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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진 May 12. 2016

한강, 2015년 9월 21일

여름과 가을 사이

낙엽이 걸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까치는 무슨 생각을 그릴까!

시간이 밟히는 냄새를 맡으며

초조한 여름은

가을과 씨름하여 이겨낼 수 있을까~!

가을이 보였다.

일부러 가을을 보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바람이 풀잎을 스칠 때

그 사이로 언뜻언뜻 보였던 것이다.

여름이 웃는다.

까치소리가 아침에 그을려

어둠이 잠들 무렵에

노란 꽃을 밟고 장난치던 바람이

발을 헛디뎌 넘어진다.

그 자리에 가을이 파였다고

바람에게 시비를 건다.

연한 구름이 목에 걸려

시간을 삼킬 수 없다고

아침이 징징거린다.

꽃 속에 갇힌 세월이

꺼내어 달라고 아우성이다.

여름이 담배를 빼어 문다.

뱉어내는 골을 타고

숨이 하늘에 닿는다.

구름이 가을을 뽑아 그림을 그린다.

지나는 비행기가 훼방을 놓아 캔버스를 끄적거린다.

구름이 신경질을 내며

하늘을 뒤집어엎는다.

그래서 오늘은 구름이 많다.

까치들이 쏟아진 가을을 줍고 있다.

여물이 덜든 가을이

까치의 내장을 지나

방귀로 나온다.

한강 옆에서 여름이 턱을 괴고 사색하고 있다.

가을이 지나며 괜히

발로 툭 건드린다.

또르르 굴러간 여름이

시멘트 바닥 틈에 끼어 발버둥 치다

노숙자의 신발 끈을 잡고

간신히 빠져나와

북으로 북쪽으로 철교를 건너다

전철 바퀴에 갈리어 강물로 떨어지니

목마른 가을이 날름 마셔버린다.

가을이 설사를 했는지

나뭇잎이 노랗게 물들어 간다.

계절은 그렇게 물려서 바뀌나 보다.

여름이 하늘에 줄을 매고

목을 매달아 죽어버리겠다고

자살 소동을 벌인다.

바람이 가지 끝에서 팔짱 끼고 앉아

심드렁하게 졸고 있다

여름이 봐주지 않는다고

바람을 발로 톡 찬다.

깜짝 놀라 바닥에 떨어진 바람이

씩씩거리며 코를 씰룩 이자

서늘한 덩어리 몇 송이

한강으로 기어 나와

오늘을 시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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