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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Oct 11. 2022

받아들이다

장애인 등록을 아프고 걷지 못하게 된 후에도 꽤 오랫동안 하지 않았었다. 

장애인 등록을 하면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장애인에 대한 혜택을 받을 수는 있지만 장애인이 되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기에 쉽사리 할 수 없었다. 엄마, 아빠는 힘겨워지는 집안 사정을 어떻게 알았는지 살고 있는 동네 동사무소에서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오고 그들이 딸의 장애인 등록을 권하는 숱한 나날들을 외면하며 오랜 시간 동안 고민을 했었던 거 같다.


 이제는 걷지 못하고 앉아서 집에서만 생활하는 내가 더 익숙해졌을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의 나는 엄마, 아빠의 기억 속에 처음부터 걷지 못한 장애를 가진 아이가 아니었다. 단지 몸은 약했지만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어디든 걸어 다닐 수 있었고 나가서 자전거 타기를 좋아했고 집보다는 밖에서 노는 걸 훨씬 좋아했던 기억이 더 길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건 마치 마지막 희망 같은 거였다. 언젠간 다시 예전처럼 땅 위를 걷고, 건강함을 되찾을 수 있다는 믿음.

엄마 아빠마저 내가 달라졌음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세상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영원히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낯선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을 받아야 한다는 것.

내 딸이 평생 걷지 못한다는 것.


이것들로부터 엄마 아빠는 나를 보호하고 싶었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일이자 지금은 비록 다리가 많이 휘어지고 걷지 못하지만 충분히 나을 수 있다는 희망 혹은 본인들에게 하는 마지막 희망고문.


 나는 얼마 전 무지개별로 떠난 반려견 꽃순이를 오랜 시간 키웠었다. 꽃순이를 돌보다 보면 가만히 있어도 예쁘고, 말썽을 부려도 얄미운 것도 잠시뿐 언제나 사랑스럽기 그지없고 조금만 아파도 걱정이 우주만큼 커다랗게 커지는 소중한 그런 존재가 되어주던 나의 반려견, 꽃순이.

사람의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흐르는 꽃순이의 시간. 빠른 시간 속에 살아가는 꽃순이가 아픈 곳이 늘어날수록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내가 낳은 것도 아니고 14년이라면 길다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을 키우기만 했어도 이렇게 애틋한데 엄마 아빠는 나를 낳고, 먹이고, 늘 병원을 쫓아다니며 온갖 고생하면서 훨씬 더 오래 키우셨는데 딸이 한순간에 걷지 못하게 되고 보기에도 흉하고 안타깝게 휘어진 오른쪽 다리는 마음대로 펴지도 못하고 구부린 채 온종일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딸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오죽하셨을까 싶었다. 나는 아마 엄마 아빠의 그 헛헛한 마음은 평생 가도 다 알지 못하겠지만 엄마, 아빠는 평생 동안 공허하게 뻥 뚫린 깊고 깊은 가슴속에 슬픔과 아픔을 꽁꽁 숨겨 놓고 나에게는 웃어 보이실 거라는 건 알고 있다.


사실은 가족보다 내 장애를 가장 못 받아들였던 사람은 나였던 거 같다. 함께 사진을 찍을 때면 카메라에 잡히는 휠체어가 싫어 휠체어에서 내리거나 내릴 수 없다면 사진도 찍지 않았을뿐더러 나는 나의 병에 대해서도 모른 척하고 있었다. 얼마 전 누군가 나에게 물었었다.

“이게 무슨 병이야? 심하면 1 제형? 2 제형? 뭐 이런 거예요?”

그때 나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내 주위 사람들은 특별히 묻지도 않았고, 나는 나의 병에 관해 관심도 없었다. 가족들도 내 병에 대해 나에게 깊게 말해주거나 하진 않았었다.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감춰두었던 마치 비밀 같은 내 병에 대해 내가 처음으로 맞닥뜨린 날이었다. 그 계기로 나는 지금의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가족의 울타리에 나를 숨기기보단 나에 대해 당당하게 말하고, 내가 나를 더 진솔하게 알고 싶어졌다. 


 어느덧 나는 엄마 아빠의 입을 빌려 말하는 나이가 훨씬 지났다는 걸 깨달았다.


당시에 저 질문은 상당히 날 불쾌하게 했지만 저런 류의 질문을 다시 받게 된다면 나는 이제는 당황하거나 불쾌함 없이 당당하게 병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답을 해주기로 용기를 내본다. 물론 그런 질문은 다시 받기보다는 그분들이 내 병을 알 수 있을 만큼 희귀병이 아닌 치유가 될 수 있는 병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만 아직도 어딘지 모르게 저런 질문은 이상하게 슬퍼서 담담히 답을 못 할 거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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