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네온사인 불빛의 배경과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 불빛이 만들어내는 저녁의 배경. 어둠이 내려 깔린 밤에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무려 10년 넘게 앉아서 생활하던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다리 수술도 잘되었으니 이제 목발을 한번 사용해 보지 않겠냐는 권유로 목발을 맞추러 가는 길이었다. 들뜬 내 마음과 달리 차 안에는 초가을이었던 저녁 공기보다 더 낮게 느껴질 만큼 싸늘한 기운이 맴돌았다. 온전히 내 기분과 나에게만 맞출 수 없다. 우리 집은 다섯 가족이 살아가는데 당시에 언니의 학업 문제와 늘 똑같은 나의 병원 문제 등으로 엄마 아빠는 잦은 다툼을 가지셨다. 그날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이유로 엄마 아빠가 다툼이 있던 날이었다. 나는 냉랭한 분위기를 깰 만큼 유쾌하거나 눈치가 없진 않았기에 조용히 눈치를 보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춘 채 목발을 맞추러 가는 길에 동행하여야 했다.
의료기 판매점 주인아주머니의 추천과 엄마의 열띤 토론을 걸쳐 골라지는 다양한 목발에도 아빠는 시큰둥했다.
어릴 적부터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아빠에게 나는 큰 짐이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지금의 내 나이는 한창 엄마, 아빠가 힘들어지는 당시의 나이와 같거나 혹은 몇 살 어리거나했던 그쯤의 부모님의 나이였다.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던 시기에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현실에서 살고 계셨던 그 무렵 아빠는 신경이 날카로웠고, 우리라는 개념보다는 자신 혹은 부인과 나. 이렇게 생각하셨던 거 같다.
오래전 잠시지만 부모님과 한방을 썼던 적이 있었다. 아빠와 엄마는 바닥에서 주무시고 나와 언니는 침대에서 잘 때였다. 잠에 들지 않았던 나는 바스락거리며 밤새 뒤척거렸었다. 뒤척거림 소리가 새벽에 유독 크게 아빠에게 들렸는지 아빠는 잠결에 짜증스럽게 시끄럽다고 소리친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인 내가 아직도 생생하게 그 짧은 시간을 기억할 만큼 그날의 기억은 생각보다 무서웠다. 처음 겪어보는 아빠가 되어가는 과정에 장애물같이 등장했던 나의 존재는 안 그래도 예민한 성격의 아빠에게는 더욱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언제나 나를 우선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하는 엄마와는 묘한 거리감이 있는 아빠의 모습이 내가 어릴 적 기억하는 아빠였다.
목발을 맞추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간혹 들리는 나와 엄마의 목소리 외 아빠의 한숨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사건의 시작이자 마지막은 집에서 일어났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김치찌개와 여러 가지 반찬이 올려있는 식탁이었다. 마지막으로 밥을 올려놓기 위해 밥을 푸러 가는 엄마는 얼마 전부터 잔 고장 잦던 전기밥솥이 그날따라 유난히 뚜껑이 잘 열리지 않자 밥통 좀 빨리 바꿔야겠다며 짜증 섞인 혼잣말을 하셨다. 그때 생각지도 못한 급작스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그놈의 밥통이 문제면 진작 내다 버렸어야지!
별안간 버럭 화를 내며 숟가락을 소리 나게 내려놓는 아빠와 지금까지 차곡차곡 모아지던 엄마의 화가 맞부딪히는 시작을 알리는 날 선 목소리의 대화가 거칠게 오고 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에 아빠와 언니 앞으로 상당히 많은 액수의 돈이 들어가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엄마는 집안에 필요한 물건조차 마음대로 사지 못할 정도로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는데 하물며 값비싸다면 값비싼 전자제품이던 전기밥솥은 바꿀 엄두조차 내지 못했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 아빠의 애꿎은 화가 밥통에 튀어버리자 참고 있던 엄마의 서러움이 밥통과 함께 폭발해 버렸다. 주방에서는 엄마의 서러움을 담은 전기밥솥은 코드가 뽑힌 채 기능을 잃었고, 화를 내던 아빠도 한걸음 물러나 한숨과 함께 ‘쾅’ 소리를 내며 닫히는 방문 사이로 사라지셨다.
결혼한 여자의 행복은 잘 꾸며진 주방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예쁜 찻잔과 그릇, 세련된 디자인의 전자제품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에서 키워나가는 가정의 행복과 만족스러운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역할에 대한 로망은 현실에서는 없었다. 오직 가정을 위한 여자의 의무감만 있었을 뿐이다. 엄마도 결혼을 하기 전에는 작고 어여쁜 소녀에서 꿈을 키우는 숙녀가 되어 결혼을 하고 남편과 아이가 생겼을 테고, 아빠 또한 순박했던 시골 소년에서 늠름한 청년이 되어 큰 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는 걸 나는 잊고 있었다. 나를 위한 행복을 접고 가정만을 위해 살아오던 엄마는 다음날 자신을 위해 돈을 써본다며 자랑하듯 말하며 식탁에 올려놓은 물건이 있었다.
당시에는 고가였던 무려 48만 원이나 한다는 최신 전기밥솥을 자신을 위해 샀다고 말하시며 웃으셨다.
어느새 엄마에게는 자신을 위한 지출도 가족의 입으로 들어가는 밥을 짓는 전기밥솥으로 되어버렸지만 얼굴에는 기분 좋은 웃음이 가득하셨다. 밤에 퇴근을 하고 돌아오시는 아빠 손에는 요즘처럼 세련된 치킨이 아닌 그야말로 예전에 먹을 수 있던 옛날통닭이 들려있었다.
처음 겪는 과정은 다 서툴기 마련이다. 가정을 이루는 것도 처음 겪고 부모와 자식, 엄마 아빠가 되어가는 과정도 처음 겪는 과정이기에 서투른 게 당연하다. 서툴러서 서로 부딪히고 싸우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결국 날 선 부분이 마모되어 부딪혀도 아프지 않고 둥글게, 둥글게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엄마 아빠가 되어가는 과정이 처음이듯 우리에게도 자식이 되어가는 과정은 이번 생이 처음이기에 부족한 게 많은 자식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노력한다면 꽤 괜찮은 가족이 되지 않을까?
집에서 생활하다 보면 엄마의 친구, 아빠의 친구를 생각보다 많이 보게 된다. 그럴 때면 어릴 적부터 많이 들었던 질문이 있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대답은 늘 배시시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곤 했었다. 아빠보다 엄마를 좋아했던 나로서는 당연히 엄마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아빠가 싫은 건 아니다. 두 분 중 한 사람을 선택하지 못했던 건 우유부단하거나 선택 장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다만 한 분만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제 저런 질문을 받을 나이는 아니지만 다시 물어온다면 확실히 대답할 수 있을 거 같다.
두 분 다 좋아요
아주 간단한 한마디 말이었지만 오랜 시간이 걸려서 간단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도 나에게 한 분만 고르라고 강요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꼭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되는 법은 어디에도 없지 않던가. 우리는 살면서도 왜 꼭 하나를 선택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하나가 안 된다면 둘 다, 가끔은 이런 호기스러운 욕심부려도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골라야 하는 수많은 두 가지의 선택지 중 하나를 함부로 선택조차 할 수 없는 건 두 가지 다 나에게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라면 자신의 행복을 가족의 행복으로 바꾼 엄마도, 준비가 안 되었지만 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아빠도 나에겐 생각할 필요도 없을 만큼 큰 존재이자 무조건적인 나의 편이기에 나는 오늘도 두 분을 모두 사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