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TBILISSI
트빌리시 ‘다비드 아그마쉐네벨리(დავით აღმაშენებლის)’ 거리에 자리한 게스트하우스 거실에서 한바탕 설전이 펼쳐졌다. 양 진영의 쪽수가 비등비등했다면 덤비는 시늉이라도 했겠다만, 내 진영은 꼴랑 나 혼자고 상대 진영은 셋이니 무턱대고 덤빌 수가 없었다. 셋이 엎친 데 위로 자꾸만 하나둘 덮치더니 상대는 이윽고 다섯이 됐다. 일단 백기를 들고 수긍하는 척을 해야만 했다.
문제의 시발점(욕한 거 아님)은 조지아 여행의 진수로 꼽히는 ‘카즈베기(ყაზბეგი)’*였다. 험한 산세로 이루어진 지역이지만, 정해진 트래킹 코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나라와는 또 다른 천혜의 산악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란다. 다들 트빌리시 숙소에 짐을 맡기고 2~3일 정도 카즈베기에서 트래킹하고 왔거나 그럴 예정이란다. 나도 카즈베기 여행을 알아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쨌든 쉽게 오기 힘든 나라에 왔고 한 달이나 머물 거라서 유명한 지역은 다 가보려고 했다. 이놈의 도시병은 유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나라에서도 또 도졌다. 트빌리시를 탐방하며 즐긴 시티 라이프에 카즈베기는 점점 묻혀 갔다. 애초에 트래킹할 만한 신발도 챙기지 않았고.
* 2006년 ‘스테판츠민다’(სტეფანწმინდა)로 지명이 바뀌었으나 여행자들끼린 계속 카즈베기라고 불렀다.
가장 큰 번화가인 ‘루스타벨리(რუსთაველი)’ 거리를 걷다가 들른 여행사에서 잠자고 있던 카즈베기가 깨어났다. 일일 투어 상품에 카즈베기가 있었기 때문. 저녁이면 한 잔씩 홀짝이던 조지아 와인이 꽤 입맛에 맞아서 와이너리 투어가 있는지 보려고 들어갔다가 덜컥 카즈베기 투어를 예약했다. 역시 세트 할인이 들어가면 지갑이 열리고야 만다.(무슨 햄버거집도 아닌데 말이다) 근교 도시마다 일일투어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한 번에 많은 투어를 예약할수록 곱절로 할인 폭이 커졌다. 두 군데를 예약하면 5%, 세 군데는 10%, 네 군데는 30%, 이런 식이었다. 어차피 므츠헤타는 일일 투어로 다녀오려던 참이었고, 가보고 싶던 와이너리 투어가 포함된 시그나기 투어도 있어 이렇게만 예약해도 5% 할인이 적용됐다. 내 귀가 팔랑이는 걸 본 직원은 고대 동굴 도시 유적이 있는 우플리스치케와 스탈린 생가가 있는 고리를 묶어서 다녀오는 투어 홍보에 열과 성을 다했다. 조지아에 있을 날이 아직 많이 남아서 하루쯤 색다른 데 다녀오기로 하고 또 덜컥 예약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여기에 카즈베기만 얹으면 할인 폭이 10%에서 30%로 훅, 뛴다는 사실에 마음도 훅, 하고 동했다. 결국 루스타벨리 거리의 한 여행사에 들른 한 호구는 일일 투어만 네 개를 예약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루스타벨리의 여행사에서 다비드 아그마쉐네벨리 숙소로 돌아온 김에 설전이 펼쳐졌다는 아까 그 이야기(본론)로 돌아가 보자. 이 가격에 투어를 네 개나 예약했다고 하면 다들 깜짝 놀랄 거라며 의기양양하게 오늘의 예약 썰을 풀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당시 숙박객이 한국인뿐이라 저녁 식사 때가 되면 삼삼오오 밥을 먹으러 모였고, 썰을 풀기에 제격인 타이밍이었다. 썰을 풀었을 뿐인데 웬걸, 된통 설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카즈베기를 일일 투어로 간다고요?”
“일일 투어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었어요?”
“아마 산 안쪽으로 차가 들어가던가... 그럼 차에서 변두리만 보고 오는 거 아니에요?”
식탁 뒤편에서 다 조리한 반찬과 와인을 나르던 다른 둘에게도 이 놀라운 소식이 들렸는지 그 두 사람은 이미 놀란 눈을 하고 날 보며 다시 물었다.
“카즈베기에 애초에 일일투어가 가능한 거예요?”
“아니, 일일투어가 있는 것도 신기한데 그걸 예약한 사람이 우리 중에 있는 게 더 신기해요.”
마지막 말을 건넨 사람은 다름 아닌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짐은 카즈베기 다녀올 동안 얼마든지 맡아줄 수 있으니 투어 취소하고 2박 3일 날 잡아서 트래킹하고 오란다. 열 개의 눈에서 뿜어져 나온 시선에서 더 알찬 여행을 했으면 하는 관심과 조언이 담겨있음을 느꼈다. 고마운 건 고마운 것일 뿐, 미안하지만 ‘도시형’으로 다듬어진 내 여행 취향을 바꾸고 싶진 않았다. 트래킹에 특화된 여행지라고 꼭 트래킹만 할 필욘 없지 않은가. 짜장면 맛집에 갔다고 뜨끈한 국물이 당기는 날인데 억지로 짜장면을 먹어야 하는 건 아니듯이 말이다. 할인에 낚여 알차지 못한 투어에 여행 중의 하루를 날리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이도 있었다. 그렇게 어설퍼 보이는 여행사도 아니었고, 준비도 없이 트래킹에 도전했다가 앓아누운 채로(난 내 체력을 아주 잘 안다) 이틀을 날려 버리면 도리어 하루를 더 날리는 셈이니 투어를 그대로 강행하기로 했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끈질긴 설득은 통하지 않았다.
어느덧 카즈베기를 가는 날이 되었다. 트래킹과 거리가 먼 복장으로 픽업 장소로 향했다. 투어 버스에 오르는데 불현듯 설전을 마무리 지을 때 들린 말이 떠올랐다. 카즈베기를, 직접 산 안으로 들어가야 산악 지형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그 카즈베기를 투어로 보고 오면 후회할 거란 말이. ‘후회’라는 단어가 귓가에 계속 울리는 통에 시내를 빠져나가는 차창 밖의 풍경에 도통 집중할 수가 없었다.
출발 30분만에 ‘잔발리(ჟინვალი) 저수지’를 지나다가 전망대가 있다면서 가이드가 차를 멈춰 세웠다. 춘천 소양호의 조지아 버전이 딱 잔발리 저수지였다. 또 30분을 가다가 들른 ‘아나누리(ანანური)’는 수원 화성의 조지아 버전이었다. 아까 그 저수지 끝에 닿은 교회를 중심으로 예전에 요새로 지어진 성벽이 남아있었다. 이번엔 한 시간쯤 달렸을까. 팝아트를 연상케 하는 모자이크화가 그려진 타원형의 거대한 러시아-조지아 친선 기념비가 우리를 맞이하던 ‘구다우리(გუდაური)’라는 마을도 구경했다. 세 군데의 전망 스폿을 지나고 나니 귓가를 윙윙 울려댔던 후회란 녀석 소리는 장렬히 소거된 채였다. 트빌리시-카즈베기 교통편이 아닌 투어 차량이라 이런 데도 와 볼 수 있던 거니까.
구다우리에서부터 완연히 모습을 드러낸 산악 지형은 카즈베기에 가까워질수록 웅장해졌다. 웅장해진 만큼 험해진 산세를 보며 동네 오르막 오르는 게 전부인 나 같은 이가 남들 다 한다고 트래킹에 덤벼들 곳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내 얄팍한 두 다리 대신 그 험난한 산세를 오른 건 짱짱한 힘을 가진 네 바퀴였다. 두세 개의 능선이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 위로 겹쳤다. ‘아, 저곳이구나.’, 양옆으로 펼쳐지는 산을 배경으로 능선이 겹친 곳에 서서 인증샷을 찍는 곳이. 설전 당시 이미 트래킹하고 온 이들이 돌아가며 보여준 그 인증샷을 찍은 곳이. 분명 그들이 인증샷을 건지려고 저곳에 간 건 아니리라. 사방을 에워싼 자연이 토해내는 황홀경에 몸의 고단함마저 잊은 채 미소가 번지는 사진 속 얼굴이 기억났다. 트래킹을 하지 않아서 내 입가엔 저런 미소가 퍼지지 않는다며 후회하진 않았다. 자연을 두고 크게 감탄하지 못하는 ‘도시의 여행자’라는 사실을 살짝 애석해하고 있을 즈음, 날 위로라도 하듯이 게르게티 교회가 나타났다. 위로는 즉각적이어서 애석함은 금세 사라지고 투어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트빌리시로 돌아오는 길은 아까처럼 한 번씩 들르지 않아서인지 지루했다. 지루한 기색이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남아 있었는지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서니 미리 짜둔 것처럼 다들 한 마디씩 던졌다.
“차로 갔다 오니까 재미없죠?”
“역시 카즈베기는 트래킹으로 다녀와야 제맛이죠.”
“그러게, 짐 두고 2박 3일 갔다 오라니까...”
경극 배우처럼 순식간에 지루한 표정을 한껏 들뜬 표정으로 바꾸고 속사포처럼 신나게 대답했다.
“어휴, 그럴 리가요. 차로 가니까 훨씬 좋던데요? 산에 다녀왔는데 이렇게 쌩쌩한 사람 보셨어요? 게르게티 교회까지도 차로 갈 수 있더라고요. 중간에 아나누리, 구다우리 이런 동네도 구경시켜주고, 전 투어로 갔다 와서 훨씬 좋았어요.”
내 표정과 말투에서 진심인 걸 느꼈는지 이번엔 설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갸우뚱하는 게 보였지만 자연은 차창 밖으로 보는 정도로도 만족하는 나 같은 도시형 여행자가 있다는 걸 알렸으니, 그걸로 됐다. 산은 역시 보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