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마저 고상하다는 불어를 만나다(11)
깜짝 놀라셨는가. 매 표제가 욕이었는데, 이번 표제가 ‘Bonjour’(안녕)이어서. 아무리 프랑스가 자유, 평등, 박애의 나라라고 해도 인사를 욕으로 쓰는 건 충격적인 발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아는 그 ‘봉주르’가 맞고, 그 ‘봉주르’는 욕으로 절대 쓰이지 않는다. 모든 악감정을 인사에 함축해서 토해낸다 한들, 우리말에서도, 불어에서도 ‘안녕’은 속된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없다. 하다못해 부정어를 붙여 안녕하지 못 하는 말을 하더라도 상대에게 뱉는 게 아니고 그저 자신의 안위가 좋지 못함을 표하는 데 그친다.
글의 포문을 구구절절 길게 열었지만, 그렇게 큰 의미는 없다. 마지막 표제라서 욕이 아닌 좋은 말을 소개하고 싶었을 뿐이다. (김샜다면, 죄송합니다...) 욕마저 고상한 언어이니 욕이 아닌 말은 그보다도 더 고상한 오라를 풍겨내는 건 당연할 터. 그럼 제일 고상한 말은 뭘까, 곰곰이 생각하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봉주르’가 떠올랐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봉주르’는 참 밋밋하다. 실제 음가를 글로 옮기자면 ‘봉쥬~(ㅎ)’다. ‘봉’의 콧소리 받침과 ‘쥬’의 이중모음이 이미 인사말의 테두리를 고상하게 감싼다. 그런데 여기서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받침도 모음도 아닌 물결표시(~)다. 그 모양새처럼 음절 끝을 부드럽게 늘어뜨려 고상함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페달을 밟아 피아노의 한 음을 잔잔히 펼쳐내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마지막에 거추장스럽게 달린 성대를 긁는 R 발음은 고상함을 떨어뜨릴 녀석이니 그 거친 음가를 괄호 속 히읗에 넣어 조용히 마무리 짓는다.
여기서 ‘봉쥬~(ㅎ)’가 담은 고상한 맛을 제대로 살리려면 ‘라솔’ 음을 떠올리면 된다. 승무원 트레이닝 당시, ‘솔’톤에 맞게 멘트와 기내방송을 연습했었다. 아무래도 굵고 낮은 소리보다는 적당히 높은 피치의 소리가 승객에게 친절한 목소리로 들릴 테니까. 고상한 ‘봉쥬~(ㅎ)’의 시작은 친절한 ‘솔’톤보다도 한 음이나 높은 ‘라’에서 시작한다. 두 번째 글자로 떨어질 때도 음울한 소리로 들릴 수 있는 반음이 아닌 한 음을 툭 떨군다. ‘라솔’의 톤을 덧씌운 채 파리에 살며 숱하게 들었던 말이 바로 이 ‘봉쥬~(ㅎ)’라서 내게 가장 고상한 프랑스어로 각인되었다.
물론 우리도 인사를 늘 한결같은 톤과 장단으로 하지 않듯, 화자의 컨디션이나 상황에 따라 ‘bonjour’의 느낌은 천차만별이다. 같은 톤이어도 때로는 고상하다기보다 명랑한 인사로 들렸고, ‘라솔#’처럼 반음이 섞여 버리면 조금은 침울하게 들리기도 했다. 피곤한 탓에 낮게 읊조리는 묵직한 톤에서는 나조차 그 피로에 움찔했고, ‘라’보다 여섯 음이나 낮은 ‘도’에서 시작해 끝마저 ‘도’로 끝난 인사를 들을 땐 영혼 없는 인사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임을 느꼈다.
* 수많은 '봉주르'를 들어볼 수 있는 사이트
https://fr.forvo.com/word/bonjour/#fr
강의 등의 공식적인 자리에서 가끔 욕이 등장할 때면 뜻은 알려주면서도 ‘그래도 고운 말을 쓰자’고 헐레벌떡 수습하고 다음 내용으로 넘어갔다. 그때 차라리 욕이 나온 김에 프랑스어는 욕마저 왜 고상하게 들리는지를 짚어주고 넘어갔다면 어땠을까. 평소에 욕을 단 한 개도 쓰지 않는다고 떳떳하게 얘기할 수 없는 나인데, 별것도 아닌 욕을 서둘러 지나치려던 행동은 ‘도도’ 음가의 영혼 없는 인사를 하는 꼴이었으리라. 인사든 욕이든 로봇처럼 ‘도도’한 음으로 도도하게 하는 것보다는 영혼을 넣어 ‘라솔’한 음의 명랑한 인사와 고상한 욕을 하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다. 조금 과하거나 상스럽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