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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Mar 12. 2022

대게는 맛이라도 있지...

단상(34)

해산물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먹으면 기가 막히게 맛있는 게 또 해산물일 터. 그러고 보니 대게를 안 먹은 지도 되게 오래됐구나. (라임 맞추려고 억지로 끼워 맞춘 문장 아니에요... 진짜 오래됐어요...)


대게를 취급하는 식당 앞을 지나가다가 문 틈새로 흘러나온 대게를 찌는 찜기의 연기에 밴 짭조름한 대게 냄새를 맡은 것도 아닌데 뜬금없이 왜 대게 타령을 하냐면, 책을 읽다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대게를 마주했기 때문이다.


책방에 들렀다가 얇은 에세이 한 권을 산 날이었다. 제목의 반은 꽤 밝게 보일 수 있는 말이, 나머지 반은 그와는 정반대로 꽤 어둡게 비칠 말이 병기돼 있었다. 워낙 말장난을 좋아하는 터라 말을 가지고 하는 소소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다 보니 눈에 확 띈 책이었다. 무겁고 우울하게만 쓰인 에세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제목의 반이나 차지한 어두운 단어는 마음에 좀 걸렸지만, 얇은 만큼 적은 분량이라 마음에 안 들지라도 후루룩 털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사버렸다. 


다행히 적당히 진중한 맛과 적당히 담담한 맛이 잘 담겨 있었다. 사길 잘했다며 후루룩 읽고 있던 중 책에서 나라는 책 냄새가 아닌 대게의 냄새가 났다. '대개'라는 부사가 들어가야 할 곳에 '대게'가 들어가 버린 게 화근이었다. 어두운 단상을 차분한 톤으로 잘 풀어가고 있었는데, 분위기 파악 못 한 대게가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참 얄궂기도 하지. 우울감이 깃든 단상을 풀어내는 게 '대개' 자신의 몫이라고 읊조린 덤덤한 고백은 한순간에 게맛살 같은 짭조름한 고백이 되었다. 


그저께 독립출판으로 낸 졸저 <말을 모으는 여행기> 속 몇 편의 에피소드를 짧게 다듬어 보내줄 일이 있었다. 편집을 하던 중 '작년에 만든 오타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소리가 절로 났다. 그러니 오타 하나 가지고 이렇게 구구절절 험담(?)을 늘어놓기가 뻘쭘하긴 하지만 무시하고 지나치기엔 책이 표방하는 느낌과 대게의 짭조름함은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다. 이 언밸런스한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조만간 대게를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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