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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ON FAVORI 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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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Jan 31. 2021

걷다가 마주친, 몽펠리에

프랑스 네 도시 이야기, 몽파보리 (4-1)


   




    몽펠리에에서는 어디를 가든 코메디 광장(Place de la Comédie)을 거쳤다. 첫 몽펠리에 여행의 첫인상도 코메디 광장이 채웠다. 남프랑스의 한여름 뙤약볕은 기차역에서 광장까지 걷는 5분 남짓의 시간마저 여행자를 지치게 할 만큼 강렬했다. 넓을 광, 마당 장. 이름에서부터 탁 트인 공간의 위용을 자랑하는 광장이 있었기에, 캐리어를 끄는지 캐리어에 끌려가는지 분간이 안 될 만큼 지쳐 있던 여행자가 숙소까지 찾아갈 힘을 낼 수 있었다. 탁 트인 그 풍광에 잠시나마 마음을 뺏긴 여행자는 광장 이름처럼 여행이 희극(‘코미디’)이 될 거라 기대했다.


 희극은 개뿔. 1막 1장부터 비극이다. 

(이 비극이 궁금하시거나 기억이 잘 안 나시는 분은 <몽파보리 1-1>를 읽어주시길...아래 링크↓) 

https://brunch.co.kr/@ksh4545/54

    비극을 헤치고 호텔 방을 박차고 나와 둘러본 몽펠리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1막 2장부터는 다행히 희극이었다.

 

    희극의 여운이 짙게 드리웠는지 몽펠리에에 또 오고야 말았다. 무려 7년 만에 재상연된 몽펠리에 이야기의 시작은 또 비극이었다. 이번 숙소는 아예 예약 내역이 없단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예약 내역을 정확하게 확인하는 건 맞지만, 체크인이 40분이나 걸릴 일일까 싶었다. 겨우 들어간 방에서 쉬려는 데 옆방에서 한바탕 고성이 오간다. 우리말이었으면 귀동냥으로 싸움 구경이라도 할 텐데,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르는 고함 랠리는 그저 소음이었다. 호텔 방음을 탓하기엔 그들의 성대는 견고했다. 


    체크인에 시간을 허비한 탓에 벌써 저녁 어스름이었다. 한낮이라면 몸이 먼저 기억하는 남프랑스의 열기 때문에 나가기 망설였겠지만, 열기가 주춤해진 때의 골목 산책은 나서려는 걸음걸이마저 가볍게 만들었다. 코메디 광장으로 이어지는 큰길을 걷다가 왼쪽으로 슬며시 이어지는 작은 길로 괜히 들어가 본다. 옅게 음악 소리 같은 게 들렸기 때문이다. 멀리서부터 가벼워진 내 걸음걸이보다 더 가벼운 발걸음이 보였다. 스윙 리듬에 맞춰 명랑하게 골목 바닥을 콕콕 찌르는 스텝의 행렬. 걸음을 늦추며 그 흥겨운 광경을 바라봤다. 스윙의 마지막 마디가 Ⅱ-Ⅴ-Ⅰ도 화음 진행으로 마무리될 즈음, 둘이서 다섯이서 스텝을 맞추던 사람들이 유유히 흩어진다.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느 골목길에 드리운 즉흥 한 자락 덕분에 아까의 비극은 희극을 완성하기 위한 복선이란 걸 깨달았다. 가까이 들어선 골목은 부인할 수 없는 희극, 코미디 그 자체였다. 우연한 일상이 교차하는 골목은 멀리서 봐도, 가까이서 봐도 희극인 곳은 아닐까. 


mignon  a. 사랑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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