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행복 실천기
의사를 전달하고 마음을 표현하는 데엔 다양한 방법이 있다. 내가 가진 것을 주거나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거나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말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고 감정을 표현한다. 또한 표정이나 몸짓과 같은 비언어적인 행동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거나 읽기도 한다. 우리는 주로 사람과 대화하고 감정을 나누지만, 때론 사람 아닌 것과도 교감하고 마음을 나눌 때가 있다. 식물을 사랑해 마당 곳곳에 화분을 놓고, 그것들 하나하나에 이름 붙이는 이처럼 말이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가장 처음으로 받은 과제는 ‘나무와 대화하기’였다. 시인이자 교수인 선생님은 우리에게 학교에 있는 수백 그루의 나무 중, 스무 그루의 나무(종류도 모두 달라야 한다고 하셨다)와 대화를 하고 그 내용을 적어오라 하셨다. 학생들은 선생님께 “나무랑 대화를 어떻게 해요?” 물었고, 선생님은 장난스럽지만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무 옆에 앉아서 나무가 너한테 말을 걸 때까지 기다려야지.” 나를 포함한 학생들은 모두 그게 가능한 일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고 선생님만 유일하게 미소를 띠었다. 꽤 큰 점수가 걸린 과제인 만큼 당황스럽더라도 나무와 대화를 해야 했다. 나는 매일 걷던 캠퍼스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선생님의 말처럼 학교엔 나무가 정말 많았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은행나무부터 소나무와 매실나무, 벚나무, 배롱나무까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을 땐 이 나무나 저 나무나 별 차이가 없어보였는데, 관심을 갖고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것들에게 존재하는 차이와 개성이 보였다. 스무 종류의 나무를 찾은 후, 가장 먼저 은행나무에게 말을 걸었다. 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은행나무의 잎은 파랬다. 굵고 긴 가지는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어 있었고, 은행나무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냄새 역시 나지 않았다. 나는 나무 주변을 걷다 조심스레 입을 뗐다. “안녕.” 안녕은 누군가에게 가장 처음으로 하는 말이자, 상대의 안부를 묻는 말이었다. 내 물음에 나무는 답이 없었다. 그저 부는 바람에 가지가 흔들릴 뿐이었다. 학생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에 있는 나무를 찾았으나, 간혹 나무 주변을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그들의 눈치를 보며 다시 한 번 말을 걸었다. “너는 안 심심하니?” 안녕, 하고 말했을 때처럼 나무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나무 옆에 서서 함께 바람을 맞고 햇볕을 맞았다. 나무와 대화하기는 어느새 나무 곁에 서서 햇볕 맡고 바람 맞기가 되어 갔다. 나는 나무 옆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날아가는 새, 발밑을 지나는 개미 등을 봤다. 사람들은 꽃이 활짝 피거나 노을이 질 때, 무언가 소란스러운 상황이 생길 때를 제외하곤 주변을 돌아보지 않았다. 다들 어딘가를 향해 바삐 걷거나 뛰었다. 그들을 보다 문득 나 역시 그렇다는 걸 깨달았다. 바쁘지 않음에도 종종 걸음으로 앞만 보고 걸었던 날이 머릿속을 스쳤다.
스무 종류, 스무 그루 나무와의 대화는 비슷하게 진행됐다. 사람들 눈치를 보며 나무 곁으로 다가간 내가 “안녕.” 하고 인사하면, 나무는 그저 고요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럼 나는 나무에 손을 대고 마음속으로 말을 건넸다. 물론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과제를 제출하기에 앞서 대화 내용을 적을 때, 많은 고민이 들었다. 대화라기 보단 혼잣말에 가까웠던 상황을 솔직하게 쓸 것인지 아님 약간의 거짓말을 보태 나무의 대답을 상상해서 쓸 것인지. 오랜 고민 끝에 나는 솔직하게 쓰는 것을 택했다. 과제를 제출한 후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나무와 대화한 기분에 대해 물었다. 학생들은 쉽지 않았다, 힘들었다, 나무가 대답을 안 해주더라, 와 같은 대답을 했다. 그 애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비슷한 대답을 했다. 쉽지 않고 힘들었으며, 때론 부끄러웠다고. 그 후 선생님이 하신 말씀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내게 남는 건 있었다. 이후 나는 길을 걷다가도 나무에게 말을 걸었고 지나가는 고양이에게도 말을 걸었다. 머리맡에 놓인 인형에게도 “오늘 뭐 했니?” 물었고, 휴대폰을 떨어뜨릴 때마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길을 걸을 때 앞만 보고 걷기 보단 주변을 돌아보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선생님이 내어 주신 ‘나무와 대화하기’는 나무에게 안부 묻기, 나무와 함께 서 있기로 끝났지만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나무에게 말을 걸고 나무와 대화할 생각조차 해보지 못할 것이었으니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을 바라보고 말을 거는 일. 어쩌면 선생님은 나무와 대화하기라는 과제를 통해 우리가 주변을 돌아보고 살피길 바라셨던 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