‘음(陰)의 결과’도 가져왔다. ‘생산성 혁명’이 가져온 ‘음의 영향’은 모든 대상을 생산성으로, 원가와 가격, 가치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 대상에는 사물은 물론, 사람도 포함된다. 그러다 보니, 인간의 능력은 물론, 몸까지도 ‘생산성’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특히 여성의 몸을 보는 시각이 그러하다. 에밀리 마틴은 『여성의 몸,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실패한 생산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월경에 적용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냉소적인 의미에서 여성이 생리를 할 때 조절이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출산을 할 수 없고, 종을 지속시킬 수도 없고, 아기와 함께 가정에 안주할 준비가 안 되어 있고, 남성의 정자를 성숙시키기 위해 안전하게 따뜻한 자궁도 제공할 수 없다. 생산할 수 없는 실패의 이미지 뒤에 있는 부정적인 힘은 여성의 몸에 비유적으로 적용될 때 중요하다. 



생산성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여성의 월경은 낭비로 보인다. 피의 낭비, 난자의 낭비, 생리대의 낭비. 월경은 ‘잉태치 못한 난자의 폐기’이고 월경혈은 거기서 발생한 부산물일 뿐이고, ‘폐경’은 ‘생산조차 못하는 자궁의 실패’이다. 생산치 못하는 자궁은 떼어내도 무방하다. 이것이 생산성 사회에서 바라보는 월경과 자궁의 현실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생산성 중심의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전염된 공장 직원으로 인해 공장의 생산 라인이 장시간 멈춰버렸다. 남성들이 ‘폐공(閉工)’을 경험한 것이다. 생산성 제로의 상황이다. ‘공장’이 자궁이라면 ‘잉태’를 그친 것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생산성 중심 사회’에 화두를 던졌다. 우리가 그토록 신봉하던 ‘생산성’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절감하게 하였다.


이제 우리의 가치 체계가 바뀔 때다. 생산성 중심에서는 ‘원가’, ‘가격’이 중요시 되었다면, 이제는 ‘가치’ 중심 사회로 회귀하는 것이다. 인간을 ‘생산성’과 ‘효율성’, ‘원가’나 ‘가격’이 아닌 ‘가치’로 판단하는 것이다. 여성의 몸이나 월경을 보는 시각도 생산성 패러다임의 시각에서 벗어나 때,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려는 태도를 가질 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류에게 던진 질문에 바르게 대답한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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