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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희 Sep 25. 2024

영화관에서 울다

[아버지의 초상]마렌 아데의 <토니 에드만>

눈물은 왜 폄훼되는가. 특히 여자의 눈물은 콕 집어서 폄훼된다. 누군가 ‘남자는 세 번 운다’로 여기에 대응하고 싶겠지만, 차라리 그편이 ‘눈물은 여자의 무기’ 같은 소리를 듣는 것보단 나을 거다. 어느 쪽이든 눈물을 삼가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는 건 마찬가지다. 출처가 희미한 표어는 시대를 뛰어넘어 사람들의 머릿속을 잠식했다.


“눈물이 여자의 무기가 되는 것이 싫다.”


2016년, 여성 래퍼들의 배틀 프로그램에서 가장 나이 어린 참가자는 이딴 가사 실수로 눈물을 보인 선배 가수 뒤에서 이렇게 인터뷰했다. 배틀 프로그램에서 눈물이 무기가 될 리는 없기에 그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디스’였다. ‘걸크러시’를 표방하는 프로그램에서 눈물은 숨겨야 할 치부다. 프로듀서는 출연자의 눈물을 이용하고, 또 다른 출연자의 입을 빌어 이를 처벌한다.


우는 사람, 특히 우는 여자에 대한 혐오와 싸울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춘 이유는, 나 역시 눈물이 많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이야기에 진심을 담으려 할 때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나는 왜 눈물을 참지 못하는지, 왜 좀 더 쿨한 사람이 될 수 없는지 자책했다. 부분의 경우 나의 눈물은 딱딱한 위로조차도 끌어내지 못했다. 드러내든 숨기든 대의 반응은 '왜 울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악의 경우는 일터나 일터 비슷한 곳에서 흘리는 눈물로, 이때의 눈물은 무기도 뭐도 아니고 그냥 프로답지 못한 미숙한 사람의 징표일 뿐이었다.  


나는 눈물을 타고났다. 텔레비전에서 조금만 슬픈 장면이 나오거나 누군가 우는 장면이 나오기만 해도 자동으로 눈물이 난다. 그래도 훌쩍이면서 티 내는 것은 싫어서 미동 없이 몰래 눈물을 흘린다. 그러다가 누군가 암묵적 규칙을 깨고 눈물 젖은 얼굴로 돌아보면, 자신과 비슷한 얼굴을 마주하곤 서로 웃음을 터뜨린다. 아빠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다가 슬픈 장면이 나올 때, 슬쩍 아빠의 얼굴을 살피면 늘 울고 계셨다. 부엌에 계시던 엄마가 저게 뭔가 하고 거실로 나왔다가 눈물을 보이시고는 이내 해야 할 일 때문에 뒤돌아 부엌으로 들어가시던 모습도 선하다.


내가 혐오해 마지않던 잘 우는 나의 성미를 위로받게 된 건 에릭 로메르의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1987)를 만나면서다.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의 블랑쉬는 걸핏하면 운다.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캐릭터를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우울증에 걸린 것도 아니고 무기는 더더욱 아니다. 꽤 사랑스러웠으니, 무기라고 해야 하나? 우는 순간은 예상외로 코믹했고, 캐릭터 역시 그 코믹함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었다. 이 영화는 내게 거의 치료였다.


영화관은 눈물의 장소다. 영화를 보다가 눈물을 날 때도 텔레비전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눈물을 닦거나 코를 훌쩍이지도 않고 액체가 내 얼굴을 타고 흐르도록 둔다. 마지막에 눈물을 터뜨리도록 만드는 나쁜 영화가 아니라면 대부분 영화가 끝나기 전에 눈물이 마르고 영화에서 방금 빠져나온 혼곤한 얼굴로 나오도록 허락했다.  


하지만 어느 날은 몰래 우는 데 장렬히 실패했다. 실패한 정도가 아니라 오열했다. 2017년 3월 6일 오후 2시, 지금은 거의 시사가 잘 열리지 않는 CGV 왕십리에서 마렌 아데의 <토니 에드만>(2016) 언론 시사 관람 도중 벌어진 일이었다. 예상 못 한 눈물이 터진 건 이네스가 아버지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휘트니 휴스턴의 ‘Greatest love of all'을 열창할 때였다.


실은 1986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내겐 90년대 노래처럼 느껴진다. <보디가드>가 히트를 기록하며 휘트니 휴스턴이 더 알려졌으니, 한국에 알려진 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90년대 음악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거다. H.O.T.의 강타가 이 노래를 커버한 것도 노래를 대중화한 요소 중 하나다. 강타를 좋아했던 친구가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불렀기에 노래를 들으면 친구 생각도 난다. 나 역시 호기롭게 노래방에서 이 노래에 도전했다. 강타를 좋아하던 친구는 내게 배에 힘을 주면, 더 높은음을 낼 수 있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친절한 조언에도 불구하고 나의 노래 실력은 별다른 진전이 없었. 


산드라 휠러가 노래하는 장면은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에 나의 감정 자체를 터뜨려버렸다. 눈물은 웃음의 크기에 맞춰 증폭되었다. 그랬다고밖에 달리 그 눈물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 장면은 이네스가 거의 벌거벗는 장면이기도 하다. 익숙한 가식과 허울을 벗어던지고 아빠 빈프리트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던 시기로 단번에 이행하는 마법과도 같은 장면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빈프리트는 이네스를 벗겨낸다.


시간을 앞으로 돌려보면 두 사람이 영화 속에서 처음 만난 장면에서도 빈프리트는 이네스를 벗겼다. 조커 분장을 한 빈프리트와의 포옹 이후 이네스가 입고 있던 검은 재킷에 흰색 분장 자국이 묻는다. 아버지는 얼룩을 지워주겠다면서 이네스가 재킷을 벗게 만든다. 이로써 딸에게 있어 아버지는 무언가를 벗기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후 빈프리트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네스의 옷을 벗긴다. 이네스는 아버지를 배웅하기 직전 접이식 소파에 끼어 발가락을 다치고 만다. 그날 출근 후 화장실에서 망가진 발톱의 위치를 조절하다가 흰 셔츠에 피가 튀면서 비서 안카와 셔츠를 바꿔 입게 된다. 직원들의 친목을 다지기 위해 이네스 집에서 진행된 홈 파티에서 옷을 갈아입다가 초인종 소리가 나자 입을 수도, 벗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낑낑대다 반나체의 상태로 동료를 맞은 뒤, 즉흥적으로 누드 파티로 장르를 바꾼다.


이네스가 완전히 헐벗었을 때, 빈프리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털북숭이 탈로 무장한 상태로 나타난다. 이네스가 취직 이후 사회적 자아로만 살아갈 때, 빈프리트는 순간순간 다른 자아가 되는 법을 보여준다. 이에 낀 교정기나 가발과 선글라스, 약간의 거짓말 혹은 유머를 통해서. 불가리아 쿠케리 탈을 쓴 빈프리트의 ‘체화’는 그가 보여준 ‘되기’의 정점을 보여준다. 이네스가 완전히 덜어내고, 빈프리트가 완전히 채워 넣은 극단의 부딪힘 속에서 둘은 서로 껴안을 수 있게 된다.


나는 빈프리트/토니 에드만의 모습에서 아빠를 발견했던 것 같다. 두 사람의 통점이 있다면 그건 유머보다는, '낭만’이다. 아빠는 어딘가 낭만적인 구석이 있었다. 낭만은 예상치 못한 선물을 준비하는 마음같은 거다. 어느 날 아빠가 언니와 나에게 주는 선물로 god 브로마이드를 사 오셨다. 아빠의 god 브로마이드는 말하자면 내게 빈프리트가 이네스에게 선물한 치즈 강판 같은 거다. 정작 나는 누군가의 브로마이드를 구매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빠가 딸들 선물이라고 하자, 점원은 아빠에게 ‘딸들이 정말 좋은 아빠’를 두었다며 누군지도 모르는 우리를 부러워했다. 본인 자랑을 하는 법이 거의 없었던 아빠도 점원에게 들었던 칭찬만큼은 자랑스러워하셨다. 언니와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그저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래도 god 다섯 사람이 검은 재킷을 걸친 그 브로마이드는 쨍한 파란색 바탕에 캔디 복장을 한 H.O.T 브로마이드와 함께 꽤 오랫동안 내 방 벽에 붙어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아빠라는 말을 들으셨지만, 정작 딸들로부터 좋은 아빠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 오히려 아빠는 늘 미안해하셨고, 그 말 미안해하지 마세는 답을 들은적도 거의 없다. 비록 너무 때늦은 인사라 아빠의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아빠는 정말 좋은 아빠였고, 나의 아버지가 되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나의 말을 아빠의 귀는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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