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독생자 되신 예수를 둘째 아들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표현에 거부감을 느끼시는 크리스천이 분명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미스터리에 대하여 말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받은 둘째 아들이며 독생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잘 알아야만 하기에 미스터리를 말하기 전에 예수님이 어떤 분이셨고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는지 따져 보아야 한다.
로마서 5:14-15
14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예수님은 누구에게서 태어났는가?
약속대로 유다지파의 가문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났지만
이삭의 아들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유다와 요셉을 낳고
유다는 며느리와 상간을 통해 낳은 아들에서
살몬은 기생과 낳은 아들에서
보아스는 이방인과 낳은 혼혈로 태어나
다윗은 충신의 아내와 간음하고 충신을 살해하고 얻은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고 맛단의 아들 야곱 그의 아들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으로 태어나셨다.
예수님의 조상들을 보면 유다지파와 다윗의 명성은 있지만 당시 유대인 사회를 보면 천박하고 혼혈 민족으로 유대인이지만 이방인(개) 취급을 받는 족보로 이 땅에 말씀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신의 존재라면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났을 것 같은데 성폭행과 불륜을 저지른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난 아들이 예수이다.
그는 어디에서 태어나고 자랐는가?
예수님은 나사렛이라는 아주 작은 마을에 유대 혼혈 민족들이 있는 북쪽지방에서 자라셨다. 태어나신 곳은 약속에 따라 베들레헴이라는 다윗의 고향인데 로마 황제가 세금 징수 목적으로 모두 고향에 머물라고 하여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를 임신한 상태로 베들레헴에 가야만 했다. 사람들이 한 번에 모여들었기 때문에 여관을 구하지 못하고 산통이 시작된 마리아는 근처 마구간에서 아이를 낳아야 했고 누일 곳이 없어 말구유에 누우셔야 했다.
그는 누구인가?
예수님은 우주 만물을 하나님의 뜻을 받아 말씀으로 지으신 우주를 운행하시고 다스리시는 주인이시며 하늘빛의 재질로 된 몸을 가지셔서 상하지도 않고 썩지도 아니하며 배고픈 것을 모르는 죄를 짓지도 알지도 못하는 분이시다. 하지만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늙고 병들고 아프고 배고프고 그래서 욕심 많아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사망의 몸으로 오셔야 했다.
그의 모습은 어떠한가?
사람이 보기에 흠모할 것이 하나 없어 볼품없는 외모로 태어나셨다. 영화에서 나온 예수님의 역할을 한 배우들의 모습은 모두 잊으셔야 합니다.
이사야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우주를 보라 얼마나 광활하고 은하계 빛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주를 다스리고 만드신 분이 천박하고 이방 개 취급을 받아야 하는 족보로 태어나신 곳도 자라신 곳도 알려지지 않은 시골 마을에서 흠모할 것 하나 없는 외모와 사망의 몸으로 대체 왜 이 땅에 오셔야 했을까요? 이렇게까지 했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조상이 누구든, 출신, 출생이 어떻고 외모가 볼품없더라도 돈이 많고 학력이 좋거나 인맥이라도 있으면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니 예수님의 돈, 학력, 인맥을 알아보죠.
그의 가정은 돈이 있었는가?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고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양을 제물로 드려야 한다. 가난한 사람만 비둘기로 대신하여도 된다는 법령이 있는 데 마리아는 비둘기로 제물을 드렸다.
누가복음 2:23.24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왕으로 들어가실 때 나귀의 새끼를 타고 들어가셨죠. 지금으로 말하면 가장 싸고 작은 차를 말합니다. 우리는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지를 보고도 경제력을 판단하고 있지요.
예수님은 어디 학교 나오셨나요?
예수님은 학교를 다니지 않아 학벌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7:15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예수님의 인맥은 어떻게 되나요?
열두 제자를 제외하고서도 미움받는 세리들과 범죄자들과 식사를 하시며 자주 함께 하셨다.
돈도 없고 지식은 어디서 배웠는지도 모르고 늘 미운 사람과 전과자들과 다니셨다. 사람들을 따르게 하시고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을 무엇을 보고 믿고 따르라고 이렇게 오셨나요?
이런 사람이 당신 앞에 와서 내가 너의 왕이라고 말하고 다닌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침을 뱉고 때리고 멸시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설마 예수님의 가족과 친구들은 응원해 주었겠죠?
예수님의 동생은 형을 믿지 않았고 따르지 않았다. 친구들은 미쳤다고 말하며 미치광이 취급을 했다.
요한복음 7:5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마가복음 3: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지금까지 보이는 모든 모습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따를만한 것이 보이지가 않는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예수님의 보잘것없고 초라한 면만 보인 것 같으나 우리가 지금 본 것들은 사실이다. 그래도 예수님이 잘하시는 것은 있었는데 말씀과 표적이었다.
말씀, 다시 말하면 구약 성경을 말하는 것이며 누구보다 완벽하게 설명하였고 그 모습에 모두 의아하게 생각했죠. 그리고 "하나님이 하셨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초자연적 기적들 표적을 보이셨다. 말씀을 잘하셨고 능력이 있으니 사람들이 어떻게 했을까요?
성경에 기록된 사람들을 살펴보며 사람이 얼마나 간사하고 간교했는지 알 수 있다. 돈도 없고 외모는 볼품없으며 학벌 인맥 자랑 할 것 하나 없는 사람이 말을 잘하고 능력을 보이는 모습을 사람들은 용납을 할 수가 없었다. 이해되시나요?
내 기준에서 왕은 출신은? 외모는? 돈은? 학벌은? 인맥은?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사람이 잘난 것을 사람을 왜 이렇게 보기 싫어하나요? 말을 잘하는 것도 놀라운 능력을 하는 것도 보기 싫다고 하는 것이 사람이고 우리들이다.
마태복음 20:15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성경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 말이 이해가 되시나요? 내가 할 수 없다고 느끼는 선을 사람은 위선이라고 낮추며 오히려 악하게 보거나 그를 처단하려고 하는 태도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마침내,
출신, 출생, 외모, 돈, 학벌, 인맥, 명예, 가족, 친구들까지 보이는 것이 모두 초라하고 천박한 예수님이 말씀과 능력이 있는 것을 참지 못하고 뺨을 때렸고 침을 뱉었고 조롱을 당하시며 아무 이유 없이 미워했고 죽임까지 당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보이셨다.
요한복음 15:24-25
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25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이심을 당하기 이전 상황이 예루살렘의 왕으로 사람들에게 찬양을 받으신 분입니다. 왕으로 초대하고 찬양했던 사람들이 1주일도 지나지 않아 죽여야만 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십니까? 시기와 질투는 사람을 죽이는 근본이 된다. 시기와 질투는 보이기에 잘난 사람들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기에 보잘것없는 데 잘난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죽이는 것이다. 동의하시나요?
예수님을 죽이자고 했고 죽였을 때, 과연 사람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저는 알았으면서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죽일 수밖에 아니 처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나를 살리며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일 뿐이다.
대체 왜?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이었는데 이런 비천한 모습으로 누구에게도 칭찬받지도 못하고 인정받지도 못하시고 아무 이유 없이 미움받으며 죽으셔야 했는지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절대 없다. 그 이유는 우리가 우주 하늘의 끝을 모르는 사람에 생각의 한계와 같다.
이사야 55:8-9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그럼에도 모든 것을 알 수 없지만 일어난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성경을 통해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역시 첫 번째 이유는 "말씀"에 답이 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 이유는 구약 성경을 들어도 보아도 알지 못하고 있는 종교 지도자들과 서민들 모두에게 말씀의 의미를 직접 증언하기 위해 오신 분이다.
만약 예수님의 역할을 한 대역 배우처럼 키도 크고 파란 눈에 빛나는 모습에 새하얀 백마를 타시고 옷은 화려한 금과 보석으로 장식하여 많은 천사들을 거느리고 이 땅에 오셨다면 말씀에 관심이 있었을까요? 예수님의 모습에 관심이 있었을까요? 저는 당연히 압도적인 모습에 관심을 가질 뿐 말씀에는 더더욱 안중에도 없었을 것 같다.
하나님은 사람이 말씀을 이해하고 가르치시길 원하신다. 그 이유는 말씀이 우리 안에 천국의 빛을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말씀되신 예수님과 가까이해야 하는 데 근사하고 화려한 사람 앞에 누추하고 초라한 내가 다가가서 대화를 하고 궁금했던 하나님의 뜻을 물어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
저자는 생각해본다. 하나님이 아들이 가장 초라한 모습을 와야만 했던 이유는 "아~ 바로 초라한 내가 예수님 앞에 말씀 앞에 설 수 있게 하시려고 그러셨구나!! 그래야만 하셨겠구나!!"
마가복음 10:13-15
13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면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지만 어린아이는 결코 순수하지 않다. 오히려 의심이 많고 호기심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는 말씀에 더 많은 것을 편하게 물어보고 더 많은 것을 비판해 보며 따지는 자의 것이라고 해석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이유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자를 부끄럽게 여기게 하시려고 이런 모습으로 오셨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스스로 지혜롭다 말하는 자 모두를 무시할 것이라고 했다. 스스로 지혜롭다 말하는 자들도 비천한 모습에 예수님을 경멸하기 위해 찾아왔고 그의 지혜를 시험하기 위해 난감한 질문과 상황을 꾸며내기도 했다.
고린도전서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욥기 37:24
24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모든 자를 무시하시느니라
가장 낮고 비천한 모습으로 오셔야만 했던 이유 스스로 지혜롭다 말하는 자들은 경멸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았고 가난하고 미련한 자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편하게 말씀을 듣고 찾을 수 있도록 누구든지 어떤 방식으로든 말씀을 듣기 위해 찾을 수 있는 가장 공평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빌립보서 1:15-18
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 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사랑으로 말씀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았고 어떤 이들은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말씀을 전파하지만 무엇인들 상관없으니 나는 기뻐하고 또 기뻐하노라
하나님의 말씀이 이 땅에 모든 나라에 전파되어 모두가 말씀 앞에 변명할 수 없을 때에는 사람이 상상하는 이상의 모습으로 나타내시며 보이실 것이다.
요한계시록 19:11-16
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그 모습을 우리가 보았을 때는 더 이상 하나님 말씀을 알았다고 변명 할 수 없을 때이니 "왜?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냐?"는 무서운 말을 하기 보다는 그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이해하고 생각하며 가르치는 것이이 먼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