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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무엇을 가지고 사는가?

by 케이시르 Jan 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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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와 죽음 앞에 과거부터 지금까지 사람은 믿음이 필요했고 믿을 대상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를 위한 신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니 사람은 기본적으로 종교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스로 신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세상의 물질을 따르기도 하고 다양한 방식의 신이 있다. 사람은 무엇 때문에 종교를 만들어야 했으며 필요로 했을까? 고대로부터 수천 년간 일어난 전쟁 앞에 사람은 무기력해지고 죽음의 위협 앞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기도하는 것이 전부였다. 또 알 수 없는 시기에 찾아오는 자연재해의 앞에서도 무기력하게 잃은 죽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쟁,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나라, 직장, 가정, 자녀, 가장 작게는 나 스스로의 문제 앞에서도 무기력해진다. 이렇게 무기력해졌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거나 말할 수 없는 탄식의 신음소리를 누군가에게는 말하고 싶고 들어주길 바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고대부터 지금까지 사람은 신을 만들어 내야만 했다.


B.C 1500년 전에 쓰인 성경에도 사람들은 우상을 챙기고 있었고 그것이 곁에 있어야만 마음의 안정을 얻었던 모양이다.

창세기 31:19, 34-35
19 그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우상) 도둑질하고
34 라헬이 그 드라빔을 가져 낙타 안장 아래에 넣고 그 위에 앉은지라 라반이 그 장막에서 찾다가 찾아내지못하매
35 라헬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마침 생리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하니라 라반이 그 드라빔을 두루 찾다가 찾아내지 못한지라


창세기 35:4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에스겔 8:7, 10
7 그가 나를 이끌고 뜰 문에 이르시기로 내가 본즉 담에 구멍이 있더라
10 내가 들어가 보니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방 벽에 그렸고



B.C 1500년을 넘어 A.D 2000년인 지금은 어떠한가?

인간이라는 동물은 강력한 누군가가 자기를 리드해 주기를 바란다니까~
저 안에 있는 인간들 떡국물이라도 떨어질까 봐 그것 먹을라고 있는 거거든
그 떡국물 주디에 많이 처넣어 줄 거야~
전두광 (서울의 봄)


사람에 생각의 한계가 딱 이 수준이라는 것을 영화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동의할 것이라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많은 이들이 공감을 했으니 대사를 썼을 것이며 실제 일어난 사건을 다룬 영화이기도 하다. 사람은 보이는 강력한 리더가 대신 싸워주길 원하고 그에 따른 보상도 받길 기대한다.




사람이 만들어 낸 신들의 특징은 순금으로 만들어 눈을 현혹시키거나 거대하고 웅장하게 지어 사람을 압도하게 만든다. 사람은 압도하는 물질 앞에 자연스럽게 경건해지고 겸손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는 일상에서도 흔히 만나볼 수 없다. 동네에 싸움을 잘한다고 소문난 사람, 동네에서 게임을 한 번도 져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입방정이 매우 심하다. 내가 보는 세계에서는 날 이길자가 없기 때문에 그럴 수 있어 보인다.


그들은 프로격투기 선수를 만났고 익명의 게이머를 만나 한껏 심한 입방정을 떤다.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은 참 한결같다고 느껴진다. 제가 눈으로 직접 경험한 두 가지 예화를 보며 맞는지 틀리는지 따져보려고 한다.


프로 격투기 선수는 여유가 넘쳤지만 입은 놀리지 않고 과묵하다. 경기는 시작되었고 1분은 할만하다고 느꼈는지 눈의 살기가 가득하다.

그 후 동네 싸움꾼은 급격히 체력이 저하되고 자신의 공격이 하나도 통하지 않음을 직감한다. 그때 프로 격투기 선수는 찰나의 힘을 보이자 동네 싸움꾼은 그 살기에 이길 수 없음을 직감했고 결국 엄청난 공격을 받은 뒤 패배하였다. 동네 싸움꾼의 눈빛은 어느새 순한 양이 되었고 무서워 보였던 그의 얼굴이 그저 귀여워만 보이는 아이같이 된 모습을 보았다.


게임 대결도 격투기로 보고 있어 "좀 치냐~  맞을 준비 됐지~"라고 하며 익명의 채팅을 날린다. 그리고 게임이 조금씩 밀리자 욕이 마구 쏟아진다. "ㅆㅂㄹ ㅆㄲ" "운 좋네~  다시 와봐~" 이긴 상대에 운이 좋았다고 말하며 패배를 인정하지 못한다. 게임은 계속되고 지는 것을 반복해도 이 레퍼토리는 변함이 없다. "게임 ㅈ같이 하네~" 하며 인정하지 않는다. 그 후 익명게이머가 프로게이머였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역시 순한 양이 되어 "그럼 그렇지~ 내가 질 리가 없지~"라고 하며 프로에게 예의를 다해 깍듯해지는 모습을 보았다.


사람을 경건하고 겸손하게 만드는 방법은 자신을 압도하는 무언가 앞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들도 돌아서면 다시 본인의 모습으로 돌아가있다. 그래서 종교는 무조건 높은 곳에 크고 웅장하게 신을 만들었다. 사람을 압도해야 했기 때문이다. 오즈의 마법사에도 무서운 표정을 한 기계를 마법사라 믿었던 것처럼 사람은 압도하는 물질 앞에 무릎 꿇게 되는 것이 종교성이다.


우리는 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넘어왔는 데, 당신이 상상했던 신의 모습과 일치하나요?  일방적인 힘으로 사람을 압도하고 강제로 무릎 꿇고 믿게 하는 신이었나요? 이들은 신 앞에서는 벌벌 떨지만 돌아서서 보이지 않으면 나와 상관없다고 할 것이다. 신이 되어 그 모습을 지켜본다면 어떨까요? 힘으로 압도하는 신이 배신한 사람을 용서할까요?


종교성은 자신에게 등 돌린 채 살아가다가 압도하는 자리에 가서 순한 양이 되어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종교성이다. 전지전능하여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신이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자백하는 자에게 무조건 적인 용서를 하실까요?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종교성이 없는 것 아닌가요? 아이돌 가수가 idol 우상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연예인을 따라다니는 것도 종교성의 일부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 앞에서도 압도당하기 때문이다. 돈만 있으면 무조건 다 된다는 생각도 종교성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사람 위에 있게 되었다. 돈이 있는 사람은 명예와 권력이 힘이고 능력이라 믿고 또 그런 사람들은 화려하고 예쁜 여자에게 눈이 현혹되어 여신이 앞에 있다. 성경에서 신이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이 만든 석상이나 건물 같은 것이 아니라 재물과 음녀라고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요한계시록 17:1-2
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2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 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이렇게 사람은 각자의 형편과 사정에 따라 내가 가장 절제할 수 없는 것을 믿고 의지하고 있으며 그것이 사라졌을 때 모든 꿈과 희망을 잃을 것 같은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압도하는 석상과 경건한 건물에서 무릎 꿇고 절하며 눈물로 울부짖으면 내 소망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 이유는 내가 흘린 땀과 눈물이 헛되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의 땀과 눈물을 믿은 것이지 신의 뜻을 알고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자는 애써 땀과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헌금을 많이 하고 재물을 많이 바치면 내 꿈과 사업이 번성할 것이라 믿는다. 돈, 명예, 권력, 음란은 자신이 만든 욕망의 신 앞에 가지지 못하여 갈급하고 목마른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있을 수 있고 그것을 가지는 것이 삶의 전부가 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은 사람이 만들어 낸 신과 같은지 살펴보기로 했다.


사무엘상 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사야 1:11-13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시편 51:16-17
16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마태복음 9:13
12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성경은 여러 번 반복하며 강조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은 번제와 제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고, 말씀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였지만 사람들은 말씀을 읽고 이해하는 것보다는 행위를 더 좋아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또 신은 왜 사람들의 제사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하셨을까? 신은 분명 사람에게 영광과 찬송을 받기 위해 사람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성경이 틀린 것인가? 정말 그러한가 따져보기로 했다.


에스겔 28장 12-17절

12. 너는 완전의 표본으로 지혜가 충만하고 나무랄 데 없이 아름다웠다.

13 네가 하나님의 동산인 에덴에 있으면서 갖가지 보석으로 단장하였으니... 네가 창조되던 날에 너에게 주어진 것이다.

14. 내가 너를 택하여 지키는 그룹 천사로 세웠으므로 네가 나의 거룩한 산에 있으면서

15. 네가 창조되던 날부터 네 행위가 완벽하더니 마침내 네 이 드러났구나.


이사야 14장 13-15절

13 너는 속으로 이런 말을 하였다. 내가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의 별들 위에 내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 산에 앉을 것이며

14 가장 높은 구름 위에 올라 제일 높은 자와 같이 될 것이다. 

15 그러나 너는 지옥의 가장 깊은 구덩이에 빠질 것이며



신이 번제와 제사를 원하지 않는 것은 완벽한 행위로 인해 빠질 수밖에 없는 교만한 마음을 싫어했던 것이다. 사람이 행위로 인해 교만하지 않을 수 있다면 번제와 제사를 마음껏 드리라고 했겠지만 사람의 속성을 모두 알고 있는 신은 어쩔 수 없이 번제와 제사를 거부하였고, 그럼에도 계속 시켜왔던 것은 우리 안에 교만함을 알려주시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태복음 6장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성경에 말씀이신 예수님은 더 정확하게 설명해 주기 위해 기도하는 방법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신다. 우리가 성경에 있는 말인지도 모르고 자주 하는 말이 나온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을 해주시면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나에게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 영광과 찬송의 핵심이다. 하지만 사람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행위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연약한 존재이다. 이 땅에 "신과 같이 되어" 선악을 내 기준으로 분별하는 원죄를 가지고 있고 영광과 찬송을 내가 받으려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다.


번제와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행위로 인한 교만으로 인해 네가 죽을까 염려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 듣는 것을 좋아하신다고 하시는 것이죠. 들음에는 행위가 나타나지 않고 듣는 자는 기쁨이 넘치게 되고 이 기쁨이 신에게는 영광과 찬송이 되는 것이다.


누가복음 10:38-42
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르다가 직접을 마중 나가서 주님을 만나 집으로 초대하였고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아 분주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가 주의 곁에 않아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을 보고 혼자 일하고 있는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 것을 보고 주님께 동생에게 도와주라고 말해달라고 하는 상황이다.


주님을 우리 가정에 초청하였으니 많은 것을 대접해 드리고 싶은 마르다의 마음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같을 것이다. 내가 가진 능력보다 많은 것을 드리고 싶은 귀한 마음이 주님께서 오시자마자 더 분주해지고 염려와 근심이 생겨버린다. 이처럼 우리는 번제와 제사를 위해 분주하고 많은 일을 하려고 염려와 근심 속에 있어 정작 찾아오신 주님을 만날 시간이 없다.


사람이 신에게 드릴 것이 있다면 무엇을 드리면 무엇을 드려야 신이 사람에게 감사하고 기뻐하실까요? 우리가 신에게 드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신의 말씀을 듣는 것이 전부이며 이 시간을 빼앗기지도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신이 나에게 찾아와서 많은 것을 요구한다면 그분이 신이라고 느껴지시겠습니까? 만약 신에게 많은 것을 드렸다면 오히려 당신이 부양해야 할 대상이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신은 신을 위해 존재하고 신이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신은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상을 줄 수 있을까? 이것만 고민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상을 받으려면 신의 뜻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말씀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지요. 상을 받는 것이 우리가 무엇을 잘해서 드려서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물이라고 성경은 표현합니다.


스가랴 10:2
2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하지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가 헛되므로 백성들이 양 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


에베소서 2:8-9
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번제와 제사를 원하지 않으면 교회에서 헌금도 받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교회는 신이 아닙니다. 신을 예배하고 찬송하는 공간일 뿐이지요. 그 공간은 사람이 쓰는 공간이기도 하며 교회 안에 모인 것은 사람들이지 신이 아니다. 신이 번제와 제사를 원하지 않는 것을 행위로 드리는 것을 말하며 사람들이 모인 교회에는 부양해야 할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헌금이 필요한 것이지 절대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도 아니다.


마태복음 22:21
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한대
18 예수께서 저희의 악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 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 셋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21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대한민국의 조상이나 건물이 그려진 것이니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교회와 나라를 위해 드리는 것이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하나님의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우리의 생명 몸이다.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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