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세실리아 Oct 29. 2020

14년차면 지각해도 되나요?

매일 빈 사무실 문을 열고, 나 홀로 불 켜고 하루를 시작했다. 오전 한두 시간을 홀로 우두커니 있기도 했다. 갓 창업한 회사의 으쌰으쌰한 기운보다는 슬렁슬렁 회사생활하고 싶은 사람들의 인생 2막에 단추 잘못 낀 신입사원인 내가 앉아있는 거 같았다.


아홉시에 출근하면 혼자 있는 날이 많았고, 점심시간까지 아무도 없어 김밥을 사 와서 우두커니 밥을 먹을 때도 있었다.


10분쯤 늦은 어느 날 회사 건물 앞에 도착했을 즈음 휴대폰으로 이사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냐길래 회사 앞이라고 하니 알겠다고 하고 끊는데 수화기 넘어 냉기가 느껴진다.

출근하니 역시나 아무도 없었고, 내 자리 내선 전화기엔 이사의 휴대폰 번호가 부재중으로 찍혀있었다.


한참  출근한 이사는 내게 '사원이 이렇게 지각하는  태도가 좋지 못한 '이라고 째랑째랑하게 경고한다. 매일 기본  시간은 지각하는 본인도 민망하긴 한지,   끝에 '억울하면 너도 빨리 14년차 되든지'라고 덧붙인다.


그 날 지각한 내 잘못도 있지만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각하는 상사에게 저런 말을 들으니 납득되지 않았고, '억울하면 너도 14년차 되라'는 말도 안 되는 첨언은 더 이해 안됐다.


출근은 늦게 하고, 점심시간엔 운동하고 온다며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들어와선 뒤늦게 점심을 먹고, 퇴근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 슬쩍 집에 가는 상사를 보면서 이 회사의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 회사를 관두고 다른 회사로 이직했던 첫날, 출근시간보다 조금 일찍 갔는데 대부분의 직원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사원들에게만 근태를 강조하고 정작 본인들은 지각하는 회사만 다니다가 이렇게 모든 사람이 출근을 준수하는 '당연한 일'을 보고 난 아주 놀랐다.


아침에 팀장, 부장님들이 지각할까 봐 헐레벌떡 뛰어오는 모습도 내게는 아주 생경한 모습이었다. 어느 회사든 저연차 사원들이나 시간 맞춰 출근하려 동동 거리는 건 줄 알았고, 팀장 이상은 당연히 지각해도 되는 건지 알았다. 이런 정상적인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이상했다. "억울하면 너도 빨리 14년차 되든가"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가스라이팅 된 셈이다.



빈 사무실에 앉아서 회사 아카이빙 폴더라도 보는 것이 신입의 태도라고 강조했지만, 신입에게 책임감 있는 직업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상사의 태도 아닌가.


그 기억 때문인지, 일정 직급 이상 되고 나서 후배들한테 작은 지적이라도 해야 할 때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불합리하다고 느꼈던 작은 회사에서 배운 교훈이라면 교훈이다.

이전 05화 정직원인데 다시 수습사원 하라고?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가족 같은 회사는 없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