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강간을 당하는 순간에도 느끼는가

남성이 갖고 있는 여성에 대한 착각

by 간서치 N 전기수

고 박원순 전 서울 시장의 성추행 건을 생각하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김한길 작가의 [여자의 남자]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여 주인공은 유력 대통령 후보인 정치인의 영애다. 재벌의 아들과 정략적으로 원치 않는 결혼을 하였다. 둘은 섹스리스 부부로 살아가는데, 가끔 남자가 완력으로 여성을 탐할 때가 있다. 부부 강간인 것이다.


관계가 끝나고 여자는 자신의 몸에 남은 흔적을 보고 더 괴로워하는데, 이유는 자신이 겉으로는 싫어하면서도 몸에는 즐겼다는 흔적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적 게으름이다. 여성의 몸을 모르는 지극히 남성적인 작가가 상상해서 만든 이야기다. 여자는 성에 미친 존재가 아니다. 몸이 그런 건 의지와는 무관한 자기 방어 기제일 뿐이다. 느끼는 것과는 상관이 없이 그런 반응을 몸이 보인 것이다. 그런 사고는 강간으로 형사 재판을 받는 중에도 나타난다. 그런 증거를 가지고 강간이 아니라 서로 즐겼다고 주장하는 피의자가 있다. 그러나 오르가슴을 느끼는 기관은 뇌이다. 공포와 억압에 억눌린 강간의 순간에 뇌는 결코 쾌락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오해가 확장하면, 성추행, 성폭행 피해조차 합의지 강제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데 이른다. 너도 느끼지 않았느냐. 왜 반항하지 않았느냐. 네가 그런 옷차림으로 유혹하지 않았으면 내가 그런 짓을 했겠느냐. 네가 자초한 일이다. 이런 식으로 자기 합리화하려 한다. 성감수성이 심한 남성도 그런데 범인들은 오죽하겠는가.


그러고 보면, 남성은 재단사일지도 모른다. 여성이라는 원단을 자기 본위에 따라 가위질하니 말이다.


기독교 심리학자 폴 투르니에가 쓴 책 중에 [서로를 이해하기 위하여]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는 부부에게 필요한 두 가지 태도가 나온다. 하나는 상대를 알고 싶어 하는 욕구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신을 드러내려는 용기다.


내가 왜 이 말을 하냐면, 이 이론은 부부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통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여성을 알려는 의지가, 여성은 자신을 남성에게 알리려는 노력이 동일하게 필요하다. 그것이 이 땅에 남녀가 공존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남성이 여성을 알려는 의지는 요원한 일이니, 먼저 여성이 남성들에게 자신들을 이해시켜라. 먼저 몸에 대한 편견부터 이해시켜라. 여성 몸의 신비부터 시작해서 내밀한 것까지 남성들로 하여금 알게 하여라.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들이여 더 이상 남성들 앞에서 여자 이순신 장군이 되지 말라. 즉, 나의 월경을 남성이 모르게 하라고 하지 말고, 도리어 그대의 월경을 남성이 알게 하라. 그런 의미에서 매년 행해졌던 "유혈 낭자"라는 이벤트는 참 유익한 프로그램이었다. 필자도 과거 두 번인가 갔던 적이 있었는데, 그런 행사도 필요하다 하겠다.

keyword
이전 09화코, 코, 코, 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