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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Aug 17. 2024

#10 두억시니와 삼신할매

[소설] 원곡동 쌩닭집-10화-끔찍한 것들 ⑤두억시니

혹부리 영감이 한동안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초가집 건너편 숲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장난스러운 아이들 같은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이야~ 할아범, 그 노래가 참 듣기 좋군.”     


노래를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니 파란불과 파란 불빛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도깨비 뿔에서 나오는 불빛이었다. 그들의 발은 모두 외발이었고 콩콩거리면서 할아버지 쪽으로 오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이냐? 너는 대체 누구냐?”

“할아범 노래를 너무 잘 부르는데? 대체 어떻게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 거지?”     


잠시 생각한 할아범은 뜻밖의 대답을 했다.      


“그.. 그건 내 혹에서 나오는 노래요.”

“응? 정말? 할아범 얼굴에 붙어있는 이 혹?”    

 

도깨비가 한 발로 깡충거리면서 뛰어왔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혹을 떼었다. 말랑말랑한 혹 덩어리를 손에 쥔 도깨비는 할아범을 향해 말했다.    

  

“이거 나한테 팔아.”

“네? 혹을요?”

“왜 싫어? 혹이랑 이거랑 바꾸자고, 여기서 노래 나온다며?”     


도깨비는 주머니에서 혹 사이즈보다 큰 커다란 금덩어리를 꺼내서 들이밀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왜 너무 작아?”     


도깨비는 주머니에서 같은 사이즈의 금 한 덩어리를 더 꺼냈다.    

  

“아.. 아닙니다. 하나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가 고맙지, 그러면 우리 거래는 성사된 거다?”     


도깨비들은 금 한 덩어리를 할아버지 앞에 놓고 외발을 이용해서 콩콩거리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할아버지는 도깨비들이 놓고 간 금덩어리를 들고 기뻐하면서 지게를 지고 집으로 가기 위해서 초가집을 나섰다.     


***      


약 1주일 후,      


깊은 산속 멀리서 웜홀이 나타났다. 웜홀 안에서 2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커다란 키에 날렵한 몸매를 가진 마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이마에는 거대한 뿔 두 개가 하늘로 치솟아 있었다. 마왕은 오른팔을 들더니, 자신의 왼팔을 옷과 함께 투투툭 떼어내서 땅바닥으로 던졌다. 검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마왕의 왼팔은 점점 자라나더니 이윽고 키가 160cm 정도 되는 붉은색의 두억시니로 변하기 시작했다. 왼팔이 없는 마왕은 저 멀리 보이는 산속 도깨비들의 대화를 응시했다. 이윽고 마왕은 자신의 팔로 만든 두억시니를 두고 왼쪽 어깨에서 검은 피를 흘리면서 붉은 웜홀 안으로 사라졌다.      


저 멀리 보이는 산속에서 도깨비들이 모여 앉아서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 조그만 뿔이 이마 양쪽에 달린 외다리 도깨비들이었다. 화가 잔뜩 났는지 그들의 뿔은 모두 파란색이었다.      


“아이씨, 또 사기당했네, 우리.”

“그다음 날 다른 영감에게 혹 하나 더 붙여서 내쫓았지만 아까운 금덩어리 하나만 손해 봤네.”

“그러게 말이야. 우리는 왜 이렇게 맨날 손해 보고 사는지 몰라.”     

 

**     


“인간한테 맨날 사기나 당하고.. 한심한 놈들.”     


어디선가 들리는 나지막한 소리에 도깨비들이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방금 전 마왕이 자신의 왼팔로 만든 도깨비인 붉은 두억시니가 있었다. 다른 도깨비들과는 달리, 두억시니의 뿔은 커다란 붉은빛이었고 목소리는 여성과 같이 앙칼졌다.      


사람들에게 장난질을 주로 치는 일반 도깨비들과는 달리 두억시니는 사람을 잡아서 얼굴을 짓이겨 죽이는 버릇이 있었다. 이런 잔인한 성격 탓에 사람들은 물론 도깨비들도 두억시니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두억시니는 다른 도깨비들과는 달리 두 발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한심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한 도깨비가 버럭 화를 내면서 두억시니를 바라봤다.      


“너희 파란 도깨비들이 다 머리가 바보 같고 다리가 하나뿐이니 매번 사기당하는 거지. 내가 좋은 방법을 하나 알려줄까?”

“좋은 방법?”

“신의 고기를 먹으면 너희 파란 도깨비들도 신처럼 똑똑해지고 다리도 나처럼 두 개가 될 거야.”

“말도 안 돼,”     


파란 도깨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도깨비가 물었다.      


“그 신의 고기라는 것을 어떻게 구하지?”

“날 따라와 봐.”     


파란 도깨비들은 두억시니를 따라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산속을 걸은 두억시니는 멀리 초가집이 보이는 한 집을 가리켰다. 초가집 주변은 온통 황금빛의 벼가 익어가는 커다란 논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저 초가집이 삼신할매와 삼신할배가 사는 집이야. 얼마 전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있지. 그 아이 역시 신이 될 거야.”

“삼신할매의 아이를 먹는다고?”

“지금 할매가 한창 모내기 중이라서 몰래 가서 아이를 데리고 나와도 모를걸?”

“우리는 못해.”

“누가 너희보고 하래?”     


두억시니는 혼자 초가집으로 향했다. 초가집 인근에 도착한 두억시니는 갑자기 한 발을 들더니 마치 외발처럼 콩콩거리면서 삼신할매의 집으로 향했다. 두억시니는 한 발로 계속해서 콩콩거리면서 초가집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     


저 멀리서 두억시니가 삼신의 초가집으로 몰래 들어가서 작은 포대기를 하나 들고는 한 발로 콩콩거리면서 파란 도깨비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더 멀리 보이는 삼신할매와 삼신할배는 모내기에 정신이 팔려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고 있었다. 이윽고 흰 포대기를 거지고 돌아온 두억시니는 도깨비들 앞에 포대기를 놓고 멀찍이 떨어져서 말했다.      


“이제 막 나온 애라서 살이 엄청 부드럽고 맛있을 거야.”

“이... 이건 아닌 것 같아. 삼신이 화가 나면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 삼신의 거대한 낫과 호미는 모든 것을 순식간에 벨 수 있다고.”

“그러니까 너희들이 여전히 바보라는 소리를 듣는 거야.”

“우리는 바보 아니거든!”

“그러면 얼른 먹고 집으로 가서 숨으면 되지, 삼신은 물론 옥황상제까지 아무도 모를걸?”

“그.. 그래도.”     

“이런 바보 같은 놈들, 너희들은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두억시니는 포대기를 열고는 안에서 곤히 잠자는 아이의 머리를 잡아서 부욱 찢었다. 아이의 머리가 떨어지더니 두억시니가 그것을 한입에 꿀꺽 삼켰다. 갑자기 두억시니가 부르르 떨더니 붉은 몸이 인간과 같이 변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두억시니는 작고 예쁜 여성의 몸으로 변했다. 완벽한 여성의 몸이었으나, 단 하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     


젊은 20대 여성의 몸으로 변한 두억시니가 도깨비들을 보면서 말했다.      


“내가 다 먹는다? 머리 먹고 인간이 되었으니, 나머지를 먹으면 나는 완벽한 그림자가 생기고 신이 될걸?”

“아.. 아니야.. 우리도 먹을래.”     


도깨비들은 포대로 달려들었다.     

 

잠시 후 선혈이 낭자한 찢어진 포대기만을 남겨 놓고 파란 도깨비들은 두 발로 어디론가 급히 도망가기 시작했다. 완벽한 인간으로 변한 두억시니가 씨익 웃으면서 도깨비들이 사라진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사라졌다. 사라지는 두억시니의 뒤로는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     


“우리 아기 젖 먹을 시간이네? 배고파서 울 때가 되었는데 왜 이리 조용하지?     


커다란 낫으로 모내기를 마친 삼신할매가 초가집 안으로 들어왔다. 방 안에서 있어야 할 포대기가 보이지 않자, 삼신은 놀라서 두리번거렸다.   

   

“우리 애가 어디 갔지?     


삼신할매는 방바닥을 살펴봤다. 그곳에는 낯이 익은 도깨비 발자국이 있었다. 한 발로 걸어온 듯한 도깨비의 발자국이 초가집 안과 밖에 나 있었다.    

 

“이 외발자국은.... 푸른 도깨비의 발자국인데..”     


반쯤 정신이 나간 삼신할매는 낫을 들고 발자국을 쫓아갔다. 산기슭으로 올라간 삼신할매의 눈에 선혈이 낭자한 찢어진 포대기가 멀리 들어왔다.      


“우.. 우리.. 애.. 기....”     


삼신할매가 정신을 잃고 포대기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내.. 내.... 이놈의 도깨비들

모두... 이... 낫으로......

옥황상제와 석가모니의 이름을 걸고

모조리 이놈들의 씨를 말려 버리리다.”    

 

정신을 놓은 삼신할매는 양손에 커다란 낫을 들고 산기슭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      


두 발로 도망간 도깨비들은 자신들의 허름한 흙집에 모여서 숨어 있었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고 커다란 낫을 든 삼신할매가 방구석에 모여든 도깨비들의 팔과 다리, 목을 마구 자르기 시작했다. 도깨비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일부 도깨비들은 원래의 모습이었던 싸리 빗자루나 낡고 녹이 슨 호미, 버려진 솥뚜껑 등으로 변신해서 숨었지만 삼신의 서슬 퍼런 낫을 아무도 피해 갈 수 없었다.      


방 안에서 아직 도망가지 못한 도깨비들의 팔다리와 머리를 모두 잘라낸 삼신은, 선혈이 낭자한 거대한 낫을 들고 이번에는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을 둘러본 삼신의 눈에 낡은 호리병이 하나 보였다.    

  

“네놈이 이리 숨는다고 내가 못 찾을 듯싶더냐!”   

  

삼신이 진노를 하면서 호리병의 목을 잡자 펑하는 소리와 함께 호리병은 외다리 도깨비로 변했다.    

  

“하..할매. 나는 정말 모르는 일이오.”     


호리병 도깨비가 덜덜덜 떨면서 삼신의 눈을 바라봤다. 그것은 인간의 눈도, 신의 눈도 아니었다. 예전 태곳적 시절 집채만 한 백호가 자신의 새끼를 잡아먹은 푸른 늑대의 무리를 잔인하게 잡아먹어서 복수하던 바로 그 살기 어린 눈빛이었다.      


으아아아악     


부엌을 나오는 삼심의 뒤로 갈기갈기 찢긴 호리병 도깨비의 처참한 시신이 보였다.

    

그날 늦게까지 삼신은 눈에 보이는 모든 도깨비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약 천 명에 달하는 대부분의 성체 도깨비들을 잔인하게 도륙한 삼신할매는 도깨비들이 공동으로 아이를 기르는 커다란 초가집 마을 앞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는 육아를 담당하는 외발의 도깨비들이 이제 막 태어난 작은 도깨비들을 안고 영문도 모른 채 두려운 눈으로 삼신을 바라봤다.      


그들 눈에 보이는 삼신은 피투성이가 된 하얀 소복을 입고, 부릅뜬 두 눈에서는 씨뻘건 선혈이 떨어지고 있었다. 머리는 산발한 채 피가 뚝뚝 떨어지는 두 개의 낫을 든 삼신은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도깨비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가거나 자기들의 원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출처> 전설의 고향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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