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행복 실천기
내일 건강하기 위해선 오늘을 잘 보내고 매 끼니를 잘 챙겨먹어야 한다. 일과가 끝난 후 그냥 잠들기 보단 짧은 스트레칭이라도 하는 것이 좋고, 스트레스 역시 이왕이면 받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하루는 바쁘고 시간은 늘 부족하다. 내일을 잘 버티기 위해선 십 분이라도 더 자야하고, 기지개를 켜며 굳은 몸을 펴기 보단 한 모금 커피로 몸과 정신을 깨우는 게 더 효과적이다. 인간은 하루하루 체력을 소모하고, 그 과정에서 때론 건강을 잃는다.
열아홉, 대입을 앞두며 고민이 많아졌다. 가고 싶은 과보단 성적에 맞는 과를 찾아야 했고, 1학기 내신 점수도 관리해야 했다. 나를 포함한 아이들은 오전 여덟 시부터 밤 아홉 시까지, 학교에 앉아 공부하고 고민했다. 딱히 가고 싶은 과가 없었던 나는 내신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예체능을 선택했다. 여름 방학부턴 과외를 받았는데, 그즈음부터 몸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입 주변에 포진이 생기는 언니와 달리 나는 입 안에 포진이 생겼다. 밥을 먹다 따끔한 느낌이 든다 싶으면 혀끝으로 포진이 느껴졌고, 양치를 하다가 포진을 건드리면 눈물이 핑 돌았다. 공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또 대학에 가기 위해 선택한 과였지만 스트레스는 여전했다. 나는 매일 입시에 실패하는 생각을 했고, 합격작과 내가 쓴 글을 비교하며 자괴감에 빠졌다. 내겐 신선한 생각이 없었고 사유 깊은 문장도 없었다. 나는 그저 합격작과 비슷하게 플롯을 짰고, 문장을 썼다.
어느 날, 버스에서 내려 땅에 발을 딛는데 땅이 푹 꺼졌다. ‘왜 이러지?’ 생각하며 주변을 살폈지만 사람들은 모두 멀쩡했다. 땅이 푹푹 꺼지는 느낌을 받으며 집에 도착해 침대에 누웠을 때, 천장이 빙빙 돌았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천장은 멈추지 않고 돌았다. 어지러움을 참기 위해 눈을 감으면 온 몸이 도는 기분이었다. 이비인후과에선 이석증을 의심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갑자기 몸을 움직이면 이석이 움직이는데, 이때 순간적으로 균형 감각을 잃거나 돌이 제자리를 찾기 못한다는 거였다. 엄마 역시 젊었을 적 이명과 중이염으로 고생했기에, 검사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검사는 약 한 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이명 검사는 헤드셋을 착용하고 삐- 소리가 날 때마다 버튼을 눌러야 했는데, 평소 이명이 있는 탓에 이명과 헤드셋에서 나오는 소리를 구분하기 힘들었다. 이석증 검사는 침대에서 진행됐다. 의사는 내게 고글을 줬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의사는 시선을 한 곳에 고정한 채 몸을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기울여보라 했다. 의사는 심한 이석증은 아닌 것 같다는 소견과 함께 일주일 치 약을 처방해줬다. 약을 먹고 어지럼증이 나으면 좋겠지만, 별 차도는 없었다. 나는 집 앞에 있는 한의원으로 향했고, 한의사는 ‘메니에르 증후군’을 의심했다. 그는 이석증과 메니에르 증후군이 비슷한 증상을 보이긴 하나 조금 차이가 있다며, 자신이 보기엔 메니에르 증후군에 가까워 보인다고 했다. 그는 내 정수리와 귀, 손바닥, 배, 종아리 등 몸 곳곳에 침을 꽂았다. 몸에 침이 꽂힐 때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침을 다 놓은 후 배 위에 뜸을 올리며 한의사가 말했다. “스트레스 안 받는 게 제일 좋습니다.” 이비인후과에서 약을 받아먹을 때와 달리, 침을 맞자 머리가 맑아지며 어지럼증이 사라졌다. 그 후 나는 일주일에 두세 번 한의원을 찾았고, 그때마다 한의사에게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
한의사의 말대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세상엔 스트레스(를 주는 것들)가 너무 많았다. 그런 날엔 땅이 꺼지고 천장이 돌았으며, 심할 때엔 멀미를 하는 것처럼 속이 좋지 않았다. 극도의 어지럼증을 느낀 날엔 어지럽지 않았던 날이 떠올랐다. 빠른 속도로 앉았다 일어나도 괜찮던 날이 떠올랐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로한 날이라 할지라도 천장이 돌지 않던 때가 생각났다. 하지만 몸의 균형을 잡는 기관은 이미 외부에 의해 타격을 받은 상태였고, 그것이 무너지지 않고 잘 유지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스트레스 받지 않는 상황을 만들려 했고, 피로한 날엔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순 없으나 어느 정도 무시할 수는 있으므로, 후자를 택하는 게 편했다.
금이 난 컵이 금나지 않은 컵보다 더 쉽게 깨지는 것처럼 인간의 몸 역시 그렇다. 한 번 타격 받은 곳은 약한 충격에도 금이 가고 무너진다. 삶과 내게 가해지는 타격을 원천봉쇄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지만, 취약해진 곳에 안전장치를 설치하고 보호막을 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건강할 때 건강 잘 챙기라는 말도 있지만, 조금 덜 건강한 때에도 건강은 챙겨야 한다. 그래야 금 간 곳이 더 이상 깨지지 않고 조금씩 붙으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한 번 타격 받은 곳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게 보완하고 보호하는 일. 또 타격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그것에 대비하는 일. 그것이 곧 건강을 지키는 일이자 나를 지키는 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