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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Apr 18. 2020

실업(失業)의 추억

대학을 나와서 갈 곳이 없는 예비 노인들에게

문학소년에게


보내준 편지 잘 받았다.


너의 편지를 읽고 반가움과 슬픔이 교차하여 어떻게 답장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심정이 매우 착잡한 듯하구나. 경제상황이 어렵고 특히 젊은이들에게 많은 고통을 주고 있으니 가슴 아픈 일이다. 모두가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니 어느 누구를 탓할 수도 없지 않으냐?


미국까지 가서 취업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마음대로 잘 정리되지 않아서 고통이 심할 것이다. 그러나 너에게 주어진 시련이라고 생각해라. 사회진출을 위한 준비기간을 더 많이 갖는다고 생각하고, 매사에 충실하기 바란다. 현실에 충실하다 보면 너에게도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지금 너에게 주어진 시련이 앞으로 너의 생활에 좋은 바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라. 그리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오늘의 어려운 시련을 추억 삼아 이야기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너만큼의 시련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시련이 있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에 너와 마찬가지로 취업이 안되어 한 때 좌절했던 경험이 있었다. 나는 그 시절에 전공 공부를 열심히 했고 지금 내가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때의 공부가 좋은 바탕이 되었음을 생각하면서 감사하고 있다. 그 시절 다른 학생들과 같이 빨리 취업이 되었다면 직장생활에 만족했을 것이고 평범한 사람으로 성장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시련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지금도 그때의 시련을 생각하곤 하지만, 그러한 시련을 경험하지 않은 어느 누가 어렵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니?


시련을 슬기롭게 이겨나가는 자만이 성공할 수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네가 경험하고 있는 지금의 고통만큼은 아니지만 한 때 어려운 시련을 경험한 나로서 너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네가 지금의 시련을 축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너만큼 능력 있는 사람이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한다면 너만 못한 다른 사람들의 고통은 얼마나 심하겠니? 너무 실망하지 말기를 바란다.


경제환경이 호전되고 있다고 하니 머지않아 너에게도 좋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지금의 시련이 너에게 어학은 물론 시련을 이겨나갈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기 바란다. 인생을 흔히 마라톤에 비유하지 않더냐! 마라톤은 철저한 준비 없이 완주할 수 없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남보다 일찍 출발한다고 종점에 일찍 도착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네가 마라톤의 출발점에서 완주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준비하면 너에게도 좋은 기회가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힘들고 어렵겠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여유를 갖기 바란다. 아무쪼록 건강하고 좋은 경험을 쌓기 바란다. 귀국할 때는 어엿한 청년이 되기를 바란다. 취업으로 너무 속상해하거나 고민하지 말고 주어진 일에 충실하기를 바란다.


다음에 또 연락하자.


너의 인생 선배 W 교수가




소위 말하는 SKY를 나오지는 않았지만 나름 열심히 노력한 끝에 1997년 대학원 졸업 직전, 여러 군데의 은행과 우리나라 최고의 국책 연구원으로부터 취업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행복한 꿈은 잠시, 그 해 11월에 일순간에 터진 IMF사태로 인해서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그 이후에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중소기업 수십 군데에 원서를 냈지만 IMF가 터진 마당에 이러한 나를 받아줄 회사는 어디에도 있지 않았고, 나는 말 그대로 발가벗겨진 채로 사회에 나오게 되었다. 아무도 보기 싫었고 이 사회에 대한 원망과 함께 대학원 시절 모아두었던 천만 원을 가지고 취업을 하겠다는 명목으로 미국으로 갔지만, 이 또한 여의치 않았다.


여러 날을 고민한 끝에 미국의 한 구석진 방에서 지도 교수님에게 취직 한자리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그 길고 험난해 보였던 나의 취업 여정이 곧 끝나지 않을까 하는 한 가닥의 희망을 가지고 떨리는 손으로 편지봉투를 뜯었다. 마음 한 구석으로는 내심 취직자리 하나 번듯하게 마련을 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귀국을 하라는 답변을 기대하였건만, 상기의 편지에서처럼 그러한 말은 어느 곳에도 있지 않았다.


취업으로 속상해하지 말고 주어진 일에 충실하라니, 도대체 나에게 주어진 일이 무엇이었던가? 대체 어떻게 해야 이 나락에서 빠져나갈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노인 연습 06] 대학 간판은 무의미하다. 나에게 주어진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자.


이제 곧 노인이 되는 우리들에게 더 이상의 대학 간판은 무의미하다. 내가 과거에 어느 학교를 나왔네, 어느 회사를 다녔네 하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꼰대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이름을 대면 알 만한 대기업을 다니다가 퇴직을 하였다면 더더욱 심각하다. 이런 분들이 갑자기 준비되지 않은 채 노인이 된다면, 당신과 가족을 이태까지 먹여 살린 대학과 회사 간판은 이제 하등의 소용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필요한 것은 노인이 될 나에게, 아니 이미 노인이 되어 버린 나에게 주어진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는 자아 성찰의 시간이다. 이 자아 성찰의 시간을 얼마나 의미 있게 보내고, 노인이 된 나에게 주어진, 내가 재미있게 남은 여생을 보낼 수 있는 나만의 일을 얼마나 빠르게 찾아서 그 일을 시작하는지가 우리 예비 노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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