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VV ㅅㅅ 02화

V.V, ㅅ.ㅅ

(1) FUKUOKA

by Fernw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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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KUOKA

후쿠오카 훑구 오까?

따위의 농담을 지껄이다가 정말로 후쿠오카를 열 번이나 다녀왔다. 한 도시를 열 번이나 갔다고, 손가락 열 개를 다 펴야 셈할 수 있는 만큼의 횟수를 떵떵거리면서도 좀 뜨끔하다. 말마따나 그 도시를 ‘훑고’ 왔을 뿐이기 때문이다. 대여섯 번째 방문 때까지 후쿠오카는 기항지였다. 북큐슈 여행을 시작하고 마치는 기항지.


첫 후쿠오카는 패키지여행이었다. 버젓이 ‘후쿠오카’ 여행이라고 쓰여 있으니 그때 도장 깨듯 들렀던 관광지가 다 후쿠오카 소재인 줄 알았다. 나고야 성터, 구마모토성, 아소산 등 명칭만 봐도 후쿠오카 소재가 아닌 게 뻔히 보이는데도 패키지여행이랍시고 여행지를 알아보려는 노력 한 꼬집도 기울이지 않은 내겐 모든 곳이 후쿠오카로 편입되어버렸다. 나중에 홀로 후쿠오카를 갔을 때가 되어서야 패키지여행으로 간 곳이 후쿠오카시(市)가 아닌 구마모토시, 사가시에 있는 데라는 걸 알아차렸다. 후쿠오카는 출·도착 관문이자 숙소가 있던 곳이었을 뿐, 정작 후쿠오카 시내에서 다녀온 곳이라곤 쇼핑몰 캐널시티(canal city)가 전부였다. 이쯤 되면 훑고 왔다고 하기도 민망하다.


JR 북큐슈 패스. 기찻값이 비싼 일본에서 가성비로만 따지자면 이만한 게 없을 정도로 쏠쏠한 열차 패스다. 쏠쏠한 맛에 빠져 북큐슈 기차 여행을 연거푸 다녀왔다. 입국은 후쿠오카 공항으로 했지만, 손에 쥐고 있는 패스는 후쿠오카 시내 교통 패스가 아닌 북큐슈 레일 패스다. 후쿠오카보다 훨씬 넓은 지역을 기차로 누빌 수 있는 패스가 있으니 후쿠오카에 더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처량하지만, 여전히 후쿠오카는 기항지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나마 저녁 비행기로 입국했을 땐 하카타역 근처 호텔에 숙박해서 아주 짧은 밤 산책(이래봤자 편의점 가서 주전부리나 사는 정도)을 하곤 했지만, 이른 시간에 입국할 땐 다른 도시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쿠오카를 떠났다.


주요 대도시의 변천을 설명할 때 꼭 한 번쯤 나오는 문구, 교통의 요충지. 오고 가기 편하니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니 물자가 모이고, 모인 물자가 경제의 선순환으로 이어지며 도시는 점차 확충된다. 국내 저비용 항공사들이 규슈의 소도시에 경쟁적으로 취항하기 전까지 규슈 교통의 요충지로서 후쿠오카의 입지는 굳건했다. 기차 패스를 써서 사가로, 오이타로, 구마모토로 넘어간다 해도 비행기를 타고 후쿠오카 공항으로 와야 했으니까. 교통의 흐름이 모이는 도시가 괜히 확장되는 게 아니다. 도시가 확장하듯, 내 마음속에선 찰나의 순간에 찰나의 시선으로 훑기만 했던 후쿠오카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소도시에 직항편이 생기면서 그 도시를 여행하는 게 편해진 건 사실이다. 해당 도시만을 여행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공항이 생각보다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거나 시내까지의 교통편이 불편한 경우도 있어서 차라리 후쿠오카로 입국해 다른 교통편을 타고 소도시까지 이동하는 게 더 효율적일 때가 있었다. 두 번의 규슈 여행에서 입국은 각각 사가와 오이타로, 출국은 후쿠오카에서 했다. 사가 공항에서 시내까진 45분, 오이타 공항에서 시내까진 약 1시간이 걸렸다. 후쿠오카는? 공항에서 지하철로 10분이면 시내에 도착하고도 남는다. 이때부터였으리라. 무슨 옆집 가는 것 마냥 후쿠오카를 자꾸 가려고 한 건. 김포공항보다도 접근성이 좋으니 거창하게 해외여행 간다며 떨어댈 오두방정도 거추장스러웠다.


다시 마주한 후쿠오카는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았다. 공항을 빠져나오는 길마저 눈에 훤하다. 예약한 숙소에 가려면 지하철과 버스 중 뭘 타야 더 좋을지 게이트를 나서는 순간 이미 알고 있었다. 초행길이라서 눈을 부릅뜨고 표지판을 노려볼 수고조차 하지 않으니, 인천공항에서 제집 가는 느낌과 별반 다를 게 없을 만큼 익숙하다. 익숙한 건 딱 여기까지. 짐을 풀고 호텔 방을 나가려는 데 모든 곳이 낯설었다. 하긴 후쿠오카 시내에서 가본 데라곤 캐널시티뿐이니 낯설 수밖에.


우선 관광객 모드로 모모치 비치, 후쿠오카 타워, 나카스 강변의 야타이, 오호리 공원 등을 구경했다. 관광지를 무려 네 군데나 나열했지만, 볼거리가 많아 보이게 하려는 눈속임이다. 후쿠오카를 다녀온 사람은 공감할 텐데, 시내만 따지자면 관광으로는 1박 2일로도 충분하다. 친구 중엔 무려 당일치기로 후쿠오카를 섭렵하고 온 이들도 있다. 예전 패키지여행 때도 후쿠오카에는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 올 때가 되어서야 들어왔다. 관광지 중심으로 코스가 짜이는 게 패키지여행이다 보니 단체가 우르르 모여 갈 만한 스폿이 없는 도심은 3일간의 코스에 끼어들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프롤로그에서 구구절절 쓴 ‘시내의 산책자’ 콘셉트에 제일 잘 어울리는 동네가 후쿠오카였다. 그나마 소소하게 차려진 관광지를 다녀온 걸 제외하자면, 후쿠오카에 몇 번씩 찾아가서 한 일이라곤 평소 동네를 어기적거리며 하는 일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지하 상점가를 한 바퀴 쭉 돌며 여러 상점을 기웃대고, 십여 분 걸어오니 당도한 거리는 또 새 이름을 하고 있어 그쪽 동네도 한 바퀴 둘러보고, 출출해지면 밥을 먹고, 카페인과 단 게 당기면 카페에 들르거나 하는 그런 일. 거창한 여행을 바라는 누군가는 저럴 거면 뭐 하러 바다까지 건넜을까, 갸우뚱할 것이다. 한나절을 향유하는 방식은 다소 비슷하지만, 거기에 달리는 수식어와 목적어가 달랐기 때문에 나 같은 시내의 산책자에겐 나쁘지 않은 코스였다. ‘영등포’가 아닌 ‘텐진’ 지하상가였고,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골목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니 저만의 색이 있어 발걸음을 재촉하며 구경한 동네는 ‘연남동-홍대-상수’가 아닌 ‘다이묘(大名)-이마이즈미(今泉)-야쿠인(藥院)’이었다. 일본에 왔답시고 ‘제육볶음’이 아닌 ‘규동’을 먹었고(한식당이 아닌 이상 제육볶음이 있을 리 만무하기도 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아이스 코-히’를 주문했다. 시내를 산책하는 걸음걸음마다 이런 사소한 낯선 변화가 덧입혀지는 느낌이 좋았다. 자연을 앞에 두고 기꺼워하던 친구는 괜히 ‘나이 먹었나 보다’라는 소리를 하곤 했는데, 나이를 덜 먹은 건지 아직은 일상을 완전히 단절시킨 채 자연 속으로 파묻히기보단 이런 소소한 변화를 향유하는 게 좋다.


이런 낯선 변화가 더 이상 낯선 게 되지 않도록 후쿠오카에 또 올 때면 조금씩 발품을 팔았다. 헐벗은 나무뿐이던 겨울 정원이었지만 라쿠스이엔(樂水園) 다다미에 앉아 정원의 정적을 바라보며 일본 정통 말차와 화과자를 맛보았고, 술도 못하면서 덴뿌라와 와인이라는 희한한 마리아주를 경험해보려 텐진 골목 한 귀퉁이에 자리한 와인바에도 찾아갔다. 마지막 후렴구에 슬쩍 들리는 애드립 같은 변주에 시내 산책의 감흥은 배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코시국 이전 다녀온 여행지도 후쿠오카였다. 열한 번째 후쿠오카 여행을 떠날 날이 조만간 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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