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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진 Mar 31. 2016

새날에 보내는 편지

보릿대 그림자에 숨어

친구야!

명절은 자~알 보냈니~?

드디어 인생을 오르는 계단을

한 칸 더 올라섰구나

그만큼 천장이 낮아졌단

얘기겠지~

축하해야 될는지

위로를 해야  될는지 모르겠다

암튼 그만큼 더 재미와

행복과 사랑과 평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가

우리에게 주어졌단 얘기가

아닐까~

친구야~!

새날의 둘째 날이다

게을러터진 몸뚱일 허리에

차고

납작해진 등을 방바닥에

도배하여

뒹굴이 뒹굴이 하고 있다

친구는 뭐해~?

고향에 다녀온 뒷 향기를 풀어내

정리도 하고

아직 귀경길에 오르지 못한

친구도 있고

3일간의 붉은 날 동안

쌓인 피로를 펼쳐놓고 꾹꾹 눌러

주무르고 있는 친구도 있고

그래

이게 인생 아니겠니

우리 어제까지의 모든 것은

곱게 접어서 장롱에 넣어두고

오늘이란 새 이불을 꺼내어

푹신하게 몸을 담아보지 않을래~

친구야~~!

지난여름 무척 더웠잖아

숨이 헉헉 차고

땀이 비 오듯 쏟아져

차가운 겨울이 그리웠던

그렇게 더운 여름 한낮에

문설주 기둥을 감아올린 나팔이가

생전 처음 본 꽃을 살짝 피워내

넓적한 잎으로 가려놓지

않았겠니~!

얼마나 반갑고 신기하던지

더운 줄도 모르고

핸드폰으로 담았는데

그만큼 얼굴이 햇볕에

익었더라고

우리 함께 봐야지~

나팔이는 그늘에선  하루 종일

필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어


친구야~~~!

혹시 기억나니~?

어렸을 땐 보리를 밭에다가

심었던 거 말이야

6월 말 보리 탈곡하면 끄러운

보리 가시가 온몸을 간지럽힐 때

구판장에 막걸리 심부름 보내면

노란 주전자에 받아오다

보릿대 그림자에 숨어 몇 모금

홀짝이다 보면 주전자가

많이 가벼워지고

그만큼 비례해서 얼굴이

벌겋게 달구어졌던 기억 말이야

그런 얼굴로

나팔이가 딱 한송이만

그늘 속에 숨어 있지 않겠니~

그래서 정신없이 담았거든

사람들이 저놈 뭐한다냐~~

했을 거야

친구야~~!

올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은은하게 빛나고

누구나 감싸주고

자신의 역할을 다해내는

부드러운 나팔이가 되어보지

않을래~~

그럴 사람 여기여기 잡아라~

오늘도 파이팅해볼까~!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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