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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식 Jun 23. 2024

고려 마지막 개혁군주의 비극적 최후..'공민왕 피살'

[정변의 역사-확장판 6] 개혁 정치와 좌절, 망국 전말

고려 제31대 왕 '공민왕'과 부인인 '노국대장공주'. 보기 드문 개혁 의지를 갖췄던 공민왕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 아래 내용은 6월에 출간된 '정변의 역사-확장판' 하이라이트 부분.


... 공민왕은 즉위 직후부터 강력한 '반원자주정책'을 펼쳤다. 이처럼 의외의 정책이 나올 수 있었던 기저에는 무엇보다 공민왕의 냉철한 국제정세 분석이 있었다. 공민왕은 원나라에 있으면서 대륙에서 돌아가는 정세에 깊은 관심을 갖고 학습해 이를 속속들이 꿰뚫고 있었다. 14세기 후반 국제정세는 요동치고 있었다. 그동안 강력한 제국으로 군림했던 원나라가 서서히 쇠퇴했고 새로이 중국 한족이 중심이 된 '명나라'가 부상하고 있었다. 공민왕은 원나라의 국운이 다했다고 봤고, 이 기회를 잘 활용해 움츠러들었던 고려의 자주성 및 영토를 회복시키려 했다.


... 공민왕은 즉위 초 총기가 넘치던 그 영민한 왕이 아니었다. 과거와 달리 국정을 등한시했고 연회를 즐기는 횟수도 부쩍 늘었다. 다만 공민왕이 아예 국정을 나 몰라라 한 것은 아니었다. 뭔가 돌파구를 모색하긴 했다. 그 결과 공민왕은 한 인물을 불러 사부로 삼고 국정을 맡기기로 했다. 그가 바로 '신돈'이다. ... 작용이 있으면 반드시 반작용도 있는 법이다. 신돈의 개혁은 급진적이었던 만큼 머지않아 기성 세력들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왔다. 권력과 경제적 기반이 흔들렸던 권문세족 등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공민왕에게 나아가 신돈을 비하하거나 모함하기 시작했다. 새롭게 성장한 신진 유학자들도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기본적인 사상의 차이 때문에 신돈을 멀리했고, 공민왕에게 '성리학에 기반한 직접적인 정치'를 펼 것을 요구했다.


... 당초 영민한 개혁 군주로 출발해 백성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공민왕은 이제 개혁에 실패한 초라한 군주로 전락했다. 신돈의 죽음으로 마지막 개혁 의지마저 꺾인 공민왕은 더 이상 국정을 돌보지 않았고 매우 문란한 사생활에 빠져들었다. ... 1374년 9월 홍륜과 최만생 일파는 늦은 밤에 공민왕의 침소에 잠입, 궁녀들과 환관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 이를 본 공민왕은 화들짝 놀라 도망가려 했지만 붙잡혔다. 홍륜과 최만생 일파는 마치 원수를 대하듯 공민왕을 처참하게 난도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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