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KRAKÓW
여행지에서 모든 일이 잘 풀리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꼬이라고 있는 게 여행 일정 아니던가. 꽈배기도 아닌 주제에 꼬이긴 또 잘도 배배 꼬인다. 그나마 도시 여행에서 맞닥뜨리는 꼬임은 자연에서의 꼬임보다 풀기 수월한 편이다. 길을 잃는다거나, 기차가 연착되는 바람에 다음 일정이 꼬인다거나, 호텔에 도착했는데 예약이 안 되어 있다거나. 타지에 나와 있다 보니 당황스럽기야 하겠지만 잠깐의 수고로움이면 상황은 금방 해결된다. 잽싸게 구글맵을 켜고 길을 찾으면 되고,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일정은 다시 짜면 되고, 방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예약하면 그만이다. 자연으로 떠나는 여행은 작은 빈틈으로도 거대한 균열을 만들 수 있다. 얼마 전 산골짜기로 캠핑을 떠난 친구들이 떠올랐다. 하필 날씨가 왕창 추워진 주말이었다. 그들이 전기장판을 안 챙겨 갔다면? 잠깐의 방심의 대가는 도시에서보다 자연에서 커질 가능성이 높다. 전기장판을 대신한답시고 누울 자리에 땅을 파서 온돌이라도 설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만큼 자연형 여행자는 출발 전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
도시형 여행자도 사실 마찬가지다. 아무 준비 없이 여행에 나섰다간 큰코다친다. 몇십 년 살던 동네에서도 길을 잃는 나 같은 답도 없는 길치라면 이동 경로를 몇 번이고 곱씹으며 미리 짜 두어야 한다. 많이 발품 파는 만큼 여행지에서 수고를 덜 겪기 마련이라는 건 여행을 하면 할수록 느낀다. 이 글에서 여행할 도시는 폴란드의 ‘크라쿠프’다. 유럽 감성이 널찍하게 자리한 구시가지 광장, 중세의 고즈넉함이 느껴지던 바벨성부터 근교의 ‘비엘리츠카(Wieliczka)’ 소금 광산과 비극의 현장 ‘아우슈비츠(Auschwitz)’* 수용소를 다녀오기 적당한 지리적 이점까지 지닌 도시 크라쿠프. 당시 동유럽 여행은 다른 여행보다도 공들여 준비했고 준비한 만큼 술술 풀렸다. 글 첫머리에 인용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이 무색할 만큼. 잘만 풀리던 여행은 크라쿠프에 온 지 이틀 만에 생각지도 못한 해프닝에 엉켜 버리고야 말았다. 문지방에 새끼발가락을 세게 찧으면 핑 도는 눈물이 크라쿠프에서 그렁그렁했다. 차오른 눈물에 도시 이름이 어른거려 ‘크라이’(cry)쿠프처럼 보였다. 남 탓이라도 하면 덜 억울하련만, 발가락을 찧을 때도 자신의 부주의인 것처럼 이곳에서의 해프닝도 다 내 부주의였던 터라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 폴란드 지명으로는 ‘오시비엥침’(Oświęcim)
중요한 사건에는 늘 복선이 존재한다. 내가 불어 닥칠 비극을 알려 주려 했던 건 꿀벌이었다. 앙증맞은 꿀벌이 소식을 전해준다니, 이건 뭐 동화인가 싶다. 그런데 꿀벌도 엄연히 침을 가진 벌이다. 무턱대고 손을 뻗었다가 된통 쏘이기나 했으니 실상은 잔혹 동화였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왔는데 방이 쓸데없이 더웠다. 한 달 중 며칠 빼곤(난 청소를 몰아서 한다) 시장통 같은 내 방처럼 헤집어 놓은 호텔 방이 창피했는지 창문을 꽉 닫고 커튼까지 야무지게 치고 나간 탓이었다. 답답한 기분에 곧장 창문을 열러 갔다. 커튼을 젖히는 순간, 왼손 새끼손가락에 아찔한 고통이 엄습했다. “아!”, 소리치며 손을 힘차게 털었다. 젖혀진 커튼 아래 벌 한 마리가 모로 누워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살다 살다 폴란드에서 벌에 쏘일 줄이야. 프런트로 가니 식염수인지 소독약인지를(그게 그건가) 발라줬다. 알레르기 반응은커녕 손가락조차 붓지 않았으니, 여행 중에 불운을 만난 건 내가 아니라 옥체도 아닌 이 후진 몸에 자기 목숨을 내던진 자그마한 벌이려나.
다음 편에서 본격적으로 쓰겠지만,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건 벌레다. 그런 존재가 방에 있었다는 게 끔찍해서 쉬려다 말고 기어이 방에서 나왔다. 벌이 복선처럼 전하려는 소식이 섣불리 나갔다간 화를 면치 못할 거라는 경고였단 건 알아차리지 못한 채…
뉘엿뉘엿 지고 있는 해를 받은 구시가지 광장은 밝을 때와는 다른 풍경으로 반짝였다. 광장 한복판에선 피아니스트가 쇼팽의 왈츠를 연주하고 있었다. ‘누가 폴란드 아니랄까 봐. (쇼팽은 폴란드 태생이다)’, 시답잖게 공상을 하며 쿵, 짝, 짝 왈츠 리듬에 맞춰 걷다가 사진 찍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벌에 쏘인 새끼손가락이 자꾸 신경 쓰였다. 멀쩡하기만 한데 괜히 빨개 보이기도 하고, 뒤늦게 부어오르는 건 아닌지 걱정이 일었다. 걱정하는 틈 사이로 방심이 새어들었다. 방심한 나머지 손에 힘을 푼 찰나, 오른손에 들려 있던 육중한 물체가 광장 돌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카메라였다. 박살 난 렌즈를 주워들고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전문 사진가가 쓸 법한 고가의 DSLR이 아닌 건 다행이었지만, 비용은 둘째치고 앞으로 사진을 뭐로 찍어야 할지 막막했다. 지금이야 핸드폰도 DSLR 버금가는 카메라 성능을 탑재했다지만, 저 때는 2013년이었다. 심지어 폴란드가 동유럽 여행으로 방문한 첫 번째 국가였기에 그 사실을 직시하는 게 끔찍할 정도로 싫었다. 벌을 죽여서 벌을 받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아재 개그를 하려고 해서 벌 받은 걸지도 모르고)
그나마 위안이 됐던 건 시내에 나와 있다는 점. 어느 국립공원 같은 데 들어가 있던 거라면 카메라 가게가 불쑥 튀어나올 리 만무하지만 이미 내가 발 디딘 광장 주변엔 널리고 널린 게 상점이었다. 구글맵에서 ‘camera store’를 검색했다. (여행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 어디서든.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것도 숙소 방향으로 난 길가에 카메라 가게가 하나 찍혔다. 시내 산책이고 나발이고 당면한 과제부터 해결해야 했으니 눈앞의 풍경을 뒤로하고 가게로 달려갔다. 여기서 렌즈를 구하지 못하면 당장 내일부터 여행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거라곤 구린 화질의 코딱지만 한 핸드폰뿐이다. 짧은 영어와 바디 랭귀지와 번역기를 총동원하여 주인 아저씨가 호환되는 렌즈를 꺼내 들게끔 할 작정이었다. 호들갑 떠는 모양새가 영 볼품없어 주머니 사정도 가벼운 줄 알았는지 주인은 중고 렌즈도 괜찮다면 그걸 보여주겠단다. 바디와 호환이 됨은 물론, 원래 쓰던 번들 렌즈보다 줌 폭이 더 넓었다. 더 고민할 것도 없었다. 바로 지갑을 열었다.
누군가 날 치고 가서 카메라가 박살 난 것도 아니니 그야말로 저 스스로 발가락을 문지방에 찧은 꼴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신속히 해결할 수 있던 건 도시를 여행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깊은 산 속 캠핑장에 들어가고 난 후에야 전기장판을 두고 왔음을 깨달았을 때의 황망함은 카메라 가게가 근처에 있는 시내에서 렌즈를 깨 먹었을 때의 황망함보다 더할 수밖에 없다. 글의 포문을 연 인용문에 내 의견을 살짝 덧대며 글을 닫을까 한다.
도시 여행에서 모든 일이 어렵게만 풀리면, 그 또한 여행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