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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소년 Aug 17. 2024

#9 거북아 거북아

[소설] 원곡동 쌩닭집-9화-끔찍한 것들 ④구지가(龜旨歌)

“네!!! 이제는 보이는 거예요. 빨간 헝겊이 둥둥 떠다니는 게 지금은 보여요!”     

“우리 어린이 아주 착한 게, 도깨비 아저씨 맘에 쏙 드네.”     


도깨비감투를 다시 벗은 이 과장의 주변에 둥그렇게 앉아서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잠이 들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 이 과장을 가운데로 해서 집 마당에는 귀여운 12 지신 인형들이 조용히 둥그렇게 모여 앉아 있었다.      


“와.. 이 과장님, 정말 재미있는 도깨비감투 이야기였어요.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 이 과장님이 하시는 이야기 들으니까 정말 실감이 나는데요? 그나저나 12 지신 아이들이 전래동화 이야기를 들으니 모두 인형으로 변하네요?”     

“이과장 아니었으면 이준 너 나한테 오늘 죽었어.”     


달이 누나가 다시 처녀귀신의 얼굴로 주먹을 나에게 들이밀면서 협박했다. 나는 달이 누나의 주먹을 두 손으로 움켜잡으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누나. 그래도 이렇게 잘 마무리되었으니 화 푸세요.”

“잘 마무리되기는 뭐가 마무리가 돼. 어차피 12시간 지나면 또 깨어나서 놀아달라 밥 달라 난리 칠 텐데. 12 지신 알을 부화시킨 준이 네가 열두 명을 맡아서 키우던가!”     

“네? 제가 얘네들을 어떻게 키워요.”     

“저, 달이 누님, 이준 님, 일단 얘네들 잠들어서 인형이 되었을 때 빨리 어떻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여기 이렇게 12 지신 아이들이 계속 놔두면 안 될 것 같은데.”     


도깨비감투를 손에 쥔 이 과장이 아웅다웅 싸우는 달이누나와 나를 보면서 말했다     

 


***     


잠시 후, 우리는 12 지신 인형을 커다란 가방에 넣은 후, 양손에 들고 원곡쌩닭집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인형을 들고 들어오자 작업을 하고 계시던 아저씨가 어디론가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전화를 끊으신 아저씨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준아, 일단 이 과장이 가져갈 닭고기 포장이나 마무리하자. 내가 방금 보육원 원장님에게 부탁했으니 곧 오실 거다. 여기 보육원에 그 아이들을 맡기는 게 좋겠다.”   

  

잠시 후, 원곡 보육원 승합차가 쌩닭집 앞으로 오더니 운전석에서 60대로 보이는 할머니가 내렸다. 보육원 원장님은 안으로 들어와서 12 지신 인형들을 보시더니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몇천 년간 보지 못한, 귀한 12 지신 아이들이 정말로 깨어났군. 그나저나 얘네들 잠든 지 얼마나 되었지?”     

“30분이 채 안 된 것 같습니다.”     

“아직은 시간 여유가 있군, 내가 이 아이들을 우리 보육원으로 데려가서 앞으로 잘 돌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나 먼저 감세.”     


보육원 할머니는 12 지신 인형들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안아서 승합차에 태운 후, 보육원으로 돌아갔다. 이를 본 달이 누나가 우리를 보면서 말했다.      


“이제 진짜 다 끝났네. 아휴. 저도 갑니다. 가계에 새 물건도 들어오고 재고정리도 마무리해야 하는데 아이씨.”     


달걀로 변한 달이 누나는 마치 탱탱볼마냥 바닥에서 위아래로 통통거리면서 투덜거렸다. 나는 내 눈높이까지 튀어오른 누나를 보면서 물었다.


"누나, 원곡 보육원은 어떤 곳이에요?"

"원곡 보육원은 이제 막 깨어난 요괴와 귀신 아이들을 돌봐주는 곳이야. 성인 상태에서 깨어난 요괴와 귀신도 있지만, 12지신 아이들같은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    

"아, 그렇구나. 그럼 도깨비들이 깨어나면요?"


"우리 도깨비들은 모두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사랑과 정성으로 잘 키워주죠."

"와. 그렇구나."


“저는 감투 수선 맡긴 후, 닭고기 찾으러 다시 오겠습니다. 이준 님, 이따가 봐요.”     

“네. 이따가 뵐게요.”     


달걀로 변한 달이누나가 나와 이 과장을 보면서 이야기했다.      


“나도 이따가 조인해도 되지?”     

“그럼요, 오세요.”     


이 과장도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좋아요. 이따가 길 건너 소주집에서 봐요.”     

“콜!”     


달이 누나는 통통거리면서 무인편의점으로 향하고, 도깨비 이 과장도 감투 수선을 위해서 원곡시장 안에 있는 거미 요괴 할매의 양장점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그날 저녁 소주집에서 나와 달이누나, 도깨비 이과장이 테이블에 앉아서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민숭민숭한 계란얼굴이 아닌 사람과 같이 변한 달이누나를 바라봤다. 달이누나가 말했다.     


“우리 안주는 뭐를 시킬까?”

“누나가 먹고 싶은 거 시키세요. 저는 다 잘 먹어요.”     

“음.. 그럼 나는 달걀말이랑 계란찜, 여기 이모님이 폭탄계란찜 정말 잘 만들거든.”

“어.....”     


생각지도 않은 달이 누나의 안주 취향을 알게 된 나는 순간 당황했다.     


“왜? 나는 계란 같은 거 안 먹을 줄 알았니? 그럼 팥죽하고 선지 해장국 좋아하는 저기 도깨비 이 과장은 뭐니?”     

“선지해장국이요? 저 이 과장님, 예전에 책을 보면 도깨비는 붉은색을 싫어한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팥, 피 같은 거는 안 드시는 줄 알았어요,”

“없어 못 먹습니다, 그거 다 옛날이야기예요. 삼국시대 전인가?”

“아, 그렇군요. 저기 이모님. 여기 주문할게요.”     


소줏집 이모님이 웃으면서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안주를 주문했다.      


“여기 선지해장국 세 개랑 달걀말이, 그리고 폭탄계란찜 하나, 소주 두 병 주세요.”

“야, 여기 맥주도 한 병. 나 말아먹는 거 좋아해.”

“아, 네네. 이모님, 맥주도 한 병 주세요.”     


소줏집 이모님은 먼저 소주와 맥주, 그리고 기본 반찬인 번데기탕을 가져다주신 후, 우리가 주문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누나, 근데 그 얼굴은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거예요? 신기하다.”

“응. 근데 나는 네 검은 왼손이 더 신기한데?”     


달이 누나가 갑자기 얼굴을 이 과장의 얼굴로 바꾸자 건너편에 앉은 이 과장이 깜짝 놀라면서 진저리를 쳤다.      

“에헤이.. 이거 왜 이러십니까? 그 얼굴을 보니 술맛 떨어지는데요?”     


도깨비 이 과장의 얼굴로 변한 달이 누나는 까르르 웃으면서 다시 민숭민숭한 얼굴로 돌아왔다.     

 

“일부 제한이 있지.”

“어떤 제한이요?”

“신들의 얼굴로는 바꿀 수 없어. 아니 바꾸지 않기로 약속했어.”

“약속이요? 누구랑요?”

“옥황상제님이랑 지옥의 시왕님들이랑.”

“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철없던 시절, 옥황상제님의 얼굴로 변한 후 지옥의 시왕님들에게 장난을 쳤거든.”

“네에? 대체 어떻게 걸리신 거예요?”

“강림 도령에게 바로 걸렸지. 아무도 나를 못 알아봤는데 강림 도령은 날 보자마자 단박에 알아 보더라고. 그날 나 강림 도령에게 얼굴 깨져서 거의 죽는 줄 알았어. 요기 요기 상처 보이지? 그때 강림 도령이 창으로 나를 찔러서 난 상처라니까”     


달이 누나는 머리카락으로 가려져서 보이지 않던 상처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그 이후로 절대 신들의 얼굴로는 바꾸지 않지,”     


달이 누나가 소주병과 맥주병을 따더니 사이다잔에 폭탄주를 말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폭탄주를 우리에게 건넸다. 나는 달이 누나가 만들어준 폭탄주를 마시면서 이 과장에게 물었다.    

  

“근데 이 과장님, 아까 삼국시대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서기 한 700년 정도 되는 거 아닌가요? 그 이전과 이후가 도깨비들에게 많이 달라졌나 봐요?”     

“그때 도깨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일이 있었지.”     


달이 누나가 마치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말했다. 이 과장은 달이 누나가 타 준 폭탄주를 마시면서 말했다.      

“안 그래도 많은 분들이 그 점을 궁금해하시죠. 우리 도깨비들이 모두 삼신할매 밑에서 일하게 된 이유를요.”     

도깨비 이 과장은 남은 폭탄주를 한 번에 원샷했다.     


“어찌 보면 삼신할매가 아닌, 한 여인으로서 비극적인 사건의 발단이었지요.”     


이 과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676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해였습니다.”   



***     


경주 인근 산기슭에 부인과 살고 있던 김영감은 그날도 나무를 하기 위해서 지게를 지고 낡은 초가집을 나섰다. 나무집 멀리 경주 첨성대가 희미하게 보였다. 이런 김영감을 향해 와이프가 부엌의 삐그덕거리는 낡은 나무문을 열고 나오면서 말했다.     



“영감, 오늘은 쉬엄쉬엄하고 일찍 집으로 오세요.”

“걱정 말게. 내 다녀오리다.”     


커다란 빈 지게를 지고 흥얼거리며 걸어가는 김영감의 왼쪽 얼굴 아래로는 주먹보다 조금 더 큰 커다란 혹이 달려 있었다. 어찌나 말랑말랑한 혹이었는지, 김영감이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마치 토실토실한 아기 엉덩이처럼 김영감의 혹은 좌우로 흔들거렸다.     


산 중턱으로 올라간 김영감은 도끼를 이용해서 나무를 베고 지게에 차곡차곡 쌓은 후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슬비도 내리기 시작하고, 평소보다 너무 많은 나무를 해서 지게가 무거운 탓인지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김영감의 눈에 산등성이에 자리한 허름한 빈 초가집이 보였다. 비를 피하기 위해서 집 안으로 들어간 김영감은 두리번거리면서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둡고 으스스한 게 딱 도깨비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게 생겼구먼. 노래를 부르면 좀 나아지려나? 오늘은 구지가(龜旨歌)를 한번 불러볼까?”    

 

龜何龜何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 머리를 내어라

若不現也 내어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 구워서 먹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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