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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by 케이시르

성경이 사람이 쓴 책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남아있다면 조금만 더 들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자는 성경에 줄거리를 쓰려고 펜을 든 것이 아니다. 저는 성경을 처음부터 통독하지도 않았으며 신화, 동화와 같이 소설을 읽으려고 본 책이 아니다. 만약 소설을 볼 것이었다면 사람이 쓴 책을 찾아보았을 것이다.


히브리서 5: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말씀의 초보라는 뜻은 기본 개념 원리를 말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그 개념과 기초원리를 알지 못하면 잘못된 해답을 찾을 확률이 매우 높다.


성경은 "누가 이랬고 누가 저랬데~" 하며 남 이야기를 구경하라고 준 책이 아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계획을 찾으라고 주신 이 땅에 유일한 책이다.


앞서 많은 성경 구절과 함께 신이라는 존재를 찾기 위한 막연한 탐사는 이미 시작되었다. 탐사의 시작은 언제나 불확실성에서 시작된다. 모든 것이 확실한 것이 정해져 있다면 탐사라는 것에 의미는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의 첫 번째 약속!!!

에베소서 1:4-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가만있어봐~ 이게 무슨 말이지?

세상이 있기도 전에 우리를 택하였고 예정하셨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는 데 조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그렇게 하시겠다.


예수님은 알겠는 데 누구를 선택하신 것이고 누구를 예정하셔서 아들로 되게 하신 것일까? 이 구절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 약속을 듣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신이 이미 다 선택하고 정해놨다는 것인데 막살아도 되는 거겠네~ 당연히 이것이 정상적인 사람의 생각이며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결국엔 누군가는 택하셨고 예정하셨고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는 약속은 분명하기 때문에 그 약속을 생각하면 내가 선택받고 예정하셨고 아들이 되게 하셨는지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성경에 하나님께 버림받은 많은 천사와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하나님이 이미 버림받을 존재로 예정하신 것이고 하나님이 직접 찾아가시며 복 주시고 믿게 하신 사람들은 이미 선택받은 존재들인 것이냐?라고 강력하게 따질 수 있고 저도 마찬가지로 같은 생각이다.


이사야 45:9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


로마서 9:20-21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이사야 선지자와 바울은 쐐기를 박는 말까지 한다. 만든이가 이렇게 저렇게 만들었는데 지음을 받은 자가 왜 이렇게 만들었냐고 말할 수 있겠으며 무엇을 알겠느냐?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설령 맞다 하여도 지음 받은 자의 기분이 좋을 리는 없을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할 것은 신은 신을 위해 존재하며 나는 나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문제를 이성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은 하나님을 신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 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납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그의 계획과 목적에 맞게 운행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지음 받은 사람에게 알리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누구는 귀하게 누구는 천하게 만들었으며 권한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귀하고 천한 기준이 사람의 기준일까? 하나님이 기준일까?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람의 기준은 각자 생각해 보면 될 것이며 하나님의 기준은 성경을 찾아봐야 한다.


마태복음 10:29-31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에스겔 33:11
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하나님은 분명 맹세하시며 악인이라도 그가 가는 길을 돌이키는 걸 기뻐하신다고 하였다. 이것은 깊게 해석해 보면 분명 하나님은 창세 전에 선택하고 예정하셨다고 하셨는데 갑자기 돌이키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시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돌이키면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인지?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더 찾아봐야 한다.


성경은 성경이 해석한다는 말이 있고, 내가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나를 읽는다는 말이 있다.

또 "주님 말씀하시면"이라는 찬양의 가사를 생각해 보라.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라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라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주님 나를 이끄소서


이 찬양의 가사가 알듯 말 듯 하다. 어떻게 하면 내가 나아가는 길이 주님 말씀하신 것인지 알 수 있으며 어떻게 하면 내가 가는 길을 멈춰 설 수 있을까? 나의 온 힘과 열정을 다해 찬양을 불러보아도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내가 가는 길이다. 혹시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주님의 뜻이고 내가 멈춰 선 일이 주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매우 두렵다.

출애굽기 40:36-38
36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37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38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이집트를 떠나 하나님의 도움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신호를 보고 나아가고 멈춰 설 수 있었는데 우리는 무엇을 보고 나아갈지 말지 결정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문뜩 떠오른 생각이 성경을 보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씀을 볼 때 내가 좋아하고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구절만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가야 한다. 내가 알고자 하는 말씀을 찾고 주님이 그 말씀을 인도하는 대로 나아가고 어느 때가 되면 멈춰서는 말씀을 주신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 성경을 따라가보니 이런 말씀도 함께 주셨다.


베드로전서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하니님의 택하심은 "미리 아심을 따라" 택하시고 예정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각자 역할에 맞게 만드셨다. 이 땅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같은 일을 하며 살 수도 없고 모두가 한없이 놀기만 할 수도 없다. 각 사람이 자리에 따라 필요에 의해 존재해야 이 땅이 운행되고 유지가 된다. 내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잘할 수 있었던 것도 지금을 글을 쓰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만드신 뜻이 있을 것이다.


또한 나는 알고 싶어도 절대 알 수 없는 내일의 일을 신은 이미 알고 계시며 보고 계신다. 날 조정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나의 인생에 미리 보기가 가능하시다는 뜻이다. 성경은 시작하기로 "태초에"라는 시간을 만드셨다. 시간 안에 있는 존재라면 절대로 시간을 만들 수도 없고 조작할 수도 없다. 반드시 시간 밖에 있어야만 가능하다.


신이 시간과 공간 밖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는 악인들조차도 돌이키는 것을 보기 위함이다. 신이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는다고 한다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어야만 관찰이 된다는 뜻이며 모든 사람에게 변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이다.


시공간 밖에서 사람을 이 땅에 필요에 따라 하나님 임의대로 재능을 부여하셨다. 서로 다른 사람의 능력은 사람의 계산으로는 매우 불공평해 보이나 하나님의 길과 생각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제각기 다른 능력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이 심판하시거나 상 주실 때에 비로소 알 수 있다.


각자 부여받은 재능에 따라 이 땅에서 모두 험난하고 고통의 삶을 산다. 자신이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사는 삶 그대로 대신 살 자신이 있는지 생각해 보아라~ 나는 엄두도 나질 않는다.

요한복음 9:1-3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하나님은 분명하게 태어날 때부터 맹인일지라도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약속하셨다. 이처럼 우리는 각자 주어진 어렵고 힘든 환경에 살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지만 그것을 알게 되는 자는 택하심 받게 되고, 그것을 끝까지 모르고 자기 생각대로 사는 사람은 택하심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로마서 1:28
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내가 만약 맹인으로 태어났다면 하나님을 믿을 수 있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불평하고 원망하며 상실한 마음으로 살았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나를 맹인으로 만들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연약한 멘털로는 맹인으로 살며 하나님을 찾을 감당이 되지 않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가 마음을 돌이키길 원하시며 오래 참으시고 끝까지 기회를 주고 계신다. 잠시 후에 나를 배신할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가롯유다의 발을 씻기신 이유가 그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며 마지막까지 돌이킬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한다.

요한복음 13장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4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하나님의 첫 번째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창세 전부터 이미 그리스도안에서 택하셨고 예정하셨으며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하셨다는 이미 결정되었고 지켜진 절대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는 자들은 모두 택하심 받았다는 불변의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이 땅에 현실과 상황은 그대로일지라도 하늘의 신분으로 바뀌었다는 산소망이 오늘을 웃게하고 내일을 기다리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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