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VV ㅅㅅ 01화

V.V, ㅅ.ㅅ

PROLOGUE

by Fernweh

le Voyageur des Villes


도시를 여행했다고 하면 백이면 백 으리으리하고 삐까뻔쩍한 ‘대’도시를 떠올릴 것이다. 소녀시대 <MR. TAXI> 도입부에서 ‘서울 또, 도키오(tokyo), 런던, 뉴우-욕!’이라며 도입부 장인 태연이 친절히도 나열해주는 도시들 말이다. (마침 이 글의 도입부(prologue)도 열어주는 셈이니 그녀는 명실상부 도입부 장인!) 국어사전에서는 ‘일정한 지역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고 정의한다. 최소 한 분야의 중심지 역할도 해내야 하고 품 안에 넉넉한 인구도 지녀야 한다니. 인간만 아등바등 스펙을 쌓는 줄 알았는데 도시마저 빡빡한 기준에 자기 스펙을 맞춰야 하는 모양이 조금은 서글프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다. 도시는 도시인데 사전적 정의에서 요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한 도시를 두고 종종 ’시골 도시‘(혹은 소도시)라고 부르기도 하니까. 인구가 고작 몇만에 그치고, 요충지라 하기엔 접근성부터가 떨어지는 몇몇 마을을, 그럼에도 ’도시‘라고 불러주는 건 겉모습이 도시에 가깝기 때문이리라. 골목 양옆에 낮게나마 건물이 줄지어 있고 비포장도로가 아닌 포장도로가 골목을 이어주고 그 수가 적더라도 어느 정도의 유동인구가 마을을 헤집고 다니는 그런 외형상의 모습 말이다. 인구수, 지리적 위치가 같은 조건이라도 굽이굽이 실개천이 흐르고 계절마다 자신의 색을 새로이 단장하는 숲과 산에 둘러싸여 있는 곳이라면 시골이라 여길 것이다. 아까의 국어사전 검색 결과 하단에 반의어로 적힌 단어가 바로 이 ’시골‘이다. 도시와 시골 두 단어만 써도 대충 맥락은 파악될 텐데, 구구절절 글을 길게 쓴 이유는 여기서 다룰 여행지가 철저히 도시로 국한되기 때문이다. 그간의 내 여행은 도시의 반의어인 시골에는 철벽을 치며 도시만을 찾아 헤맨 여행이었다. 천혜의 자연경관이라고 추켜세우는 숲보다 빌딩숲 안에 자리하고 있어야 왠지 마음이 편한 그런 여행 말이다.


지긋지긋한 도심 속 일상으로 코시국이 빚어낸 응어리진 역마살이 독처럼 퍼질 때 그 살(煞)에 중독되지 않으려는 많은 이들이 자연을 찾아 떠나는 추세다.캠핑, 글램핑, 오토 캠핑, 트래킹 등등이 뚜렷한 하나의 여가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코로나 유행 이후 주변에서 이 트렌드에 발맞춘 제안을 종종 해왔다. 등산이랄까 캠핑이랄까, 도시 생활+코로나의 답답함을 시골(자연)로 가 떨쳐 내자는 제안이. 그러나 끝끝내 내 확고한 취향으로 시골과 도시 사이에 그은 선을 지우지 못했다. 한 친구는 올해 안에 날 산으로 끌고 갈 거라는 새로운 새해 다짐을 하기도 했다. 올해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으니 그의 다짐은 다진 마늘처럼 알싸하게 다져진 셈이다. 아래 짤이 올 초에 나왔다면 대답 대신했으련만, 그러지 못한 아쉬움에 사진으로 남긴다. 자연에 크게 감응하지 못한다는 변명 같은 고백을 매번 하는 데 신물이 날 무렵, 내 자신을 소개할 적당한 별칭을 우연히 내뱉었다.

도시형 여행자

일종의 유형화를 거치며 내 여행 스타일이 반영된 별칭 아닌가. 근데 이걸 듣던 지인은 ‘도시형 여행자’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다며 낯설어했다. 어디까지나 도시를 누비는 여행을 선호한다는 개념이지 ‘도시형’의 사전적 의미인 ‘도시의 특성을 보이는 유형’의 인간이란 뜻은 아니라서 듣고 보니 나조차도 좀 어색하게 들렸다. 학술 논문도 아니니 ‘형(型)’ 자를 덧대며 유형화하기보다는 직관적으로 ‘도시의 여행자’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불어로는 ‘le voyageur des villes’가 되는 별칭. 줄여서 ‘VV’, 책의 제목이 짜잔, 하고 탄생했다.


KakaoTalk_20211215_140002339.jpg 산행을 권하는 이를 위한 나의 대답

시내의 산책자

위의 VV를 거꾸로 뒤집어보자. ㅅㅅ. 남사스러운 단어를 떠올렸다면 당신은 음란마귀. (뜨끔) 농담은 그만두고 ㅅㅅ의 본래 명칭을 살펴보자.


시내의 산책자

각 앞글자의 자음만을 따서 ㅅㅅ이다. ‘도시의 여행자’의 의미와 대동소이하다. 어떻게든 두 타이틀을 이어보겠답시고 VV를 뒤집어서 만들어진 ㅅㅅ에 여행 때 도시를 누비길 좋아하는, 즉 ‘시내를 산책하길 좋아하는 자’라는 뜻을 욱여넣어 탄생시킨 타이틀이다. 도시의 여행자라는 우리말을 두고 굳이 ‘le Voyageur des Villes’이란 불어 명칭을 끌어다 쓴 의도도 ‘VV’와 ‘ㅅㅅ’을 끼워 맞추려는 것이었다. 자연보다 도시에서 여행하길 선호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일 먼저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다. 생경한 풍경이 사방을 가로막은 도심 속 골목을 발길 닿는 대로 드나들 때 보던 장면. 골목 표지판에 쓰인 언어만 바뀌어도 이질적인 분위기가 물씬 나기에 친근한 첫인상으로 다가오던 골목 풍경이 여행지에서만큼은 묘한 거리감을 선사한다. 완전히 친숙하지 않기에 낯선 환경에 압도되지 않으려면 틈틈이 숨 돌릴 틈이 필요하다. 그 틈을 채워주는 건 보이는 곳의 끝까지 비슷한 모습을 한 골목길이 지겨워질 즈음 불쑥 나타난 잡화점이거나 읽을 수 있는 책도 없으면서 책 냄새라도 맡고 싶었는지 기웃거리던 서점일 수도 있다. 출출해지면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 식당에서 배를 채우고, 체내 카페인 함량에 경고등이 들어오면 바로 앞 카페로 가서 커피 한잔을 마시는 걸 수도 있고.

내게 가장 아름답고 철학적인 여행은 그렇게 머무는 사이 생겨나는 틈에 있다.
- 폴 발레리(Paul Valéry)


여행할 때 늘 떠올리는 문장. 폴 발레리가 의미한 도시와 시간을 이어준다는 틈과 내가 도시를 탐닉하며 시도 때도 없이 끼워 넣는 모종의 틈이 같은 의미가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프랑스 철학자의 말마따나 내게도 여행 중의 ‘틈’은 가장 아름답고 철학적으로 다가왔다. 자연 속에서야말로 숨 돌릴 틈을 찾기 쉽다고 따질지도 모르겠다. 트래킹을 하다 지치면 그 자리에 털썩 앉으면 휴식의 틈이 생길 테니까. 굳이 카페나 상점을 들어가지 않고서도 말이다. 내가 원하는 틈은 일상과의 단절로 충족되는, 전적으로 휴식에 쓰이는 틈이 아니다. 지속해오던 일상을 여행이란 이유로 다 끊어버리기엔 난 (의외로) 겁쟁이다. (아, 일은 예외다.)


이런 내게 알맞은 틈을 찾으려면 부지런히 시내를 산책해야 한다. 평소엔 걷기라면 질색하면서도 여행만 오면 일부러 더 걸어 다닌다. 잘만 다니는 버스, 지하철을 놔두고. 파리에 살 땐 가끔 뭐에 홀린 듯, 한 시간씩도 걷곤 했다. (걷게끔 한 데는 참 쾌적하디 쾌적한 파리 지하철도 한몫했고….) 주변 풍경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관광지나 유명 맛집, 카페 정도만 쓱 들렀다 오는 산책은 아니었으니, 일정이 빡빡할 때도 많게는 한 시간 이상을 할애하며 시내를 걸어 다녔으니 남들이 뭐라든 ‘시내의 산책자’라는 별칭을 ‘도시의 여행자’와 함께 나란히 가슴팍에 붙이련다.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저자가 나처럼 자신을 ‘도시형 인간’이라 칭하는 부분을 발견했다. 짜고 친 것도 아닌데 이상하리만치 주변 모두가 자연으로 떠나자고 하던 때라서 멸종 위기에 처한 동족을 찾아낸 기쁨에 내적 환호(지하철이었다)를 질렀다. 긴긴 프롤로그를 그 책 속 한 구절을 인용하며 마무리해볼까 한다.


도시형 인간이 된 우리는 타인의 효율적인 노동과 서비스 덕에 편리해진다.
도시의 분업에 익숙해진 우리는 도시 바깥에서 불편하다. 우리는 도시의 편리에 익숙하고 도시가 허락하는 ‘다양한 익명의 개성일 수 있음’을 사랑한다.
우리는 도시형 인간이며, 앞으로도 도시에서 살 것이다.
- <행여혼신>, 에바&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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