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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Oct 18. 2022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한창 예쁘게 꾸미고 나가서 사회생활을 할 나이.

또래와 같은 사회생활을 했다면 하루하루 바쁘게 일하며 돈을 벌고 있을 그런 나이.


그런 나이가 되어 버린 나는 어렵지 않은 둘 중 어떤 거 하나도 하지 못하고 있다.

부모님은 아프지만 말라고, 괜찮다고 말씀하시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또래 친구들이 꾸미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우리 딸도 저러고 다니면 더 예쁠 텐데” 씁쓸한 엄마의 혼잣말과 주위 딸이며 아들이 직장 생활을 하며 집안에 돈을 보태거나 값비싼 선물들을 해줬다는 소리를 아빠를 통해 들을 때면 마음이 불편했다. 건강하지 못한 자식으로 태어나 자라는 시간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야속해진다.


언제나 젊으실 것 같던 부모님이 나이를 드시고 계셨다. 


어릴 적엔 건강하게 자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은 건강하게 자란다고 잘 살아갈 수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밥벌이도 해야 했고, 언제나 큰 버팀목인 줄 알았던 엄마, 아빠는 점점 나이가 드시면서 예전에 내가 생각했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 집에는 내 약봉지 더미 위로 부모님의 약봉지가 하나, 둘 씩 더 쌓여가고 있다.

 여전히 부모님은 나를 어린아이처럼 대하신다. 아직도 엄마 아빠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 그런 나는 부모님에게 언제나 어린 아이다.


매일 끼니 걱정과 혹여 아프지 않은지 늘 노파심, 나의 건강만 걱정하는 부모님은 그날 저녁도 자신의 약봉지를 비우셨다. 서로에게 흘러가는 시간을 모르고 있었다. 엄마, 아빠의 시간 속에는 나이를 먹지 않는 내가 있었고, 나에게는 나이를 드시지 않는 부모님이 계셨다. 나이를 먹을 거 같지 않았던 나는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막상 나이를 먹은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른이 되어 있다.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세상은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그늘이 있었기에 가능한 어른의 세계였다. 부모님이 만든 그늘이 당연한 건 줄 알고 살았던 내가 그늘을 벗어나 첫 발을 내디뎠을 때 깨달았다. 

눈부시게 따사로웠던 햇살은 그늘 아래 있어서 따사로웠다고.


 부모님의 넓은 그늘은 점점 작아지고 나는 점점 커져가고 있다. 그늘이 작아질수록 나는 태양의 뜨거움을 느낀다. 태양이 내뿜는 빛줄기는 뜨거움을 지나 따갑게 느껴질 테다. 이기적이게도 당장의 나의 아픔에 온 몸으로 태양을 막아 그늘이 되어주던 부모님의 아픔은 알지 못했다. 시간은 나이를 먹을수록 빠르게 지나간다고 한다. 하루 종일 바삐 하는 일이 많았던 젊을 때와 달리 하는 일이 줄어들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더 빠른 속도로 흐른다. 내가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 줄 거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었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실천해야 하는 것이 생겼다.

홀로서기. 사회에 익숙해지기.


나이만 먹는 무늬만 어른이 아닌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부모님의 그늘에서 나올 때부터 시작된다. 우리가 지금껏 누렸던 편안함은 나의 것이 아닌 부모님의 것이었다. 그늘 안에서만 지낸다면 결국 어린아이로 살아간다는 것. 모두가 성인이 되어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겠지만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난다는 건 꼭 육체적인 독립뿐 아니라 정신적인 독립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부모님의 것이 아닌 나의 것을 만들어나가는 시간을 느껴본다면 의미 없던 하루가, 무료했던 일상이 달라지지 않을까?




 나에게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단순히 시간만 보내는 것이 아니다. 나이란 나에게 쏟아진 부모님의 시간과 사랑으로 만들어지는 흔적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생각보다 부모님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아이인 채로 후회하는 날을 맞이하기 전 날 향해 쏟아진 흔적들이 헛되지 않게 오늘도 노력해야겠다고 마음을 다 잡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생각이 많아질수록 그냥 쉽게 먹어지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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