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어 Дверь открывается expr. 문이 열립니다
* 생생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제목에서만 최대한 실제와 가깝게 발음을 표기했고, 본문에서는 밑줄 친 문장 빼고 외래어 표기법에 맞춰 작성했습니다. v/b 발음 차이 표시를 위해 제목에는 앞에 괄호를 하나 달았습니다.
「러시아 문화·예술」 교양 수업을 듣고 다음 해 겨울, 3명의 친구들과 모스크바로 떠났다. 당시 교수님이 지하철 표지판에 영문 표기가 없으니 러시아에 가고 싶어 할 (우리 같은) 잠재적 여행자는 키릴 문자만큼은 꼭 외워가라고 했다. 러시아‘어’ 수업이 아님에도 한 주의 강의를 통째로 할애해 키릴 문자 알파벳을 강의한 이유기도 하다.
덕분에 한층 여행이 편해졌다. 내 마음대로 발음할지언정 현지 문자로 된 역명 자체를 읽을 수는 있으니 모스크바 지하철을 쉽게 타고 다닐 수 있었다. 내려가는 속도도 길이도 우리나라의 2배여서 처음엔 놀이기구 마냥 손잡이를 꽉 붙잡고 타던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도 나중에는 아무렇지 않게 탈만큼 많이도 탔다. 적응이 되니 지하철이 때맞춰 플랫폼에 들어올 때는 그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성큼 성큼 내려 가 차에 몸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다 여기선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지하철을 타선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장치가 있었으니 바로 지하철 객차의 문이었다.
모스크바 지하철 문은 굉장히 과감하게 닫힌다. 에스컬레이터에 쓰이는 모터를 그대로 달았는지 문 닫히는 속도도 빠르다. 한 번은 문 닫히기 1초 전 간신히 지하철에 탔는데, 뒤통수에다 대고 ‘슉-쾅!’하고 문 닫히는 굉음이 들려 쭈뼛 소름이 돋았다. (물론 사람이 문에 걸릴 것 같으면 문을 다시 열긴 한다.) 냉전시기 핵전쟁에 대비해 지하철을 방공호 용도로 지었다는 루머를 떠올려 보면 문이 이렇게 닫히는 게 조금은 납득이 가지만 그리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다.
그 때문인지 ‘Дверь открывается’, 문이 열린다는 지하철 역 안내 방송은 키릴 문자를 볼 줄만 알던 내 뇌에까지 새겨졌다. (영문 표기가 없을 때니 영어 방송도 당연히 나오지 않던 시기다. 현재는 모스크바 지하철에 영어 방송과 영문 표기가 있다고 한다.) 출발선에 선 달리기 선수가 모든 감각을 집중해 듣는 출발 신호가 내게는 이 ‘드볘리 앗끄리바이샤’라는 안내 방송이었다. 일단 타고 나면 문이 닫혀도 위험할 게 없어서인지 닫힌다는 방송보다는 열린다는 방송만 기억에 남았다. 누군가에게 러시아에서 배워 온 말이 ‘문이 열립니다.’라고 하면 피식, 웃을지도 모를 일이다. ‘Дверь открывается’의 사전적 정의가 아닌 심적(心的) 정의는 아래와 같기 때문에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문장이다.
“문이 열립니다-만, 6~7초 안에 타지 않으면 슉-쾅! 하고 닫히는 문에 받칠 수 있으니 빨리 타시기 바랍니다.”
이렇게까지 친절히 안내해 준다면 ‘스빠씨바’라고 하겠지만 말이다. (욕 한 거 아님.)
2주간 러시아 지하철을 버텨내고 돌아와 인천공항 공항철도를 타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에스컬레이터가 너무 느렸고, 지하철 문도 참 부드럽게 닫혔다. 본국의 대중교통 시설에 이질감을 느낀 걸 보면 모스크바 지하철, 꽤나 긴장하고 집중하며 탔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