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없는 그림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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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대 공연장에서
최고 연주자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힘차게 지휘하고 있는 진수의 모습.
그것은 젊은 시절 진우가 꿈꾸었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무대가 아닌 객석에서
국내 최고의 지휘자가 된 동생의 음악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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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가 새로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진우의 온몸은 떨리기 시작했다.
이 음악은 오래전에
진우가 동생 진수를 위해서 만들어 준 곡이었기 때문이다.
진수가 이 음악회에 꼭 오라고 말했던 이유를 진우는 그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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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는 자기가 만든 음악이
거대한 공연장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20년 전
만약 진우가 동생과 함께 유학을 떠났다면
분명 그의 삶은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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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일로 음악회 중간에 공연장을 빠져나왔지만,
진우의 가슴은 여전히 두근거렸다.
국내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자신의 음악 소리가
진우를 계속해서 흥분하게 했다.
하지만 또 다른 생각은 진우의 마음을 점점 무겁게 했다.
지금 난 뭐 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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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마음은
서울 근교 작은 마을 회관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날 저녁에 있는
마을 어린이 음악회 20주년 공연을 준비하면서
진우는 잠시 옛 생각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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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진우와 진수는 총망 받는 젊은 음악인이었다.
동생 진수가 음악 공부를 위해서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할 때
진우는 서울 근교 작은 마을로 내려갔다.
거기서 배움의 기회가 없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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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아이들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마을 회관 안에는 아이들의 부모와 마을 사람들로 가득 찼다.
아버지가 쓰던 낡은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동혁이,
어렵게 중고 첼로를 사서 열심히 연주하는 미영이,
조금 깨진 심벌즈를 힘차게 두드리는 재석이,
그리고 소년 소녀 가장으로 조부모와 살면서
열심히 연주하고 있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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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오케스트라이지만
아이들의 연주는 매우 진지하고 열정적이었다.
지휘를 하고 있던 진우의 가슴에 알 수 없는 감동이 서서히 밀려왔다.
낮에 봤던 오케스트라 연주가
전에 진우가 꿈꿨던 최고의 무대였지만,
지금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이 연주회도
진우에게는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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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회를 마치고 나서 너무나 좋아하는 아이들과
이를 대견하게 바라보는 부모와 마을 사람들.
그들의 행복한 얼굴 표정은
진우가 지난 20년 동안
이 작은 마을에서 음악 선생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한
힘이고 보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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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또 다른 오케스트라 연주 소리가 들렸다.
건물 밖에서 나는 소리였다.
마을 사람 한 분이 회관 문을 열자
진우는 깜짝 놀랐다.
마을 회관 마당에서
수십 명이나 되는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년 동안 수고했던 진우를 위해서
이 마을 출신 연주자들이 마련한 특별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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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수많은 별빛과
마을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어우러진 이 음악회는
진우에게 최고의 무대였다.
이 순간 진우는 그 누구보다 행복한 음악인이 되어
제자들이 들려주는 오케스트라 연주에 깊이 잠겼다.
# 후기
나에게 최고의 작품, 최고의 무대는 무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