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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믿는 믿음은 가능한가?

by 케이시르 Jan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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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신의 존재가 뭐~ 그래서~ 뭐~"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신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몰라도 상관은 없다. 그리고 이렇게 바로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은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주 건강한 사람이거나 마음의 병이 심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내가 주변 사람들보다 제법 괜찮다고 느끼며 하루를 사는 것이 힘들긴 해도 스스로 버틸 힘이 있다면 신의 존재를 알 필요가 없다. 신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살아내는데 지장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어느 목사님이 새벽마다 나와 기도하는 장로님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장로님의 기도를 들었다고 한다. 그의 기도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방해나 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있다는 말씀을 듣고 웃은 적이 있다.


아마도 이 장로님은 성경을 잘 아는 듯하다. 성경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제법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데 갑자기 고난을 당하고 시험에 빠지고 죽을 고비를 넘기는 이야기들 뿐이며 그것을 모두 하나님이 하셨다고 쓰여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방해하는 것이 가장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나이가 아직 어리거나 자신을 따르는 사람이 주변에 많고 돈, 명예, 힘, 외모 중 한 가지라도 남들에 비해 뛰어나면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든 하루를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신의 방해만 없으면 말이다. ;;;)


누가복음 5:31-3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하지만 신이 존재하여서 그런지 몰라도 괜찮은 사람으로 죽을 때까지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그나마 된다고 하여도 내가 붙들고 있는 한두 가지 일뿐 많은 것을 놓치고 있을 것이 분명하며 나도 모르는 원수를 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괜찮은 이유는 모르기도 하며 알아도 나와 상관없다고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심지어 그 원수가 나의 가족이라 할지라도....


두 번째, 마음이 병든 사람들은 사기를 당했거나 믿었던 사람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람은 물론 신조차도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다. 믿음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믿음을 강요하는 것은 매우 가혹한 일이다. 마음이 병든 사람은 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된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을 보면 사람들이 보기 남부럽지 않을 것 같은 재산이 조 단위를 가진 회장도 있었고, 외모가 아름답고 인기가 많았던 연예인도 있었고, 대통령을 지내셨던 분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사업에 실패한 사람도 있고, 잘못된 투기로 실패한 사람도 있고, 평범한 일상을 꿈꿨지만 사기를 당해 재산을 잃은 사람들이 있다.


삶이 힘들어져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남들이 모두 부러워할 만한 것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던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지만 실제 일어난 상황들이다.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면 신의 존재를 알기 어려운 환경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생명을 자신의 것이라고 믿은 것 같다. 그 누구도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 신의 존재를 알 수 있는 환경은 주어지지만 그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이유는 이것을 말해주거나 잘 설명해 주는 사람이 주변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이지만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 원하는 마음으로 나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사람을 땅의 흙으로 지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데 맞는지 따져보기로 했다. 땅에 곡식을 심어 정성을 다하여도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을 수도 있지만 생각만큼 거두지 못할 때가 있고 실패할 때도 있다. 그럼 사람이 마음먹은 계획은 어떤가요? 땅의 심은 작은 씨앗도 내 마음과 같지 않다.


미가 6:15
네가 씨를 뿌려도 추수하지 못할 것이며 감람 열매를 밟아도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포도를 밟아도 술을 마시지 못하리라


땅의 흙으로 높은 곳은 산과 언덕이며 낮은 곳은 골짜기이다. 사람의 마음도 어떤 사람은 자신을 믿는 믿음으로 내 뜻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는 산과 같은 사람이 있고, 마음에 병이 들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원망만 하고 있는 골짜기 같은 사람이 있다.


이사야 40:3-5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성경은 신의 영광이 나타나려면 산은 낮아지고 골짜기는 높아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산과 골짜기는 절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낮아지고 돋아나야 하며 그것을 위해 오신 분이 예수이고 말씀이다.


마태복음 23: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야고보서 1:9-10
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10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이사야 40:6-8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자신을 믿거나 사람을 믿을 수 있는 힘이 가능하다면 나는 그것을 끝까지 믿으라고 말하겠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 나이가 들면 들수록 몸은 병들어 가는 데 책임질 것은 많아진다.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책임져야 할 것이 많다. 회사에서는 나이만큼 많은 급여를 받고 있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생산성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생계유지를 위해 많은 급여가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그 모습이 나를 더욱 나약하게 만들고 있다.


자녀가 자라 학교에 가서 도무지 어떤 일이 있을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괴롭힘을 당하고 있진 않을지 혹시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쩌다 걸려오는 전화는 좋은 소식일리가 없다. 나 자신을 어떻게 믿고 한치 앞도 모르는 자신의 미래를 직접 보증하시겠습니까?


두 번째, 이런저런 문제들을 잘 피해오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갑자기 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음주운전에 치이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참사가 주변에 일어나며 느닷없는 자연재해로 많은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이런 일을 당한 후에 많은 사람들은 "신이 있다면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물을 테지만 나는 대답할 것이다. "신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요?" 그들의 억울한 일 앞에 스스로 위로도 이해도 되지 않기 때문에 신을 원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또 신이 없다면 억울한 죽음 앞에 선 사람들은 누구의 탓을 할 것이며 누구와 변론을 해야 하나요?


이사야 43:25-26
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26 너는 나에게 기억이 나게 하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는 말하여 네가 의로움을 나타내라


성경은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없애는 자"라고 쓰여있다. 신은 사람의 허물마저도 나를 위하여 완전히 없애는 것이라고 하였고 사람을 위해 사람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다.


신의 전지전능함으로 분명 모든 사고를 막을 수 있으며 한 명도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이 땅의 악함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신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모든 인류가 신의 존재를 인정하였다면 일어나지 않을 사건들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신은 이 땅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직접적인 개입은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이 신을 위해 존재하듯이 신은 존재를 알리기 위한 일에만 이 땅에 개입할 것이며 이 땅에 이미 많은 것을 보이시며 사람에게 핑계하지 못하게 하고 계신다.


요한복음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로마서 1:19-20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자신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만 할 것이다. 성경에도 지배자 계층에 있던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고 믿었다.


마태복음 22: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요한복음 11:25-26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사두개인은 이 시대에 성전세를 받고 부유한 제사장 가문 출신들이며 로마와 협력하며 정치를 했던 사람들이다. 이 땅에서도 특별하게 불편함 없이 지냈던 자들이니 지금이 좋다고 말하고 성경을 공부했음에도 아무런 근거도 없이 부활은 없다고 말하며 믿지 않았다. 반면 가난하고 외모는 볼품없었던 예수는 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했고 사람을 구원하러 왔다고 말하고 있다.


성경을 모두 알고 있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부활이 사실이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모른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눈감는 순간 즉시 알게 될 사실이라고 믿는다. 부활이 있다? 없다? 내가 눈을 감기 전에는 선택해야 한다. 아니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만약 부활을 믿는다면 부활의 방법과 의미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 부활은 믿었지만 방법과 의미를 잘 못 알았다면 부활이 없다고 한 사람들보다 불쌍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진리를 찾는 것이 어쩌면 무모한 도전이거나 이루지 못할 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찾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귀중한 시간과 삶을 아무 의미없이 보내거나 진리 안에 어떤 비밀과 숨은 보화가 숨겨져 있을지도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죽기 전에는 반드시 선택을 하게 되어 있다. 지금 인류가 우주를 탐사하는 것도 무모하지만 도전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신은 있다고 믿을 것인가?

아니면 신은 없다고 믿을 것인가?

신이 있다면 부활을 있다고 말할 것인가?

없다고 말할 것인가?

부활이 있다면 어떻게 가능하고 신이 우리에게 알려 준 방법은 무엇인가?


만약 신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부활은 없다고 믿어야 한다. 그 이유는 누구도 내가 나를 죽음으로부터 피할 방법을 알고 있거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부활이 있다고 믿기로 했다. 없다고 믿는 것보다 있다고 믿는 것이 하루를 살더라도 마음이 편하다. 무엇보다도 부활이 있어야만 오늘을 내가 살아가야 할 의미와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부활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우리의 삶에 변한 것은 하나도 없고 똑같다. 마치 컵 안에 담겨진 물과 같다. 이제 내 인생에 반을 지나 컵 안에는 반쯤? 그보다 적은 물이 담겨있다. 같은 물의 잔을 보아도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부활을 믿는 나는 아직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고 오늘 하루를 산다. 컵이 비워지면 더 깨끗한 생수로 채워질 것을 알고 있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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