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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Oct 18. 2022

중심잡고 일어서기

사람의 몸은 대칭을 이루고 있다. 대칭을 이루는 양쪽 발로 단단한 땅위를 밟고 서면 올곧은 자세로 몸이 일으켜 세워진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들처럼 나는 양발을 땅에 내딛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지만 그들처럼 올곧은 자세로 몸이 세워지진 않았다. 꾸부정한 허리, 오랜 앉은 자세로 지내다보니 앉은 모양으로 굳어버린 골반 뼈. 땅에 닿지 않는 한쪽 다리. 모든 게 불균형했다.

어느 것 하나 바르지 않은 몸, 나에게는 대칭이 주는 편안함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단단한 땅이 질퍽한 진흙이 되어도 올곧음을 잃지 않는 사람은 있다. 서있는 위치가 중요한 게 아닌 거처럼 나의 올곧음을 만들어 주는 건 마음가짐이다. 마음에 따라 내 모습을 보는 게 달라진다. 


“이렇게 어떻게 살아?” 

의미 없는 물음이었다. 

왜 못 살겠어. 나는 이렇게 지금껏 잘 살고 있는데?

나의 몸은 내가 바꿀 수 없었고, 나는 잘 살아가고 있다. 몸에 균형은 잃었지만 나를 지탱해주는 마음이 있었다. 나는 늘 부족한 게 없었다. 내가 걷지 못한다고 하지 못했던 건 딱히 없다. 있다고 한들 그것에 연연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없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걸 찾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의 균형을 잃어버린 그들은 의미 없는 물음에도 큰 고민을 한다.

이렇게 살 바엔 살고 싶지 않아. 


그들은 단단한 땅 위에 올곧은 자세로 우뚝 서있지만 마음은 진흙 위에 핀 꽃송이 같이 유약했다. 꽃송이는 먹고 살 영양분이 없어 늘 영양이 부족했고 뿌리 내린 그 곳은 작은 흔들림에도 움푹 파일만큼 질퍽했다. 내가 바라보는 그들은 하지 못하는 건 없을 것 같았다. 내가 걷지 못해 포기해야 했던 수많은 것들도 그들은 쉽게 손에 넣고, 노력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내가 몸이 아팠던 만큼 마음이 아픈 이들에겐 내가 갖고 있는 마음의 중심이 없었다.

모두가 행복한 줄 알았다. 나만큼.

하지만 살면서 내가 느끼는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도 많았다. 


몸이 아픈 거 보다 마음의 병이 더 무서운 거야

 

나는 몸이 아팠고, 그들은 마음이 아팠다. 보이는 아픔은 쉽사리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아픔은 외면하기 쉬웠다. 아픔을 외면하는 사이 허허벌판에서 그들의 꽃송이는 무너져 내린다. 

누구나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몸의 올곧음을 갖지 못한 사람도 많다. 그들을 생각하며 자신이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에 한 번쯤 감사함을 느껴 보았으면 좋겠다. 당신의 살고 싶지 않은 시간을 무척 살고 싶은 사람이 많을 테니 말이다. 단단한 땅이 더 질퍽해지기 전에 마음의 중심을 다잡고 일어서길. 붙잡을 게 필요하다면 먼저 손 내밀어 보기를 바란다. 주위 사람들은 나의 아픔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기에 손을 잡아 줄 수 없는 것일 뿐이다. 발이 없어도 날 지탱해주는 목발과 네 바퀴가 달린 휠체어처럼 흔들리는 나를 지탱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나의 마음은 올곧음을 잃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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