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신이 알려주어 받아 쓴 책인지? 사람의 상상력으로 쓴 책인지? 나는 몇 가지 성경구절을 보며 이 땅에 사람은 절대 알지 못하고 쓰지 못할 것이라 확신하는 구절들이 있다. 성경이 쓰여진 B.C 1500년부터 시작해서 1600년간의 일관된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 성경이다. 모두 사람이 썼고 사람이 모았고 사람이 분류하여 완성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신이 직접 써서 하늘에서 뚝 떨어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람은 생각해 보지만 하늘에서 떨어진 책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믿으셨겠습니까? 분명 사람은 이것도 믿지 못하고 의심할 것이다. 직접 떨어지는 것을 보지 않는 이상 믿지 못한다고 할 것이다.
그럼 지금 우주 정거장이나 드론을 높게 띄워 하늘에서 책을 떨어트리면 그것은 믿고 따르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의 이런 속성을 너무 잘 알고 계신다. 직접 사람을 만드셨으니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아신다고 봐야 한다.
그럼 이렇게 의심 많고 따르지 않는 속성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하나님을 믿으며 찾으란 말입니까? 나를 포함하여 따질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때 나에게 들려온 소리는 성경은 봤니? 보았다면 무엇을 보았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성경에 무엇이 어떻게 적혀있는지도 난 알지 못했다.
그저 어려서부터 들었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셨는 데 그 예수님이 나 대신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내가 구원을 받아 영생하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들어왔기 때문에 거부감 없었고 그렇다고 하네~~ "그래서 이거 맞아?"라고 나에게 다시 물어보면 속으로 난 "글쎄~ 맞겠지~ 근데 음~~ 확신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난 어느 누구에게도 복음을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성경책을 봐야만 했고 찾아야만 했고 확인해야 했다. 성경이 진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인지 사람이 죄짓지 말고 착하게 살라고 지어낸 법인지 확실히 구분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렇게 하나님이 주셨다는 확신이 드는 글들을 찾게 되었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아도 이것은 사람이 쓴 책이 아니었다....
첫 번째 증거는 생명이다. 사람은 생명이 살아있다는 정의를 머리와 몸이 동시에 움직일 때만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에게 죽었다고 말하고 죽었다고 말했는데 분명 살아있다. 사람은 절대 이런 생각을 하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어떻게 사람이 살아있는 자에게 "넌 죽은 사람이야~"라고 말하며 "넌 죽었어~"라고 한 사람이 살아있다. 글을 쓰는 사람이 장난으로도 쓰기 힘든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성경이 장난으로 한 말인가? 그럼 질문을 바꿔 생명이 무엇인지 사람이 알까? 사람은 생명이 무엇인지도 죽음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생명은 어디서부터 왔고 죽음은 어디로 가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창세기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3:6-7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하나님은 반드시 죽는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사람은 눈이 밝아졌다.
누가복음 9:59-60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죽은자들로 죽은자를 장사지내게 하라?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죽은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확신했다.
아~ 생명과 죽음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자만이 이것을 쓸 수 있겠구나!!
두 번째 증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었을 때 얼굴이 찌푸려질 비유의 글이 있다. 아무도 이런 글을 쓸 이유도 목적도 없다고 생각한다.
비유는 대략적으로 이렇다. (마태복음 20:1-16)
포도원 주인이 아침 일찍부터 나가 일꾼을 찾으러 나갔더니 사람들이 모여 있어 오전 9시에 일할 사람을 선택하며 하루 일당 10만원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오후 12시가 되어 일할 일꾼이 어디 없나 보았더니 일할 사람이 있어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합니다. 오후 3시에도 나가서 마지막으로 오후 5시에도 나가서 일할 일꾼을 데려왔고 오후 6시가 되자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치게 되었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하인에게 일당을 주라고 하시면서 오후 5시에 온 사람부터 일당을 주라고 시킵니다. 오전 9시에 온 사람은 나는 10만원을 받기로 했는 데, 저 사람은 얼마를 받을 까? 기웃기웃 보더니 10만원을 받은 것을 보았습니다. 오전 9시에 온 사람은 더 많이 일한 나에게 더 많은 것을 주겠거니 생각하며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오후 3시에 온사람도 오후 12시에 온 사람도 처음에 온 오전 9시에 온 사람도 모두 10만원씩 일당을 주었습니다.
오전 9시에 온 사람이 화가 나서 주인에게 악하다며 원망하고 따지기 시작하였고, 주인은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하고 있는 데 내가 선하기 때문에 나를 악하게 보는 것이냐? 말씀하시며 나중 된자가 먼저되고 먼저 된 자는 나중 된다는 글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을 때 어떻게 보이시고 어떻게 들리시나요? 무엇이 보이시나요? 이 글은 사람이 이해하기도 납득하기도 어려운 장면 중에 하나이다. 사람이 이 글을 써서 누구에게 공감을 받을 것이며 누구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겠습니까?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이 말씀해 주셨고 그것을 사람이 받아 적은 것이다.
나는 또 확신했다.
어 글은 사람은 절대 생각할 수도 없고 사람이 주인이 되었을 때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학자들은 이 비유를 사람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많은 해석들이 있지만 그것 또한 사람이 듣기 좋은 해석일 뿐이다. 나의 가장 단순한 해석은 "주인이 신이라면 가능하겠다." 계산적인 사람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신은 생각을 하고
사람은 계산을 한다.
세 번째 증거는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성경의 일관성과 일치성이다. 대략 1600년간 다른 시대 다른 지방에서 다른 사람들이 적은 문건들의 내용이 한 사람 오직 예수만을 가리키며 작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생각은 비슷하여 그럴 수 있다고 하여도 직접 보지 않은 특정된 것에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A.D 2000년을 살고 있는 저자도 같은 것을 가리키며 글을 쓰고 있다.
사도행전 8:30-36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B.C 700년에 쓰인 이사야 성경을 읽고 도무지 무슨말인지 알지 못하고 있을 때, 그 말씀이 예수를 가르킨다고 알려주자 놀라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네 번째 증거는 신이 직접 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진짜가 되었다. 이 땅에 많은 글이나 책은 자신만의 이야기와 자기주장들로 온 세상에 둘 것이 없을 정도로 넘쳐난다. 이 모든 것들 사람이 만들어 냈으며 자기를 알리고 자기의 이름이 알려지길 원한다.
반면, 성경의 저자들은 그 시대에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능력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지금 우리도 글을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시대가 몇 백 년도 되지 않는다. 그런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쓰지 않고 남의 이야기를 대신 써준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지금 이 시대의 왕의 행적들만 기록하는 것이지 왕이 어떤 사람인지 대신 써주는 사람은 없다.
저자는 신이 직접 쓴 책이라고 하며 읽으라고 하였다면 나는 결코 읽지 않았을 것이다. 신이 신을 위해 존재하며 스스로 증언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만물이 신을 증언 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를 만난 사람들의 알 수 없는 행동들이다. 예수가 처참하고 처절하게 핍박받고 저주받고 있을 때, 함께 살았던 제자들은 공범으로 의심받을까 두려워 각자의 고향으로 도망간다.
그들이 믿고 따랐던 리더가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을 때, 슬픔과 허무함은 설명할 길이 없다. 그렇게 다시 생계를 위해 자신들이 잘하는 생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흩어져 있던 제자들이 한 곳에 모였고 "우리 주님 예수가 살아있다."라고 외치는 자가 되었다. 예수가 죽는 순간에도 함께 하지 못하고 도망간 겁이 많았던 사람들이 대체 무엇 때문에? 제자 중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러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들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그 소식에 기쁨이 되어 오늘날에 Good News 복음이 되었다. 그들은 모두 기쁜 소식을 전했다는 이유 하나로 모두 사형에 처하고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 역사적 증언에 따르면 그들이 죽는 순간에 웃고 있었다는 소름 끼치는 사실들이 이 땅에 남아있다. 사람은 조금이라도 피해를 받으면 얼굴을 찌푸리고 화내기 일쑤다.
예수가 살아났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는 데 떨림이 없고 웃을 수 있었다는 사실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준다고 생각하시나요? 대체 그들은 무엇을 보았기에 그런 것일까요?
죽임을 당하면서도 웃을 수 있었던 사람들의 비밀이 무엇인지 대체 무엇을 알았고 무엇을 보았기에 하나씩 파헤쳐보기로 했다. 죽임을 당할 때도 웃을 수 있던 사람이 오늘 하루를 살며 웃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