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냥이같은 아비 밑에 범같은 아들 '소현세자 암살설'

[암살의 역사 4] 급서와 일가족 몰살 전말

by 최경식
다운로드.jpg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소현세자의 무덤 '소경원'. 소현세자는 국가 발전과 관련한 원대한 꿈을 가졌지만, 아버지인 인조의 광적인 의심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 아래 내용은 2024년 4월에 출간된 '암살의 역사' 서두 부분.


"세자는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병을 얻었고 병이 난 지 수일 만에 죽었는데.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 -인조실록 中


부정적인 유형의 군주를 꼽자면 크게 '폭군'과 '암군'이 있다. 폭군은 신료들과 백성들을 힘으로 억누르며 사납고 악한 짓을 일삼는 군주를 말한다. 암군은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어 국가와 백성에 큰 해악을 끼치는 군주를 말한다. 조선사에서 대표적인 폭군으로 '연산군'을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암군은 누구일까. 단연 '인조'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수많은 실정들을 통해 암군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병자호란'은 단적인 사례였다. 전임자인 '광해군'이 영리한 '중립외교'를 내세워 평화와 실리를 취했던 데 반해 인조는 '사대주의'라는 명분에만 집착해 국가와 백성을 큰 위기에 빠뜨렸다. 종국에는 그 자신 스스로 오랑캐라 여겼던 사람 앞에 나아가 전례 없는 치욕을 감당해야 했다. 어리석기만 했다면 차라리 다행이었을 수 있다. 인조는 어리석은 것에 더해 광적인 의심과 잔인함까지 갖췄다. 폭군의 특성까지 내재했던 것이다.


반면 인조의 아들인 '소현세자'는 전도유망한 존재였다. 볼모로 잡혀간 청나라에서 좌절하지 않고 국가의 미래를 생각했다. 신문화, 신문물을 열심히 학습해 추후 조선에 이를 적용하고 국가의 발전을 이룩할 것이라 다짐했다. 철 지난 사대주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던 아버지 및 그 신료들과 명백히 다른 길을 걸으려 했다. 가히 '승냥이 같은 아비 밑에 범 같은 아들'이었다. 만약 소현세자가 인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됐다면, 조선은 상당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비극의 단초였다. 인조는 소현세자의 뜻을 헤아리기는커녕 잘못된 길에 빠져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는 정적으로 여겼다. 광적인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이런 가운데 소현세자가 석연치 않게 세상을 떠났다. 신체에서 나타난 증상 등 여러 정황들이 소현세자가 '암살' 당했음을 시사했다. 그 배후에 인조가 있다는 의혹이 커져갔다.


소현세자 가족들이 처한 운명은 인조의 혐의점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다. 거의 '멸문지화'에 이르렀을 정도로 소현세자 가족들은 잔혹하게 몰살됐다. 이를 주도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인조였다. 암군과 폭군의 특성을 고루 갖춘 최악의 왕은 크게는 국가를, 작게는 한 가정을 파괴했다. 그것도 자신의 아들 일가를 말이다. 본편을 작업하면서 한 권력자가 그리고 한 인간이 얼마나 무도해질 수 있는지를 목도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위정자와 일반인 모두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사례다. 소현세자 암살 의혹과 일가족 몰살 전말을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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