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VV ㅅㅅ 06화

V.V, ㅅ.ㅅ

(5) CHIANG MAI

by Fernweh

CHIANG MAI


지난 화에서 못다 한 벌레 타령을 할 때가 되었다. 이야기가 펼쳐질 치앙마이는 사시사철이 아주 덥거나, 덥거나, 그나마 덜 더운 동남아에 있는 곳이니 내 치부인 벌레 공포증을 털어놓을 딱 좋은 도시다. 벌레는 내게 혐오를 넘어선 공포의 대상이다. 모기처럼 손쉽게 제압할 수 있고 그래야만 간지럼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경우를 빼고서 감히 벌레라는 공포의 대상에 손찌검할 용기가 없음을 수줍게 밝힌다. 어렸을 적 벌레에 심하게 해코지당한 적도 없으면서 벌레를 볼 바엔 차라리 귀신을 보겠다는 해괴망측한 말까지 하고 다니는데, 그게 다 벌레의 해괴망측한 생김새 때문이다.


혐오의 단계에서 벌레를 떠올리면 설치류나 파충류를 덩달아 떠올리는 이가 많다. 하수구를 헤집고 다니면서 균이란 균을 온몸에 진득하게 붙이고 다니는 쥐를 보면 그 더러움에 소스라치고 만다. 머리가 삼각이든 둥글든(독사이든 아니든), 차가운 외피를 땅에 밀착해 좌우로 꿀렁거리는 뱀을 보면 그 이질적인 움직임에 등골이 서늘해지곤 한다. 그러나 내게 쥐나 뱀은 어디까지나 ‘동물’에 속하는, 외모만 따지면 벌레보다는 하등 해괴망측할 게 없는 녀석들이다. 시대를 잘 골라 태어난 덕에 쥐나 뱀과 공생하는 환경에서 살지 않아서 할 수 있는 배부른 소리로 들리려나. 어쨌든, 아무리 더럽고 소름 끼쳐도 벌레의 생김새만큼 내게 공포감을 주는 동물은 없다. 크라쿠프 이야기에서 날 쏘고 장렬히 전사한 꿀벌을 치우는 데 티슈를 다섯 장이나 써야 했던 것도 벌레의 징그러운 자태를 겹겹이 가려버리기 위함이었다.


동남아로 떠날 때마다 알게 모르게 신경이 곤두서 있던 건 공항 문이 열릴 때 코로 훅 밀려 들어오는 뜨거운 공기와 습도 때문이 아니라 곧 도착할 호텔 방에 벌레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다행히 동남아 여행 중 호텔에서 벌레를 만난 적은 없었다. 두어 번 도마뱀이 내 방에 기웃대긴 했지만 동물 친구이니 태연히 맞이했다. (코모도 왕도마뱀이었다면 사정은 달라졌겠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여행의 순간에 보이지도 않는 벌레를 떠올리며 움츠러들 필요는 없었다. 방을 박차고 나가 구경한 치앙마이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무작정 복잡하기만 한 도시도, 한없이 한적하기만 한 외딴 시골도 아닌 적당한 균형이 혼재한 곳. 황갈색 담벼락 안에 쏙 들어가 있는 구시가지와 반대편의 ‘카페 거리’로 알려진 님만해민 거리 쪽 시가지가 도시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듯 적절히 분리되어 있는 점도 좋았다. 일단 태국에 왔으니 태국다운 걸 봐야 한다며 산꼭대기 위에서 불심을 뽐내듯 번쩍이는 황금 사리탑이 유명한 도이수탭 사원을 필두로 구시가지 안의 여러 유적지를 지치지도 않고 돌아보았다. 이어서 님만해민 거리의 괜찮아 보이는 한 카페로 가 관광의 여운을 커피와 함께 곱씹었다. 치앙마이가 속한 태국 북부 산지의 원두로 내린 스페셜티 커피를 판다길래 간 카펜데, 네 맛도 내 맛이고 내 맛도 네 맛인 까다롭지 않은 입맛의 소유자인지라 그냥 커피랑 별 차이를 못 느낀 게 여행의 유일한 흠이라면 흠이었다.


동남아 여행에서의 저녁을 항상 수놓아 주는 게 있었으니 바로 야시장. 해가 질 때까지 쉬면서 되찾은 생기를 다시 불태우고자 힘차게 발걸음을 내디디며 야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에 왔다고 시장기를 느낀 건지 배부터 채우기로 했다. ‘모닝글로리’라고도 불리는 ‘팟팍붕바이뎅(ผัดผักบุ้งไฟแดง)’, 빠지면 섭섭한 볶음국수 팟타이, 코코넛 밀크를 넣어 과한 향을 누그러뜨린 게 또 별미였던 똠얌꿍까지, 싹싹 비웠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본격적으로 쇼핑에 나설 차례였다. 순간, 잘 내려가던 음식물이 장인지 위인지 어느 한 구간에서 덜컥 멈춰 서는 걸 느꼈다. 협착증이란 병명으로 말미암은 증상이 이런 건가. 증상의 발현은 시신경으로 감지된 어마어마한 공포의 대상에 의해서였다.


원체 벌레를 무서워해서 공포의 크기를 어마어마하다고 부풀린 게 아니다. 이름 모를 갑판 기둥에 붙어 있던 바퀴벌레는 생전 처음 보는 크기였다. (지금까지도 그만한 건 보지 못했고) 손바닥만한 바퀴벌레였다. 손가락을 잘못 쓴 게 아니고 정말로 손바닥만했다. 그러고 보니 바퀴벌레가 기승을 부릴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이 야시장이었다. 기후야 이미 덥고 습한 데다 시장이니 먹거리가 사방에 널려 있지 않은가. 게다가 시장 앞에 붙은 ‘야’(夜) 자는 바퀴벌레가 좋아하는 어둠을 의미한다. 어쩌면 그 거대한 녀석은 야시장으로 향할 때의 우리보다 더 흥에 겨워했을지도 모른다. 남자치고 밥을 천천히 먹기도 하고, 소화 기관이 튼튼해 초등학교 2학년 이후로 체를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치앙마이 야시장에서 협착에 가까운 체기를 느낀 걸 보면 확실히 벌레의 생김새는 공포 그 자체다.


벌레를 만날 바엔 귀신이 낫다고 떵떵거렸지만, 무서운 걸 떠나 더 위협적인 건 벌레보단 귀신이다. 귀신에 씌는 경우는 있어도 벌레에 씌는 경우는 없으니까. 그때 귀신을 보고 홀렸다면 야시장에서의 여정은 식사로 끝났을 터. 바퀴벌레는 크기만 컸지 날 홀리진 못했다. 최대한 멀찍이 도망가기만 하면 된다. (일단 그 정도 크기라면 분명 날개를 달고 있을 테니 ‘최대한’ 멀리 도망가야 한다) 생전 떠올리지도 않던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을 되뇌며 놀란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야시장에서 밥만 먹고 갈 순 없다며 미션 수행하듯 쇼핑을 부랴부랴 마치고 호텔로 돌아갔다.


메두사의 저주를 아시는지. 메두사를 본 자는 공포에 떨며 돌로 변한다는 저주 말이다. 치앙마이에서 스친 바퀴벌레의 저주는 메두사의 저주를 닮아 있었다. 길쭉하다 못해 넓적한 위압적인 크기에 놀라 내 위장이 굳어버리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고작 한 마리가 아니라 메두사 머리 위에 우글거리는 뱀의 숫자만큼의 바퀴벌레를 마주했다면, 고작 몇 초 보고 만 게 아니라 몇 분간 내 몸 위를 기어 다녔다면 위장이 굳는 거로 끝나지 않았겠지... 그땐 진짜 메두사라도 본 것처럼 온몸이 굳어버렸을 것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우글거리는 바퀴 떼를 떠올리니 손가락이 굳어간다. 그러니 이번 이야기는 여기서 이만 줄인다.




이번 화엔 도시 이름 가지고 말장난을 안 친다며 좋아했을 누군가를 위해 덧붙이는 썰. 바퀴벌레가 치약을 싫어한다는 소문,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지. 업무차 괌에 간 적이 있었다. 나보다 먼저 괌에 다녀온 동료가 회사에서 잡아 준 호텔 방에 바퀴벌레가 출몰한다는 비보를 전해왔다. 믿을 구석이라곤 같이 방을 쓸 동기 녀석. 나만큼 벌레를 무서워하진 않아도 그에게도 바퀴벌레는 혐오의 결정체여서 대비책을 마련해야 했다. 어디서 치약에 얽힌 루머를 듣고 온 그는 체크인 후 제일 먼저 침대 주변에 치약을 탄 물부터 뿌렸다. (마음 같아선 치약 결계를 만들 참이었지만, 바닥 카펫에 치약을 뿌릴 순 없어 생각해낸 묘술이었음) 머무는 동안 다행히 바느님을 영접하지 않았다. 치약 섞은 물이 무슨 성수라도 되는 양 받들어 모실 기세였다. 귀국 날, 침대 옆에 활짝 펼쳐두었던 캐리어를 반으로 고이 접는 순간 공포에의 반동으로 내 몸마저 반으로 고이 접어 나빌레라-할 뻔했다. 캐리어 아래 숨어 있던 바느님을 영접하고 만 것이다. 성수는 개뿔, 치약이 효과가 없음이 탄로 났으니 그야말로 ‘치약-마이!’ 였다. 태국어로 ‘마이’(ไม่)는 부정어다. 가운데 생략된 명사는 바로 ‘효과’. ‘치약-(효과)-마이’, 그러니까 바퀴벌레에 치약은 효과가 없다는 말이 되겠다. 괌에서 벌어진 이야기지만 치약 열 통을 써도 퇴치할 수 없는 치앙마이의 거대 바퀴벌레를 추억하며 웃기지도 않은 말장난을 쳐보았다. (글을 읽으며 입꼬리에 미동조차 없었을 분들에게 뒤늦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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