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 둔덕기성. 무신정변 때 의종이 유폐돼 이곳에서 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현지에서는 '폐왕성'이라고도 불린다.
#. 아래 내용은 6월에 출간된 '정변의 역사-확장판' 하이라이트 부분.
... 문신 전성기는 무신들에게는 '재앙'과도 같았다. 문무를 넘나들며 요직을 꿰찼던 문신들과 달리 무신들은 정 2품 이상의 관직은 감히 넘볼 수도 없었다. 정 3품 상장군이 무신들이 올라갈 수 있었던 관직의 최대치였다. 더욱이 과거제인 '문과'를 통해 정식으로 등용되는 문신들과 달리 무신들은 이와 비슷한 '무과'도 없어 태생적인 한계를 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왕이 궁궐 밖으로 나가 문신들과 연회를 할 때, 무신들은 여기에 결코 참여하지 못했고 그저 호위병의 역할만 수행해야 했다.
... 결국 1170년 8월 정중부는 이의방, 이고 등을 불러 거사를 단행하기로 결정했다. ...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모른 채, 의종은 보현원 내부로 들어갔다. 문신들은 왕을 배웅한 뒤 각자의 처소로 물러나려 했다. 바로 이 순간, 순검군을 동원한 이의방과 이고 등이 문신들에게 무차별적인 칼부림을 하기 시작했다. 임종식과 이복기 등 수많은 문신들이 죽임을 당하면서 보현원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현장이 됐다.
... 궁궐에 있던 추밀원부사 양순정, 판이부사 허홍재를 비롯해 수많은 문신들을 척살했다. 죽임을 당한 문신들의 시체는 길거리와 강가에 버려졌고 그들의 집도 철저히 파괴됐다. 이때 무신들은 "문신의 관(冠)을 쓴 자는 비록 서리일지라도 씨를 남기지 말라"라고 외쳤다. 그만큼 문신들을 향한 무신들의 복수심은 상상을 초월했다. 정변의 살육이 어느 정도 일단락 된 후 무신들은 의종과 태자를 폐위시켰다. 뒤이어 의종의 둘째 동생인 익양공 호(晧)를 즉위시켰는데 이가 바로 고려의 제19대 왕인 '명종'이다. 이로써 정중부와 이의방, 이고 등이 중심이 된 무신정변은 성공했고, 약 100년에 이르는 엄혹한 무신집권기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