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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N 전기수 Jul 10. 2020

박원순 시장의 부고를 접하고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이 책을 읽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았습니다.


왜 그리하셨을까.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셨을까 고민하고 찾아보았습니다.


아마도 시장님은 어느 순간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 사이의 간극이 커진 것을 느끼셨나 봅니다.

책에서는 이 둘의 간극이 클수록 피해의식과 방어태세가 높아진다고 하더군요.

그 피해의식과 방어태세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장님은 완벽주의자이셨나 봅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부인하는 행위를 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나 보죠.

책에서는 말합니다.


 원망스럽고 억울하게 생각되는 일들 중에는 누구 탓을 하기에 애매한 경우도 있고, 오히려 자기 탓이었던 일도 있습니다. 오히려 자기 탓이었던 일도 있습니다. 설령 누구의 잘못이었대도 이제 와서 이미 소용없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감과 절망감, 수치심과 모멸감이 뒤엉켜 있는 기억들을 놓고 쏘~ 쿨~하게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나쁜 나'가 아닌 '불쌍한 나'를 설정하는 이유는 아무튼 살아보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비난이라도 해야 통제감 상실, 불안정감, 불안감, 열패감으로부터 자신의 주의를 돌릴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도 '나쁜 나'가 아니라 '불쌍한 나'로 살아보려 하셨으면,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상처 받은 자의 아픔은 남지 않고, 그들 모두를 보듬어 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누군가의 평안을 위해, 혹은 관계와 관련한 왜곡된 생각들로 과도한 죄책감을 의무적이며 지속적으로 경험해야 만 하는 삶을 살았다면 '자기본위 편향'은 점차 약화되어 자신을 지켜낼 기력을 잃게 된다고 책에서 말합니다.


인권 변호사, 성평등주의자, 시장 박원순 이전에 그냥 인간 박원순을 먼저 생각하셨으면 했던 아쉬움이 남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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