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욕고불만 13화

(10) T'ES MALADE OU QUOI

욕마저 고상하다는 불어를 만나다(10)

by Fernweh

T’ES MALADE OU QUOI ?

[떼 말라드 우 꾸와?]


욕이라기엔 애매하지만, 욕에 가까운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말이 있다. 우리는 욕먹을 짓을 하는 상대에게 욕까지 딱 한 뼘만 남긴 여지를 주며 최후통첩과도 같은 말을 하곤 한다.

정신 나간 거야 뭐야?

때에 따라 ‘미친 거야’라거나 ‘제정신이야’ 같은 말로 바꿔 쓰지만 어떤 표현이든 뜻은 상통한다. 정신 나간 행동으로 보이는 그따위 짓을 계속하면 이윽고 고막에 욕이 꽂힐 수 있음을 내보인다.


프랑스어 표현을 직역하면 ‘너 어디 아픈 거야?’이다. 정신이 제자리에 놓여 있지 않으니 얼마든지 정신적, 심리적 아픔을 겪고 있는 환자 취급하는 거로도 볼 수 있지만, 그보다 우린 뒤에 붙은 두 단어에 집중해야 한다. 아프다는 뜻의 형용사 ‘Malade’는 어조와 맥락에 따라 정말 아픈 이를 걱정해서 하는 말인지, 정신 나간 녀석에게 따지려고 하는 말인지가 구분된다. 우리말도 그렇지 않나.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너 어디 아프니?’라고 할 때와 분노하는 목소리로 ‘너 어디 아프니?’라고 할 때 내포된 찐 의미가 다르듯이. 그런데 불어 문장에 살포시 ‘ou quoi’ 두 단어를 붙이면 뜻은 후자로 못 박혀버린다.


사전엔 ‘…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라고 다소 철학적이고 점잖은 투의 설명이 달려있다. ‘네가 아픈 게 아니면 무엇이겠는가?’라고 해석하면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현실과 어울리지 않는 대사가 돼버린다. ‘…야 뭐야?’라며 말꼬리에 짜증, 반문 때로는 분노 같은 감정을 실어주는 간투사라고 간단히 생각하면 된다. 아무래도 프랑스 사람이 우리보다 감정 표현에 솔직해서인지, 프랑스에 있을 때 참 많이 듣던 말이다. 짜증 날 때 혼잣말로 중얼거릴 때도 딱 좋던(고작 두 글자라 들일 품도 없다) 말이라 나도 어느새 입버릇처럼 쓰던 말이기도 했다. 한국에선 혼잣말이라도 감정이 깃든 저러한 간투사를 말꼬리에 잘 붙이지 않는다. 꼬리에 뾰족하게 붙은 그 말들에 치가 떨렸던 경험이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때는 바야흐로 승무원으로 일하던 시절이었다.


차라리 욕이 낫다고 하면 너무 과장이려나. (진상) 손님이 승무원에게 꼬나(Connard)보고 피똥(Putain) 싸라고 할 때 꺼내 들 수 있는 옐로카드(경고)도 있고, 경찰 인계 가능성을 경고했음에도 폭언이나 폭력적 행동이 지속되면 꺼내 들 수 있는 테이저건도 있다. 심지어 항공보안법이라는 그럴듯한 법으로 보호되는 조치라서 든든한 방어 수단의 일환이다. 욕은 이렇게 꿈틀하며 대응이라도 할 수 있으니 차라리 낫다고 한 것이다. 욕이 아닌 ‘ou quoi’ 같은 간투사는 그저 묵묵히 삭혀내는 거 외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는 둥, 왜 자꾸 귀찮게 하냐는 둥, 짜증 나라고 일부러 그러는 거냐는 둥, 참 다양한 꼬리말을 들었다. 승무원이 승객에게 뭔가를 요청할 땐 서비스보다는 안전 관련 사항일 확률이 높다.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대뜸 찾아가서 커피 마실 거냐고, 지금 밥 먹을 거냐고 묻거나 하는 경우는 없다. 저런 경우라면 뭘 주기라도 하니 뜬금없어도 말꼬리까진 붙잡고 늘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주는 것도 없이 뭘 하라고만 하면 없던 짜증도 생겨나는 것일까? 비상구 열에 앉으셨으니 짐은 위로 올려달라거나(첫 번째 꼬리말), 곧 착륙하니 벨트를 매시라거나(두 번째 꼬리말),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려서 지금은 화장실 사용이 어렵다고(세 번째 꼬리말) 건넨 말은 그 꼬리를 날카롭게 세우고 내게로 돌아와 날 찔렀다. 나 좋으라고 한 말도 아닌데 말이다. 다른 이도 아니고 당사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안전 규정을 무시하겠다는데, 거기에 덧붙일 말꼬리가 있을까마는, 내 일이었기에, 직업이었기에 날 선 꼬리를 재차 무디게 만들며 같은 말을 반복해야 했다. 당시 혀 밑까지 차올랐지만 하지 못했던 꼬리말 ‘t’es malade ou quoi ?’를 이 자리를 빌려 쓱 해볼까 한다. 승무원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걸 문제 삼기보다 상식적인 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그에 걸맞은 언행을 구사하는 걸 질책한다는 의미로.


욕이 아니어도 누군가의 기분을 퍽 상하게 하고, 얕건 깊건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은 차고 넘친다. 어떤 말이든 ‘하기 나름’이니까. 그러고 보면 여기 소개된 ‘ou quoi’는 하기 나름인 상처주거나 기분 상하게 할 만한 그런 말들을 두 단어, 여섯 글자 안으로 뭉뚱그려 에둘러 표현하게 해주는 것 같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고, 일부러 그러는 거냐고, 뾰족한 기운을 드리우지 않고 ‘뭐야’라고 툭 한 번 읊조리는 정도니까. 이마저도 기분 나쁘다면 너무 여린 성격인 걸로...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지고 싶을 때, 소리 내지 않고 ‘ou quoi’[우 꾸와]를 말해보자. ‘우’에서 쭉 내민 입술이 이내 ‘우와’에서 양옆으로 찢어지며 어쩔 수 없이 웃는 입꼬리가 되니까.


퀘벡 영화 <안티고네>에서 ‘t’es malade ou quoi ?’와 비슷한 표현이 나왔던 게 떠올랐다. 주인공 가족은 난민 신분으로 캐나다에 정착했는데, 오빠란 인간이 범죄를 저질러 까딱 잘못하면 난민 지위를 박탈당하고 추방당할 상황에 놓인다. 주인공은 남장을 하고 교도소로 숨어 들어가 오빠를 빼돌리고 숨긴다. 법정에 참고인 자격으로 앉아 있던 사람은 여동생이 목숨 걸고 숨겨주었던 오빠였다. 그새를 못 참고 또 기어 나와 결국 또 경찰에 붙잡힌 것이었다. 분노에 분노에 분노를 더해서, 여동생은 소리친다. “네 목 위에 붙은 건 뭐야?” 목 위에 붙은 것, 머리. 머리에 든 뇌로 해야 할 생각이란 걸 하지 않는 오빠(새끼)한테 소리친 대사가 내 뇌리에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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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티고네>의 해당 장면


문득 퀘벡의 욕은 우리네 전라도 욕과 비슷한 결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욕이 하나도 안 들어 있는데 듣는 이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드는 상세한 묘사, 맛깔난 표현이 담긴, “확! 창자를 빼갔고 젓갈을 담가불랑께!” 같은 욕 말이다. 퀘벡 영화 속 저 대사에도 욕은 단 하나도 쓰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목 위에 달린 둥근 것이 제 기능을 하지 못 한다고 선언하듯 뱉은 말에는 창자를 빼서 젓갈을 담겠다는 결연함과 기괴함이 서려 있다. 목 위에 붙은 데 뚫린 구멍은 마약이나 하는 데 쓰는 거냐며 쏘아 붙이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이 대사는 기괴함까지 담고 있다. 말은 정말 하기 나름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는 대목이다.


퀘벡 사람만이 불어로 험한 말을 저렇게 한다는 건 아니니 오해는 마시길. 마침 저 대사가 나온 영화가 퀘벡 영화였고, 또 마침 전라도 욕이 떠올라 연결시킨 것뿐... 물론 같은 프랑스어권이지만 프랑스와 캐나다 사이의 거리만큼 두 곳에서 쓰이는 프랑스어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기는 하다. 프랑스에 살 때 가끔 TV에서 본 퀘벡 영화나 드라마엔 무려 불어 자막이 깔려있었다. 하긴, 당장 제주도만 가도 제주도 토박이가 사투리를 쓰면 잘 알아들을 수 없지 않은가. 서울과 제주도보다도 훨씬 멀리 떨어진 두 지역인 만큼, 다른 억양과 다른 표현을 가진 채 언어가 굳어진 건 당연한 이치이리라.


지역적, 역사적 간극으로 자연스레 생긴 차이 말고, 가끔 개인이 마음대로 표현을 변용시키기도 한다. 모국어가 아닌 이상 그 표현의 어색함을 바로 감지해내기는 어려워 저도 모르게 응용 표현처럼 각인되곤 한다. 어학원의 한 친구는 ‘너 아픈 거야, 뭐야?’에서 착안한 응용 표현 ‘너 머리 아픈 거야, 뭐야(T’as mal à la tête, ou quoi)?’를 대뜸 쓰곤 했다. 말꼬리에 붙은 ‘ou quoi?’ 덕에 빈정거린다는 건 눈치챘다. 그런데 나중에 프랑스 친구에게 프랑스인은 저런 표현을 안 쓴다고 들었다. 저 표현은 글자 그대로 두통에 시달리는 이에게 사용될 뿐, 꼬리에 어떤 말을 붙이든 제정신이 아니라는 속된 뜻으로는 쓰이지 않는단다. 오히려 굳이 꼬리말을 보태면서까지 나쁜 뉘앙스를 보태려는 언행에 사람들은 ‘t’es malade, ou quoi ?’하고 손가락질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불필요한 속된 꼬리말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말 필요한 순간에만 붙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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